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문 앞에서

몸, 마음, 정신의 근력을 키우는 에세이 ' 몸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2022년 3월 17일.

봄을 시샘하듯 차디찬 바람이 불던 날,

아버지는 고단한 지구별 여행을 마치셨습니다.



장례를 마치고, 4남매는

모두 친정에 모였습니다.

혼자가 된 엄마가 혹여 무너질까 봐

걱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자식들에게 엄마가

“모두 장례 치르느라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조심스레 말을 이어 나갔습니다.



“입관 예배 때 목사님께서 ‘아버님께서 생전에 하셨던

말씀 중에 기억나는 게 있느냐’고 물었을 때

우리 얘들은 다 혼만 나서 그런 가, 별 말이 없더라.”



그 순간, 언니는 목빗근이 튀어나올 것 같은 격양된 목소리로

거친 말을 쏟아부었죠.



“그런 말 하지 마요. 엄마가 그렇게 느낀 건 알겠지만

난 아니니까. 엄마가 아빠한테 조금만 더 다정했더라면

아빠도 그렇게 외롭게 가지는 않으셨을 거예요.

엄마가 사회생활을 안 해봐서 그래!”



언니의 말은 듣기 힘들었습니다.

장례를 마친 지 하루도 채 안 된 미망인에게,

가슴 깊이 묻어두었던 분노를 이 타이밍에

쏟아내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죠.



그 순간, 엄마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습니다.

갑자기 밀려온 쓰나미로 숨이 턱 막힌 사람 마냥.

파르르 떨리는 입으로 대화를 이어 나갔습니다.



“내가 사회생활을 안 해봐서 그렇다고?!

네가 내가 얼마나 힘들게 가정을 지키기 위해

애쓰며 살았는지 알기나 해?

네가 엄마한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사회생활? 사회생활을 안 해봐서 그렇다고?!”



그날 저녁, 우리는 또 다른 초상집을 마주했습니다.

침묵 속에서 엄마와 언니 사이에 감정의 지층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엄마는 누구의 전화도 받지 않았습니다.

친정 근처에 사는 여동생이 찾아가도 문을 열어주지 않으셨죠.

2주 후, 엄마를 찾아갔을 때 무겁게 입을 여셨습니다.



“그날… 그냥 생을 마감하고 싶었어.

내 삶이 통째로 도둑맞은 기분이었거든.

아무 소용없구나 싶었어.

근데… 권사님들이 와서 버텼어.”



매일 문 앞에 죽과 과일을 들고 찾아오시고,

문을 열 때까지 기다리시며 말없이 기도해 주던 권사님들.

엄마는 그 돌봄 덕분에, 다시 전화기를 들 용기를

얻으셨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들 아니었으면…

진짜 나쁜 생각 했을지도 몰라.”



‘기분이 풀리면 전화하시겠지’라는 기다림은,

어쩌면 회피였을지도 모릅니다.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심리학자 애덤 그랜트와

(전) 페이스 북의 COO였던 셰릴 샌드버그의 공저,

『옵션 B』에서 읽은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무엇이든 해 줄게”라는 말은 의도는 좋지만,

오히려 고통받는 사람에게 의무를 전가할 수 있다.

그냥 ‘어떤 일’을 하라.

구체적으로.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내가 햄버거 시킬 건데, 뭐 빼고 시켜줄까?’

‘내가 한 시간 안에 병원 로비에 있을게.’

그렇게 구체적으로 사랑하라.”


제가 아팠던 때를 떠올려 보니,

'구체적으로 사랑하라'라는 말이 더욱 공감이 되더군요.

허리 디스크로 몇 달을 침대에 누워 있었을 때,

이웃사촌들이 “뭐 필요한 거 있어?”라고 묻는 대신,


“달달한 빵 먹고 충전해.

아주 당 충전 제대로인 놈으로 문 앞에 걸어 뒀다.”

“얼굴 보고 싶은데 부담될까 싶어

죽 걸어놓고 갑니다. 어서 먹고 쾌차해요.”


몸과 마음에 문이 닫혀 있을 때,

말이 아닌 행동이 전해주는

에너지가 있더군요.

묻지 않아도 전해지는 관심,

부탁하지 않아도 챙겨주는 온기에

기대어 일어날 힘을 찾았으니까요.

(물론 ‘나 자신이 대우받고 싶은 대로

타인을 대우하라’는 황금률과

‘그들이 대우받고 싶어 하는 대로 대우해 주라’는

백금률이 적절히 사용된다면 더 좋겠지요.)


회복탄력성에 영향을 주는 신념 가운데

‘존재감’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염려해 주고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안다는 뜻이죠.



심리학자이자 ‘감정의 치유력’의 저자인

다이애나 포샤 박사는 말합니다.

‘회복력은 타자의 생각과 가슴속에

나라는 존재가 자리하고 있다는 걸

느낄 때 일어나는 힘’이라고.


어쩌면 ‘그냥 어떤 일을 해 주자.’라는 다짐과 실천은

지하세계로 꺼져가는 한 영혼을 끌어올려

‘소중한 당신이 여기 이곳에 존재함을

내가 알고 있어요.’라고 보내는

하트 시그널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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