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마음, 정신의 근육을 키우는 에세이, '몸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오후에 서초동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던 길이었습니다.
자동차 계기판에 처음 보는
빨간 경고등이 떠 있더군요.
수도꼭지 모양에 물방울이 뚝 떨어지는 아이콘.
초보 운전자였던 저는 불안한 마음에
서둘러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자기야, 계기판에 이상한 표시가 떴어.
이거 뭐야? 괜찮은 거야?”
사진을 찍어 문자를 보내니
남편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냉각수 경고등'인 거 같다며 집까지는
무리 없이 올 수 있을 거라고 하더군요.
머리로는 ‘괜찮다. 괜찮다.’ 정보를 주입하고 있었지만
서초경찰서 앞 언덕에서 RPM이 올라가도
차량이 힘을 못 받는 듯한 느낌이 들자,
몸은 강렬하게 제게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등에서는 식은땀이 나고, 손이 떨리면서
심장이 몹시 두근거렸죠.
심호흡을 하며 비상등을 켜고 천천히 달리고 있는데...
자유로에 접어들자 이상한(?) 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들렸습니다.
"딸깍, 딸깍, 딸깍."
공포감이 절정에 다 달았죠.
고무가 매 말라 유연성을 잃은 채 끊어질 것 같은데
부품 한쪽을 부여잡고 안간힘을 쓰는 듯한...
딱 튕겨나가기 직전까지 온 듯한 딱딱한 소리,
살려달라고, 더는 안 되겠다고 절규하는 듯한 소리.
제 차에서 나는 소리였습니다.
차량이 보내는 절규에 귀기울이며 차를 세워야겠다고 결심했죠.
간신히 차도를 옮겨 신평 IC 갓길에 차를 세우는 순간,
'허걱!!! 보닛에서 연기가?!'
곧 터질 것처럼 뜨겁고 불안했던 차를 괜찮다며
집까지 끌고 왔다면 어땠을지 상상만 해도 아찔합니다.
다시는 이런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아
사후처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
'운전자가 꼭 알아야 하는 자동차 경고등'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던 중에
'Autonology'에 실린 기사 내용을 보았습니다.
"자동차 계기판은 단순한 속도 표시 장치를 넘어,
차량의 건강상태를 운전자에게 실시간으로 전달하는 소통의 창입니다.
가장 치명적인 신호인 빨간색 경고등이 켜졌다면,
운전자는 즉시 안전한 장소에 차를 세우고 시동을 꺼야 합니다.
주전자가 끓는 모양의 ‘냉각수 수온 경고등’은
엔진이 과열(오버히트)되었음을 의미하며,
계속 주행할 경우 엔진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힐 수 있습니다.
수많은 그림과 기호 중에서도 운전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언어’가 바로 자동차 경고등입니다.."
기사를 보며 제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알게 되었죠.
감정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순식간에 화를 낼 때가 있습니다. 급 발진하는 자동차처럼.
몸은 이미 조심하라고 주의신호를 보냈는데, 알아차리지 못하고
언성을 높이며 후회할 말과 행동을 퍼붓곤 하죠.
그러다 감정에 압도당하는 일이 반복되면 화병이 나고요.
내면의 빨간 경고등
어느 가을날, 딸과 필라테스 수업을 받으러 가던 길이었습니다.
“오늘은 몇 시에 도서관에 가?”
“턱 지방분해 주사를 맞으러 갈 건데?”
순간, 욕이 튀어나올 뻔했습니다.
“와~진짜 대단하다.
재수생이 시험을 앞두고 주사 맞으러 가는 여유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대단한 것 같아.”
영화 ‘인사이드 아웃 2’의 사춘기 소녀의 대화습관처럼
비아냥의 협곡으로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이런 대화패턴은 경멸로 이어졌던 과거사가 있죠.
화가 난 상태에서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냈다면,
또 다시 관계가 타버리겠죠?
다행히 이번에는,
‘내 안에 빨간불이 켜졌다!’ 바로 감정의 경고등을 알아차렸습니다.
화의 감정은 몸을 통해 이미 신호를 보내고 있었죠.
미간은 좁혀지고, 눈에는 잔뜩 힘이 들어가고,
어금니는 꽉 물고 있었거든요.
열감을 느끼며 필라테스 수업에 들어갔습니다.
“어깨너비만큼 팔을 벌려서 Push through Bar를 잡고
위로 쭉 올려봅니다. 내쉬는 숨에 쇄골은 길~어지고
견갑골이 늘어나며 그 사이로 숨을 쉰다 상상해 봅니다.”
선생님의 디렉션에 따라 감각의 알아차림이 있을 때는
잠시 감정이 썰물처럼 밀려나갔다가
‘괘씸하다’는 생각이 밀물처럼 밀려오면
다시 눈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몇 차례 반복했습니다.
딸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안압이 세지는 것을 느꼈죠.
눈에 열기도 함께 발사되고요.
분노가 뜨겁게 몸 안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고
알려주는 듯했습니다.
수업이 끝난 후, 씩씩거리며 혼자 집으로 향하면서
생각 대신 감각에 머물러 보기로 했습니다.
‘괘씸해?’
‘응!'
‘몸 어디에서 괘씸함이 느껴져?
‘턱관절! 어깨! 미간! 눈! 얼굴에 잔뜩!’
‘깊게 한숨 좀 쉬자. 턱관절 열고,
숨 내쉬면서 턱관절과 어깨 힘을 바닥에 툭 내려놔 봐.”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최대한 몸에서 보내는 신호에 귀 기울여 보았습니다.
일렁이는 감정을 ‘감각’을 통해 소화해 보려고 노력했죠.
그랬더니 또 한 번 비아냥의 협곡을 지나고 싶은 마음도
딸에게 소리를 지르며 ‘제발 정신 좀 차려라!!!’
윽박지르고 싶은 언행도 상상 속에서 잠잠해지더군요.
신기했어요.
감정의 경고등은 주인을 살리기 위해
몸에 끊임없이 신호를 보냅니다.
‘감각의 알아차림'을 자동차에 비유한다면 '노란 경고등'입니다.
‘노란색’은 당장 주행은 가능하지만 안전에 문제가 될 수 있으니
빠른 시일 내에 점검하라는 ‘주의’ 신호입니다.
몸이 보내는 주의신호죠.
미간의 찌푸림, 교근의 힘, 심장의 두근거림, 눈의 열감,
뒷목의 뻣뻣함 등에 주의를 두라는 신호입니다.
감각의 알아차림은
“지금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어요. 당신의 몸을 돌봐주세요.”
알려주는 몸의 친절한 언어입니다.
두 번째, '빨간 경고등'은 멈추라는 경고 신호입니다.
감정으로 비유한다면 분노, 격노, 화남의 감정 등이 이에 해당될 텐데요.
이땐 반드시 잠깐 멈춰야 합니다.
'빨간색 경고등이 켜졌다면,
운전자는 즉시 안전한 장소에 차를 세우고
시동을 꺼야 합니다'라는 전문가의 말을 기억합니다.
차량의 빨간 경고등을 무시하고 달렸던 경험은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곧 후회할 말이나 행동을 하려고 할 때마다
정서적 브레이크가 되어 주었습니다.
빨간경고등이 몸에 신호를 보내온다면
안전한 장소에서 자기돌봄을 위해 호흡하세요.
단 10초의 호흡도 좋습니다.
그리고 다시 대화를 이어 나가 보세요.
‘감각의 경고등’과 ‘감정의 경고등’을 내밀하게 알아차릴수록
감정의 홍수상태에 빠진 나를 보다 안전한 상태로 인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