몸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소매틱 대화법)
“으…으…아…아… 악… 안 되겠어요.”
재활 치료를 함께 받던 콜센터 상담사 J 씨가 비명을 삼켰다.
고무 밴드를 당겨 어깨 가동 범위를 재는 순간, 오른쪽 팔이 더 이상 뒤로 돌아가지 않았다.
팔을 조금만 올려도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통증이 몰려왔다.
“제가 앉아 있는 자리에서 45도 각도로 앞에… 그 인간, 그러니까 센터장이 앉아 있거든요.”
“하루 종일 그쪽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 몸을 왼쪽으로 틀어 놓고 전화 상담을 했어요.
몇 년 동안 그러다 보니, 오른쪽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나 봐요.”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몸과 마음은 한 통로 위에 놓인 두 개의 차량 같다.
한쪽이 멈추면, 다른 한쪽도 속도를 잃는다.
김주환 교수는 『내면소통』에서 이렇게 말한다.
“부정적 정서는 의도하지 않은 몸의 긴장과 불균형을 만든다.
그 불균형은 다시 더 큰 정서적 장애와 통증의 근원으로 이어진다.”
J 씨가 오른쪽 어깨에 걸어 놓았던 건 미움과 불편함, 그리고 숱한 짜증이었다.
그 감정들은 근육을 단단히 조여 묵직한 돌처럼 매달려 있었다.
J 씨는 어느 날엔 가 물리치료실 치료대 위에서, 감각훈련했던 순간이 떠올렸다고 했다.
“눈을 감고, 들숨이 아니라 날숨에 집중해 보세요.
‘후—’ 소리를 내며 길게 내쉬면,
그 바람이 어깨뼈 사이를 부드럽게 쓸고 지나간다고 상상해요.
숨결이 바람결이 되어 묵은 돌덩이를 조금씩 밀어낸다고요.”
J 씨는 치료대 위에서 조심스레 눈을 감았다.
두세 번은 숨이 짧게 끊겼지만 네 번째 날 숨 즈음에서 어깨가 살짝 내려앉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완전히는 아니어도, 숨이 쉬어지니까 통증이 덜했어요.
이것이 ‘알아차림’이 일상에 남기는 작은 수확이다.
문제를 곧바로 없애지는 못해도, 문제와 자신 사이에 숨 쉴 거리를 만들어 준다.
지금 이 순간, 어깨가 들려준 속삭임
글을 쓰는 지금, 내 어깨도 조용히 항의한다.
“네 시간째 키보드를 두드리니, 또 돌덩이를 얹었구먼.”
나는 모니터를 잠시 덮고, 크게 날숨을 뱉어 본다.
후—
어깨에 실렸던 긴장이
바닥으로 툭, 떨어지는 기분.
다시 묻는다. “지금은 좀 어때?”
어깨가 작게 답한다. “조금 가벼워.”
통증을 돌보는 방법은 거창하지 않다.
하루에 몇 번, 상황·감정·몸의 반응을 이어 보며
어깨에게 한숨 내려놓기를 허락하는 것.
우리가 그렇게 자주 숨을 불어넣어 준다면,
어깨는 더 이상 돌덩이를 홀로 짊어지지 않아도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