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자원

생각이 말을 걸어올 때

by 마음치유사 김근하


“모델 일을 할 때였어.

그날은 내가 피날레를 장식하는 중요한 무대였지.

하지만 엄마는 그날 누군가 크게 다치는 꿈을 꿨다며

무대에 서지 말라고 했어.

내가 다칠 거라며.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엄마의 기우였을 뿐.

미래를 늘 걱정하는 엄마가 내 미래를 망친 거야!”


드라마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에서 모델이었던

‘복동희’씨의 대사입니다.

그녀는 예지몽을 꾸는 엄마의 과도한 걱정 때문에

자신의 중요한 무대를 포기했다고 말합니다.

예지몽을 꾸지 않더라도 우리는 일상에서 비슷한 일을 경험합니다.

가만히 앉아 있는데 갑자기 들이닥치는

불안한 생각들로 복통을 느끼기도 하고

심장이 빠르게 뛰어 숨 고르기를 하면서도

일을 망칠까 봐 노심초사하는 저를 발견하곤 하거든요.


저만 그럴까요?

독서모임 회원들과 임상 심리학자 키렌 슈나크의

‘불안을 알면 흔들리지 않는다’라는 책을 함께 읽으며

“여러분은 어떤 불안이 있나요?”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다양한 불안들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러다가 발표를 망칠지도 몰라.”

“이러다가 팀이 해체될지도 몰라.”

“이러다가 사업을 망칠지도 몰라.”

“이러다가 가족 모두 굶어 죽을지도 몰라.”

“이렇게 차선을 바꾸다가 크게 다칠지도 몰라.”

“이러다가 좋아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날지도 몰라.”

“이러다가 전기 선에 걸려 넘어질지도 몰라.”


회원님들의 불안한 생각을 들으며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위로가 되기도 하고

우리의 삶이 안쓰럽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불안을 안고 삽니다.

안타깝게도 미래는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그 일을 마치 눈앞에 있는 현실처럼 상상하며 불안해하죠.

내면의 시나리오는 끝도 없이 펼쳐지고,

생각은 점점 더 견고하게 내면에 뿌리를 내립니다.


팔순 노모에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친정 엄마는 불안해하셨습니다.

“요즘 잠이 너무 많아졌어. 아무래도 이상해.”
“잠이 많아진 게 왜 이상해?”
“너희 아빠도 돌아가시기 전 두 달은 그렇게 주무셨잖니.

나도 이렇게 잠들다가 죽는 건 아닌가 생각하니까 두려워…”


친정 엄마는 잠이 많아진 자신을

‘죽음에 가까워지는 몸’으로 해석하고 있으셨죠.
우리는 사건 자체보다 사건을 평가하는

자신의 관점에 따라 고통을 더 격하게 경험하곤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불안해하던 그 일, 실제로 일어났던 가요?

불안에 관한 하나의 연구 보고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심리학자 루카스 라프레니에르와

미셜 뉴먼 교수는 범불안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했습니다.

10일간 자신이 걱정하는 모든 내용을 기록하게 했습니다.

그 뒤 20일 동안 걱정들이 실제로

일어났는지 하나하나 확인하도록 했죠.

그 결과 걱정하는 일의 91.4%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8.6%는 일어나더라도 경미한 수준이었고

4명 중 1명은 걱정한 일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불안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연구보고서를 접했으니 불안이 사라지셨나요?

여전히 불안합니다.

안타깝지만 불안은 없앨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한 늘 함께 할 겁니다.


불안한 생각은 생존이나 안전에 위협을 느꼈던 경험,

그로 인해 격한 감정을 느껴졌을 때

해마에 장기 기억으로 저장된 마음씨의 표출입니다.

불안은 주인을 더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비슷한 경험을 하거나 회상하기만 해도 편도체를 활성화시킵니다.


걱정이 앞서 마음이 불편했을 때를 떠올려 보세요.

화재 경보시스템이 울린 듯 요란하게 내면을 흔들며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게,

안절부절못하게 각성상태로 만들어 놓죠.

밀림 속에서 호랑이를 마주한 사람 마냥.

몸을 보호하려는 차원에서 발동하는

불안감은 고마운 신호이지만

습관적으로 불안감을 느낀다면 몸은 점점 과 활성화되어

시종일관 긴장성 수축감을 느끼게 합니다.

몹시 괴로운 일이죠.





습관성 긴장에서 벗어나 불안과

새롭게 관계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 번째, 불안한 생각을 알아주세요.

우리는 보통 부정적인 생각은 제거하려 애씁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 그럴수록 좋은 생각 해.’,’ 불안해하지 마.’라고요.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럴수록 부정적 생각은 더 힘이 세지더군요.

방법을 달리해 보기로 마음먹었죠.

무엇을 이야기해도 수용해 주는 친구나 부모님을 떠올려보세요.

내게 얼마나 안정함을 주었는지.


나 스스로도 생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었습니다.

생각이 출몰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까요.

밀어내려 하기보다

‘아 내가 불안하다고 생각하고 있구나.’

'일을 망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구나.’

알아주었습니다.

와튼 스쿨의 심리학자, 애덤 그랜트는 말합니다.

’ 불안은 수용되거나 공감받으면

힘이 약해지고 수그러듭니다.’



두 번째, 지금 이 순간 편안함을 느끼게 해 주세요.

마음은 근육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온천욕을 하면서 화를 내는 사람 보셨어요?

아마 없으실 겁니다.

우리 몸은 근육이 이완되면 편안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근육의 긴장감을 풀어주면 뇌는 ‘지금 안전하는구나.’로 인식합니다.

제가 자주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는 두 손으로

턱관절을 감싸면서 호흡하는 겁니다.

긴장감을 대표하는 부위로는 턱관절, 목 근육, 흉쇄 유돌근이 있습니다.

이 부위의 근육들을 풀어주는 것만으로도 이완에 도움이 됩니다.



세 번째, 가벼운 움직임을 시도해 보세요.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요즘은 하루에 얼마나 움직여?”
“허리가 아파서… 교회 갈 때도 혼자 다녀올 자신이 없어.”
“그럼 어디까지는 왕복으로 가능해?

“아파트 후문?”

“그럼 아파트 후문까지만 산책하는 것부터 시작해 볼까?”


그날 이후 엄마는, 아주 짧은 거리지만

매일 규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규칙적인 신체의 움직임은

신경계에 가해지는 생리적 스트레스를 완화시켜 줍니다.
조금씩 불안의 그림자가 걷히기 시작했죠.

불안은 생각에서 커지고, 몸의 움직임으로 작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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