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탕과 눈 사이

몸, 마음, 정신의 근력을 키우는 에세이


매주 수요일이면 저는 일산에서 강변역으로

대중교통을 타고 표현예술치료 수업을 들으러 갑니다.

왕복 세 시간. 더운 공기와 낯선 이들의 땀냄새가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여름날의 지하철.

그날도 지친 몸을 이끌고 자정이

다 되어 집에 도착했습니다.

남편을 보자마자 귀갓길의 힘겨움을 토로했죠.


“자기야, 나 오늘 지하철에서 너무 힘들었다.
땀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와… 정말 숨을 못 쉬겠더라.”


그러자 돌아온 말이,


“뭘 그렇게 냄새에 민감해?

나는 작년에 어땠는지 알아?
1년 동안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 타고 다녔다고.

이어폰 안 가져간 날이면 미치는 거야.”

“어… 그래…”


말끝을 흐리며 안방으로 들어갔습니다.

화제를 전환시켜 자기 이야기만 하고 있는

신랑과 더 길게 이야기할 여력이 없었거든요.

그날의 피곤함도 한몫했고요.








물론 저도 비슷한 실수를 한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운전을 하며 말했죠.

“자기야! 저기가 내가 다니는 스크린 골프장이야.

코치가 갈 때마다 자세를 조금씩

알려주는데 진짜 도움이 돼.”


그 말을 듣자마자, 저는

“자기야 손톱 좀 깎아야겠다.

비즈니스 하는 사람이 손톱이 지저분하면 안 되지.”


그날따라 유난히 길어 보이는 신랑의 엄지손톱에만 눈길이 가더라고요.

남편은 말없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운전에만 집중했습니다.

저와 비슷한 느낌이었겠죠?

연결감 하나 없는 대화, 자기가 꽂힌 것에만 신경 쓰는 상대.

칼 융의 말이 문득 떠오르더군요.

‘고독은 내 곁에 아무도 없을 때가 아니라

자신에게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의사소통할 수 없을 때 온다.'








'감정코칭' 대화훈련을 하면서 알았습니다.

이런 방식의 대화가 ‘멀어지는 대화’라는 것을.

부부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우리 부부와 같은 방식의 대화를 나누는 부부를

어렵지 않게 발견하곤 합니다.


예전에 '우리들의 차차차'라는 TV프로그램에서

안현모·라이머 (전) 부부가 출연한 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고성에서 대구를 잡아온 남편,

라이머씨는 요리 준비로 분주했고,

3일 밤을 새운 아내, 안현모 씨는

몹시 지쳐 보였죠.


잠깐, 그들의 대화내용을 살펴볼까요?

안현모: (부엌 작업대 위에 있는 물건들을 보며) 이거 버리는 거야?

라이머: (고성에서 잡아 온 대구를 보며)

이거 기가 막힌다.

안현모: 이거 넣어 놓는다.

(불필요한 식재료들을 냉장고로 옮기며)

라이머: 정말 기가 막힌다.

안현모: 나 내 할 일 하고 있어도 되는 거지?

도움도 안 되는데.

(안현모 씨는 슬며시 자기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부엌에 있던 라이머 씨는,

라이머: 뭐 해 여보? 나 마일리지 적립해줘.

안현모: 아 지금? 이따가 천천히 해 주면 안 될까?

나 지금 눈이 너무 아픈데.

라이머: 세금 좀 내고 확인해서

나한테 보내줘야 할 것 같은데.


(잠시 후)


20251023_114139.jpg




대구탕 맛을 보는 라이머씨는

자신의 요리에 감탄하며 말했습니다.

라이머: 진짜 맛있어. 진짜. 어제까지 만해도

고성 앞바다에서 뛰어놀던 물고기인데,

내가 이렇게 데리고 왔어. 와~~

안현모 : 아… 운동을 했더니 진짜 잘 수 있을 것 같아.

라이머 : (대구탕을 먹으며) 너무 부드러워.

안현모 : 나 너무 눈이 아파.”

(3일 밤을 제대로 잠도 못 자고 일한 현모 씨)


라이머 : 내일 3시에 골프레슨 가능한 거야?”

오늘 당신 뭐 한다 그랬지?

안현모 : 내 취미생활 해야지.”

라이머 : 마일리지 까먹지 말고 해 줘.

(안현모 씨의 어이없는 표정으로 라이머씨를 바라봅니다.)


서로 다른 주제의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지더군요.
고성의 물고기는 맑은 대구탕이 되었지만,

서로의 마음은 짙은 해무 속에 있는 듯 보였습니다.










이처럼 상대의 대화주제에 반응하기보다

자신의 이야기로 화제를 전환하면

서로가 연결감을 느끼기는 어렵죠.


상대방이 말한 주제와 상관없이

자기 이야기를 하는 행위가

"나는 당신의 이야기에 관심이 없습니다." 또는

"당신이 이야기하는 순간 떠오른 나의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라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대화는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연결하는 것입니다.

서로가 경청해주지 않으면

공기 중에 떠도는 생활소리일 뿐이죠.

서로의 소리가 잘 들리려면 서로의

귀와 마음이 먼저 열려 있어야 합니다.








‘말센스’의 저자 셀레스트 헤들리는 말합니다.

주인공이 되고 싶은 욕구를 참아낸다.

우리는 상대와 대화를 나누기보다

자기 하고 싶은 말을 하기에 바쁘다.


상대가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언제나 나와 결부시켜 얘기하는 것이다.

이래서는 상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나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내가 주인공이지만

상대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상대가 주인공이 돼야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약간 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