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마음, 정신의 근력을 키우는 에세이
결혼한 지 9년 차가 되는 S 씨는
명절 때마다 마음이 불편합니다.
설 전날 차례음식을 준비할 때면
동생네 부부가 적잖이 늦게 등장하는 것이
불만이었죠. 불만은 동생네에게만 있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왜 내가 늦을 때만 뭐라고 그래?
동생네가 늦으면 뭐라고 안 하면서?”
“그러면 네가 한 마디 해.”
“왜 내가 악역을 맡아야 하는데?
엄마가 좀 따끔하게 이야기해.
왜 매번 나한테만 늦는다고 하고 동생한테는
아무 말도 못 해?
아빠도 그렇고 엄마도 그렇고.
맨날 우리한테만 뭐라고 그러잖아!”
그 순간 S 씨의 어머니는
갑자기 언성을 높이며 말했습니다.
“난 생각이 안 나는데.
내가 언제 너한테만 뭐라고 그랬어!
그리고 나는 네가 하는 게 다 마음에 드는 줄 알아?!
나도 참고 살고 있어. 어떻게 사람이 불편한 걸
다 이야기하고 살아! 좋은 게 좋은 거지 하고 참는 거지.”
S 씨는 한숨을 쉬며 조금 전 보다
더 큰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좋은 게 좋은 게 아니니까 말하는 거잖아!!!”
‘약간의 불편함’이 풀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쌓이다 보면 분노로 변할 때가 있죠.
화를 내도 상황이 변하지 않으면
대화가 단절되고요.
어떻게 하면 분노까지 가지 않고
안전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요?
누군가의 의견이 비난으로 들리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방어를 합니다.
어느 한 부분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한 것뿐인데
상대가 ‘나는 네가 하는 게 다 마음에 드는 줄 알아?!
나도 참고 살고 있어.’ 행동 전체를 나무라는 것으로
해석하는 순간 격노하기도 하죠.
관계 코칭 전문가 존 가트맨 박사는
비난에 대해 방어 대신
‘약간 인정’이 관계의 해독제가 된다고 했습니다.
사례를 하나 더 소개해 보겠습니다.
봄바람이 살랑거리던 3월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봄나물이 먹고 싶어 마트에서 달래, 냉이, 참나물,
방풀나물 등 네다섯 가지를 골고루 산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 주간 강의와 강의준비로 일주일간
저녁밥을 못한 채 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토요일 오후, 냉장고 문을 연 신랑이
신선실에 쌓여 있는 봄나물들이
시들어 있는 것을 보고는
한숨을 쉬며 한마디 하더군요.
“돈이 남아도냐? 남아돌아? 봄나물 다 시들었다.”
그 순간,
“나는 노냐? 나는 놀아?
일 하느라 놓친 거잖아!!!”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배운 대로 약간 인정을 해보고 싶더군요.
(오은영 박사님의 처방법도 동일했죠.
“옳은 소리를 기분 나쁘게 전하는
남편의 말을 그대로 따라 해 보세요.
이 공식을 구구단처럼 외우세요.”였으니까요.)
“그러네. 돈이 남아도는 것도 아닌데.
아깝네. 다음번엔 먹고 싶은 거 하나만 사야겠다.
그리고 바로 무쳐 먹어야겠다. 그렇지?”
약간 인정이 남편의 편도체를
안정화시켜 주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잘 좀 하자.”라고 부드럽게 말하고는
소파에 앉아 TV를 보더라고요.
놀라웠어요. 신랑의 격양된 목소리 톤이
순식간에 낮아졌거든요.
그날 이후, 저는 ‘약간 인정’은
상대와 나를 위한 말임을 깨달았습니다.
상대의 불편한 마음의 빗장을 풀고,
해독제와 같은 역할을 했으니까요.
무엇보다도 관계의 문이 닫히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은 인정이야 말로 감정의 파국을 피하는 지혜였죠.
우리는 종종 ‘사과는 지는 것’이라 생각하고,
‘인정은 약점의 노출’이라 여기곤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인정은 굽히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꺾지 않기 위한 대화의 기술입니다.
S 씨의 어머니가 제삿날,
“그래? 내가 너한테만 뭐라고 그랬니?
그렇게 느꼈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하마.”
라고 했다면 상황이 어땠을까요?
아들의 목소리가 격양된 채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주며
대화가 급 마무리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물론 그렇게 반응하기까지 서로의
관계 에너지가 어떠했는지 맥락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