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마음, 정신의 근력을 키우는 에세이 '몸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니… 얼른 정리하고 천국으로 가고 싶어.”
“허리통증이 점점 심해져서 그냥 죽고 싶을 때도 많아.”
친정 엄마를 만날 때면 어김없이 듣게 되는 말...
생의 마지막 챕터라 생각하며 살아가는 여든둘의 노모에게는
‘죽음’이라는 단어는 어느 순간부터 일상 언어처럼 펼쳐집니다.
하지만 그 말의 밑바닥엔 어쩌면 이런 마음이 깔려 있진 않을까요?
“잘 지내다 편안히 가고 싶다.”
‘잘 지낸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에게는 왠지 완벽해야만 잘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말이죠.
어느 날 문득, 그 ‘잘’에 짓눌린 제 마음을 위로해 준 한 편의 영화가 있었습니다.
야쿠쇼 코지 주연의 영화, ‘Perfect Days’입니다.
일본 도쿄 시부야의 공공화장실을 청소하는 한 남자,
히라야마 씨의 일상을 다룬 영화입니다.
그는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이를 닦고, 면도를 합니다.
반려식물에 분무기로 물을 줄 때면 엄마가 아이에게 모유수유를 하고
자모지심을 느끼듯 미소 지으며 식물들을 바라봅니다.
차 키를 챙겨 출근하려고 현관문을 열며 하늘을 볼 때면
처음 하늘을 본 사람처럼, 혹은 오늘의 하늘과 반갑게 인사를 하듯,
미소 짓습니다. 집 앞 자판기에서 캔 커피 하나를 뽑아 차에 올라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살아생전 동이 트는 것을 처음 보는 사람 마냥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바짝 앞 창 쪽으로 얼굴을 내밀어
차 안 가득 스며드는 햇살을 음미합니다.
드디어 그의 작업공간인 공공화장실에 도착했습니다.
세면대를 닦다가 주머니에서 손거울을 꺼냅니다.
세면대 아래 눈에 보이지 않는 곳까지 살피며 닦기 위해서죠.
그리고는 점심시간이 되면 햇살 가득한 공원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습니다.
식사 후엔 필름 카메라를 들고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을 바라보며
하늘을 찍죠. 매일 똑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시간에 마주하는 하늘,
햇살, 초록 잎들을 바라보며 셔터를 누르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오늘은 어제의 빛과 달라요. 햇살의 방향도, 온도도.
새싹도 어제보다 조금 더 자랐어요. 오늘은 더 싱그럽지 않나요?
새순이 돋은 이 아이들 좀 보세요!”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고 선술집에 들러
맥주와 함께 저녁식사를 합니다.
잠들기 전에는 좋아하는 소설책을 읽으며 하루를 마감하죠.
단조롭기(?) 그지없는 하루를 지켜보고 있는데,
자꾸만 제 마음 한편이 뭉클해집니다.
히라야마 씨의 얼굴에는 단 한 번도 지루하거나 무기력한 기색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는 하루하루를 사랑스러운 호기심으로 바라봅니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저도 모르게 주변을 좀 더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매일 지나치던 아파트 입구 돌담 사이로 피어 오른 노란 민들레가
대견스럽기도 하고, 한낮의 뜨거움이 저녁노을의 바람과
뒤엉켜 훈기를 걷어내고 선선함을 선사할 때면 고마움과 반가움이 일렁입니다.
골목길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에 나뭇잎이 ‘바스락’ 거리며 코러스를 넣어주면
또 다른 사운드로 귓가에 즐거움을 선사하고요.
이 모든 것은 오감을 열어 경험하는 순간 새삼스럽게 다가옵니다.
익숙한 듯 그곳에 있던 것들이 사랑스럽게 느껴지고요.
완벽한 하루는 ‘잘 살아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
온전히 느끼는 것이 아닐까 싶더군요.
리리카 150mg을 먹는다 해도
홀로 계신 엄마와는 한 달에 두어 번 점심을 함께 합니다.
엄마는 이 날도 당신의 통증에 대해 이야기하시느라 분주하셨죠.
“리리카(항경련제 성분의 약)를 75mg에서 150mg으로 늘렸는데도 안 돼.
얼마나 허리 통증이 심한지 몰라. 다리까지 퉁퉁 부었어.
어깨도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효과가 없어.
주사를 맞을 때뿐이야.”
나로서는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알약 이름과 용량까지 정확히 표현하시며
자신의 고통을 쏟아내시는 엄마.
온몸이 통증으로 적셔진 엄마의 한주가 고스란히 그려졌습니다.
목소리는 타 들어가 듯 목이 매이고 갈라지기도 했죠.
근처 골목에 주차를 하고 레스토랑을 향해 걸어가는데,
“어머나, 이 수국들 좀 봐라. 어쩜 이렇게 예쁘냐.”
“울 엄마 수국 좋아하는구나. 보라색 좋아하지?
나 어릴 때 엄마가 보라색 블라우스 입었던 게 생각나네.”
“기억하는구나? 어 나 보라색 좋아했지. 그거 내가 참 좋아하던 옷이었어.”
통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엄마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꽃과 햇살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감탄사를 연발하는
엄마를 보고 있자니 열여덟 소녀처럼 생기 있어 보이더군요.
“너희들 참 이쁘구나.
가로수 아래 핀 들꽃 좀 봐라. 난 이렇게 잔잔한 아이들이 좋더라.
줄기가 이렇게 가느다랗고 여린데 수십 장의 꽃잎 붙어있는 것 좀 봐라.”
엄마의 목소리에서 수분감이 느껴졌습니다.
목이 매이거나 메마른 기침도 없이
목소리 톤을 높여 단 숨에 이야기하는 엄마.
다시 영화 속 이야기로 돌아가보죠.
히라야마 씨는 매일 밤 흑빛으로 가득 찬 꿈을 꿉니다.
뭔지 모를 긴장감을 안겨주는 음악이 깔리자,
관객으로서는 ‘악몽인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추측할 뿐이죠.
영화가 끝날 때까지 친절하게 무엇 때문에 히라야마 씨가
매일 밤 흑빛으로 채워진 꿈을 꾸는지 알려주지 않지만
여동생이 “아버지가 계신 요양원에는 안 가 볼 거야?”라는 말을 통해
‘부자지간에 어떤 사연이 있구나.’ 정도를 예측할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라야마 씨는 눈을 뜨면 아무렇지 않게
하루를 온전히 느끼고 정성 들여 삶을 경작합니다.
어쩌면 완벽한 하루란, 불안전한 상황 속에서도
지금 여기 이 순간, 내 눈앞에 펼쳐진 하루를
온전히 느끼는 것 아닐까 싶더군요.
헤어질 때 엄마는 손을 흔들며 말씀하시더군요.
“오늘, 여행 다녀온 것처럼 선물 같은 날이었어. 고맙다. 딸아~”
고통 속에서도 기쁨을 느끼는 삶.
충분히 감각하는 하루, Perfect 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