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하인리히 법칙


어느 여름날.

딸과 함께 필라테스를 마치고 집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7시.

집 안 가득 시원한 바람이 맴돌았습니다.
일찍 퇴근한 남편이 에어컨을 풀가동해 둔 덕분이었죠.
운동으로 인해 온몸은 땀으로 흥건했고 33도의 고온 다습한 여름날의 온도를 마주하다 들어오니 찬 바람이 그저 반갑더군요. 땀에 절은 몸을 식히며 신랑에게 감사를 표현했습니다.


“자기야~ 쾌적한 환경 만들어줘서 고마워.”

그런데 돌아온 반응은 없었습니다.
소파 저편에서 무언가 말소리가 들렸지만 명료하게 들리지 않았죠.

대신 아빠 옆으로 가 앉아 있던 딸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아휴… 또 그 소리. 정말… 그만 좀 해!”

‘무슨 말을 들은 거지?’
부엌으로 딸을 불렀습니다.

“아빠가 뭐라고 했는데?”
“몰라.”
“말해봐.”
“ ‘쾌적한 환경 좋아하시네’ 하면서 뭐라 뭐라 하잖아.”


순간, 남편의 마음을 바로 알아차렸습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저녁밥을 제 때 챙기지 않았던 것!

그것이 그의 마음에 쌓여 있었던 것입니다.

신랑의 말에 기분이 상해,
“뭘 그렇게 밥 안 해줬다고 궁시렁 대?”
라고 했다면, 아마 남편은
“밥이나 해놓고 그런 소리해라.”
맞받아쳤을 것입니다.

‘쾌적한 환경 좋아하시네’라는 한마디는 단순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 안에는 소소한 불편과 불만, 작은 실망들이 켜켜이 쌓여 나온 말일 겁니다.
그리고 마침내, 감사의 말조차 비꼬는 말로 되돌아온 거죠.







신랑의 반응을 보며 문득 떠오른 개념이 있습니다.

바로 하인리히 법칙입니다.
산업안전 분야에서 유래한 것으로, 다음과 같은 도식을 따릅니다.

‘1건의 큰 사고는 29건의 경미한 사고와 300건의 사소한 징후가 선행된다.’

즉, ‘큰 사고’는 갑작스레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수백 건의 작고 미미한 위험 신호가 누적된 결과라는 것입니다.


하인리히 법칙은 대화에도 비슷하게 적용된다고 봅니다.

“1번의 격한 다툼은, 29번의 미묘한 갈등이 있고,

300번의 불편한 표정, 묵살된 말, 지나친 농담, 단절된 응답 위에 있다.

라고 풀이하고 싶습니다. 상처 주는 말, 비난하는 말, 멀어지는 말,

초감정을 건드리는 말, 옳은 소리를 윽박지르며 하는 말 등이

결국 하나의 큰 싸움으로 폭발하죠.


어쩌면 지난번 '대구탕과 안구사이'라는 글에 기재했던

라이머 (전) 부부의 멀어지는 대화패턴도

하나의 큰 사건(이혼)이 터지기 전까지

수십, 수백 건의 전조증상이 있었을 겁니다.


수강생들에게 격한 다툼 또는 단절이 있기 전

어떤 말들이 오고 갔는지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함께 문장들을 살펴볼까요?


“뭐 그런 거 가지고 화를 내냐?”

“내가 싫다고 100번은 말했잖아!”


“나는 돈 버는 사람이잖아.

다른 것은 좀 신경 안 쓰이게 하면 안 돼?”

“돈 버는 걸로 유세 떠는 거야?

독박육아가 얼마나 힘든지 알기나 해?!”


“엄마는 왜 이렇게 나를 통제해?”

“내가 뭘 그렇게 통제했다고 그래?

너를 보호하기 위해 이러는 거잖아?!”


“너는 쉽게 포기하는 거 그게 문제야.”

“내가 뭘 그렇게 쉽게 포기했다고 그래? 그러는 당신은?”



“자기야 나 눈이 너무 아파”

“자기는 왜 이렇게 징징대. 아프면 병원을 가.”


“넌 그것도 모르냐? 그런 건 좀 배워라.”

“팀장님도 실수하신 적 있으시잖아요.”


“그 옷이 그게 뭐냐. 회사가 놀이터야!”

“사 주고나 그런 소리 하시던가요.”


“나한테 감기 옮기지 않게 조심해라.”

“그게 직원한테 할 소리예요?”


“네 몸이 쓰레기통이냐? 남은 반찬 남기는 꼴을 못 보는구나.”

“제가 좋아서 먹는 건데요?!”


“요즘 벌려 놓은 일들이 많아서 그런 가 너무 힘드네.”

“이것저것 하려고 하지 말고, 한 우물을 진득하니 파.”


36년간 3000쌍의 부부 코칭을 했던 존 가트맨 박사는

관계의 독들에게는 일정한 대화 패턴이 있다고 했습니다.

위의 대화처럼 비난과 방어의 말들이 오고 가다가 경멸까지 하게 되면

결국 담쌓기를 선택한다고.

지금 이 순간 상대가 불편함을 토로했다면

어쩌면 큰 사건(담쌓기 또는 이별, 이혼, 절교)을 직면하기 전

위험을 감지하라고 알려주는 고마운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만약 내가 생각하기에는 별것(?) 아닌 말에

상대가 별것인 양 갑자기 화를 낸다면 점검해 보세요.

내가 표현한 말들로 인해 상처받은 상대의 마음에

작은 균열들을 쉽게 지나치지는 않았는지.

말에 가시가 있는 이유는 가시를 말에 박기까지

상대의 미미한 상처들을 섬세하게 돌봐 주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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