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마음,정신의 근육을 키우는 에세이 '몸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딸~ 뭐 해?”
“네일 아트 하는데?”
“4시간 동안?”
“손톱 연장술은 그 정도 걸리지.”
“대단한데?”
평소에 지루함을 잘 못 견디는 딸이 4시간 동안
꿈쩍도 안 하고 몰입했다니 놀랍더군요.
‘씩’ 웃으며 답하는 딸의 모습이 얼마나 행복해 보이던지요.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이러한 사로잡힘의 대상을
‘블리스’(Bliss·희열)라 불렀습니다.
블리스는 황홀경에 가까운 기쁨, 여기가 바로 천국이 아닐까 하는
행복한 상상에 빠지게 만드는 기쁨입니다.
일상의 괴로움은 늘 존재하지만 일상의 괴로움과 짜증을
잊게 할 만큼 크고 작은 블리스는 늘 존재하죠.
유년 시절이 떠오르네요. 방과 후 매일 들렸던
놀이터 정글짐 옆 뽑기 천막!
수업 시간에 깃들었던 긴장감과 핀셋에
침을 발라가며 우산모양을 다듬을 때 느끼는
긴장감과는 차원이 다르죠.
근막 사이로 스며드는 달달한 행복감!
성인이 된 후엔 카페에서 좋아하는 따뜻한 라테 한잔
시켜놓고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을 때,
전율이 느껴질 만큼 아름다운 문장을 발견했을 때,
써 놓은 글들을 퇴고할 때,
한 문장 또는 한 단어, 쉼표 하나를 문맥에 맞게
적확하게 수정했을 때!
5시간 동안 꿈쩍 안 하고 수정하며 몰입했을 때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죠.
‘되는 일이 하나도 없네’ 낙심되는 순간에도
내 안의 작은 블리스들은 찬기로 가득했던 영혼을
따스하게 감싸줍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모든 일상의 고난을 잊게 만들죠.
‘감수성 수업’의 저자 정여울 작가는
“일상의 블리스는 ‘외부의 행운’이 없어도
‘내 안의 희열’을 가꾸어 나가는 법을 배우게 한다.”라고 표현하더군요.
저만의 블리스는 고통 속에서도 내 안의 기쁨을
찾는 주도적인 힘을 선사했습니다.
노란 새 한 마리
심성희 작가의 작품 <Rainbow> 속에서
발견한 블리스를 하나 소개해 볼게요.
한 남자가 지붕 위에 비스듬히 앉아있습니다
축 처진 어깨와 깊게 파인 팔자주름.
궂은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지붕 위로 올라온 걸 보면 ‘무슨 사연이 있나?’ 싶은 남자의 낯빛.
장대비가 그림 속 남자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그 순간, 남자의 어깨너머로
핑크빛 꽃구름이 보았습니다.
비와 꽃구름이 이질적으로 느껴지려는 순간,
남자의 왼쪽 정강이 앞에
노란 새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그가 새에게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하소연하는 것인지,
새가 그를 위해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작은 존재 하나가
그림의 온도를 바꿔 놓은 듯했습니다.
비와 함께 핑크 빛 하늘과 무지개 빛 빨래가 눈길을 끌었거든요.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요?
크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이
다시 살아낼 용기를 주는 순간들이 있지 않나요?
가수 양희은 씨는 자존감이 떨어질 때
자신만의 작은 기쁨들을 챙긴다고 했습니다.
새벽에 대중목욕탕에 가는 일, 자수를 놓거나 깃을
고쳐 입는 일이 기쁨이라고.
남들은 그게 무슨 기쁨이냐고 하지만 그녀는 말합니다.
“충족이 자족이고, 자족이 자존이다.”라고.
수업 중에 학생들에게 Bliss를 물었더니,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바뀔 때
나는 바람 냄새가 좋아요.”
“빨래한 이불을 덮을 때 서걱거리는
소리와 감촉이 좋아요.”
“댄스 동아리 연습이 끝난 후
텅 빈 연습실의 불을 끌 때 짜릿해요.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아이들만의 무지개 빛 기쁨에
덩달아 마음이 즐거워집니다.
학부모님들은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가족들이 다 잠든 새벽,
드립 커피를 마시며 책 읽는 시간이요.”
“아이 학원 픽업 가는 길,
차 안에서 혼자 음악 듣는 시간이 너무 좋아요..”
“아이들 다 등교시키고 커피믹스를 마시며
라디오 듣는 아침이요.”
커피와 책, 음악, 나만의 시간이 이 날 만난
어머니들에겐 블리스였죠.
개그우먼 장도연 씨는 하루를 시작하기 30~40분 전에 일어나
일기 쓰기, 읽기, 반신욕을 하며 아침을
‘꽉 채우는 느낌’으로 보낸다고 했습니다.
“오후를 망쳐도 아침이 꽉 찼으면
괜찮은 하루라 느껴진다”는
그녀의 Bliss에 저도 미소가 지어지더군요.
사람마다 Bliss List는 다를 테지요.
어떤 이는 커피 향에, 어떤 이는 바스락 거리는
이불 감촉에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하니까요.
기쁨은 자라는 감각입니다.
자신만의 작은 기쁨을 자주 떠올리고,
자주 접촉하는 사람은
작고도 단단한 회복탄력성을 지닌 사람입니다.
“당신만의 Bliss List가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