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마음, 정신의 근력을 키우는 에세이 '몸은 알고 있습니다.'
“우리말 연구에 따르면 ‘소중하다’의 정확한 뜻은
‘높은 가치가 있다고 인식하는 것’이고,
‘높은 가치’라는 뜻을 지닌 순우리말은 ‘고마’라고 합니다.”
(출처. 조벽/최성애 박사의 《성장할 수 있는 용기》)
이 문장을 읽는 순간, ‘고마’라는 말의 뜻풀이가
마음 한가운데로 스며들었습니다.
‘흔하게 쓰던 ‘고마움’이라는 단어에, 이렇게 깊은 뜻이 있었구나.’ 하고요.
어쩌면 우리는 지금까지 ‘고맙다’는 말을 너무나 습관처럼 써왔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보니 정작 ‘고마움’이란 감정의 본질, ‘높은 가치를 발견하는 눈’은
잊고 살았던 건 아닐까 반성이 되더군요.
마음에 오래 남는 고마움의 에너지
작년에 청계산에서 함께 맨발 걷기를 했던 L 씨가 떠오릅니다.
약수터에서 발을 씻던 그녀가 물었습니다.
“맨발 걷기하고 나면 발관리는 어떻게 해요?
흙이 잔뜩 박혀서요.”
그녀의 뒤꿈치를 보니 피부가 갈라져 있었고,
흙이 틈 사이에 박혀 있었습니다.
‘많이 건조하신가 보다…’
그 모습을 보고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습니다.
‘교회 공방에서 판매하는 천연 바셀린을 선물하면 좋겠다.’
그렇게 며칠 뒤, 저는 그녀를 위해 천연 바셀린을 구매하고 포장을 해 뒀습니다.
3주 뒤 모임 날을 기다리며 식탁 위에 올려놓은
선물을 보며 가끔 그녀를 떠올리곤 했죠.
그리고 마침내 선물을 전한 날,
그녀는 인스타 그램에 아래와 같이 고마움을 표현했습니다.
“지난달 모임 후 최소 한 번 이상은 나를 떠올려 주셨고,
또 나를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고민해 주신 그 마음에 감사했다.
거친 내 피부를 촉촉하게 도와줄 ‘충만한 바셀린’.
내가 바셀린 좋아하는 건 또 어찌 아시고… 잘 쓰겠습니다.”
그녀의 진심 어린 표현은, 단순한 선물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저 ‘고맙다’는 말이 아니라, 그녀를 떠올리며 준비한 선물,
그 너머의 시간들까지 알아봐 준 고마움의 표현이었거든요.
그녀 덕분에 ‘고마’라는 의미가 한층 더 깊이 와닿았습니다.
‘고마움이란, 상대의 수고로움을 알아보는 힘이구나.’
마음이 자라나는 고마 훈련
초등학교 4학년 때였습니다.
“엄마가 나한테 해준 게 뭐 있어?!”
그 말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례한지,
시간이 지난 후 에야 깨달았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엄마는 매일 새벽기도를 다녀오셨고,
부엌에서 무릎을 꿇고 조용히 기도를 하신 뒤
밥을 짓고 도시락을 싸주셨습니다.
네 남매와 아버지를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12년간 도시락을 싸셨죠.
도시락 뚜껑을 열며 투정을 부리던 제 모습이 아직도 생각납니다.
“김치, 콩자반, 멸치볶음, 게맛살… 맨날 똑같아! 지겨워!”
하지만 이제 압니다.
반찬 한 가지에도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는지.
콩자반만 해도 그렇습니다. 콩을 씻고 물에 불리고 불에 삶고
간장에 조리고 단맛을 가미하기까지, 1 시간 넘게 걸리는 반찬, 콩자반!
그 정성이야말로 사랑과 봉사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매일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기도하고 밥을 짓고,
도시락을 싸는 일상이 ‘고단한 루틴’이었겠지만
엄마에겐 가족을 위한 ‘높은 가치’였다는 걸
성인이 되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
정신을 깨우는 ‘고마움’이라는 감각
우리는 살아가면서 종종 ‘없는 것’에 집중합니다.
비어 있는 것, 부족한 것, 남들과 비교해서 모자라 보이는 것.
그런 시선 속에서는 ‘고마움’이라는 감정이 자라기 어렵죠.
하지만 고마움은 ‘내게 이미 주어진 것’을 감사히 바라보는 감각입니다.
소소해 보이지만 따뜻한 순간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상의 수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정성과 배려들.
그런 것들을 발견하는 힘이 바로 정신의 회복입니다.
정신이 깨어 있는 상태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가장 소중한 것을 향해 눈을 돌릴 수 있는 상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