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마음,정신의 근력을 키우는 에세이 '몸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2019년 4월, 친구와 함께 7박 9일 동안
크로아티아로 여행을 간 적이 있습니다.
처음으로 가보는 동유럽.
선선한 날씨와 함께 푸르른 코발트 빛 바다가
마음을 설레이게 하더군요. 함께한 패키지 멤버들은
30대 초반부터 70대까지 연령대가 다양했습니다.
초반에는 낯설었지만, 식당에 함께 앉아
한 두번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조금씩 가까워졌죠.
여행 2일차,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구도심의 한 식당.
70대쯤 되어 보이는 어르신이 60대 부부에게 식사 중
조용히 말을 건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나는 60대 때 통풍 때문에 고생을 참 많이 했어요.
병원 다니느라 여행은 생각도 못 했죠.
지금이 좋을 때예요. 많이 돌아다니세요.
나중엔 정말 못 돌아다녀요.”
그 말을 듣고 물끄러미 그들을 바라봤습니다.
‘지금이 좋을 때야’라는 일곱 글자,
평상시에 선배나 어르신들에게 자주 들었던 말인데
여행 중에 들으니 마음에 묘하게 남더군요.
단순한 조언이라기보다는 세대를 통과해본 사람만이 건네는
성찰와 도전의 또 다른 표현 같았습니다.
며칠 뒤, 한 가죽 공방에서 줄을 서다가
60대 어르신과 다시 마주쳤습니다.
그는 앞에 서 있던 50대 초반의 여성들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너무 보기 좋아요. 나는 50대에 친구랑 여행 다닐 생각도 못 했어요.
아이들 결혼시켜 놓아야 여행 갈 수 있다고만 생각했죠.
지금이 좋을 때예요. 건강할 때 많이 다니세요.”
그 말을 들은 50대 여성들이 뒤를 돌아보며
저와 친구에게 조용히 웃음을 지었습니다.
그녀들 역시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을 함께 걷던 길에서
우리에게 비슷한 말을 했거든요.
“우리 때는 애들 대학 들어가기 전에는 여행을 꿈도 못 꿨어요.
왜 그렇게 참았는지 모르겠어요. 40대에도 가능하네요.
지금이 좋을 때예요, 진짜.”
그리고 그 다음 날, 저녁 식사에 앳되 보이는
30대 초반의 신혼 부부와 동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식사를 하며 결혼한지 2년차라는 것과
아이 낳기 전에 자주 돌아다니고 싶어 최근에
TV 프로그램 ‘꽃보다 누나’에 나온 크로아티아를 보고
반해서 오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젊은 부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부러움의 미소가 절로 나오더라고요.
그 순간,
“좋을 때라고요?”
남편 되시는 분이 제가 하려던 말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빠르게 대화를 완성했습니다.
부부가 웃으며 말했죠.
“오늘 하루 종일 들었어요.”
짐작이 갑니다. 저도 여러 번 목격하며 들었으니까요.
패키지 멤버 중에 최연소였던 30대 부부에게는
어르신들이 얼마나 많이 들려주셨겠어요.
이 여행은 마치 생애주기를 따라가며
후회와 지지의 관점을 주고받는 일 같았습니다.
각자의 시간을 살아온 사람들이 다음 세대에게 말합니다.
‘지금이 좋을 때야. 나중에 돌아보면 알게 될 거야.’
저녁 식사 후 산책을 하며 스스로에게 조용히 물어봤습니다.
‘언제가 좋은 때였더라?’
잠시 과거의 순간들을 떠올려보려 했지만, 내면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들리더군요.
“지금이야. 지금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고.”
내면의 소리를 듣고 나니 주황빛으로 물든
보스니아의 노을이 더 귀하게 느껴졌습니다.
선선한 바람과 함께 석양을 바라보며 나눈
친구와의 담소도요. 모든 것이 고맙고 눈부셨습니다.
관점 하나를 바꿨을 뿐인데, 인생의 맛이 조금은 다르게 느껴지더군요.
한국으로 돌아온 뒤, 한 권의 책을 뒤적였습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인생 수업』에서
‘멋지게 나이 들어간다는 것’에 대한 문장을 다시 음미하고 싶었거든요.
“많은 이들에게 젊은 시절의 꿈은 늙은 시절의 후회가 됩니다.
삶이 끝나가기 때문이 아니라, 그 꿈으로 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멋지게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하루를,
그리고 하나의 계절을 온전히 경험하는 것입니다.
봄의 희망에 마음을 빼앗긴 채 겨울을 지내지 않습니다.”
‘지금을 살아라.’ (카르페디엠: Carpe Diem) 라는 말로 들리더군요.
지금이 좋은 때라고 하니까 좋은 때인가보다 생각하는 수동적 태도가 아니라
하루를, 하나의 계절을 감각하고 경험해 보는 주도적인 삶의 태도가 그려졌습니다.
과거에 못한 것을 후회만 하거나, 미래가 두려워 멈춰서 있지만은 않은,
지금, 여기에 펼쳐진 인생의 맛을 음미하라는 초대 멘트처럼 들렸죠.
삶은 언제나 속삭입니다.
‘지금이 가장 좋을 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