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티백을 우려내본다 - #. 추억의 티백
돌아보면, 나는 할머니의 쇠약해짐을 감지한 아주 오래 전부터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평생에 걸쳐 받은 사랑의 깊이와 크기, 농도만큼이나 상실이 내게 안겨줄 충격의 진도가 어마어마할 것임을 잘 알기에 일찌감치 스스로 진통제를 놓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 글을 할머니께 읽어드린 적이 있어요. 눈을 감고 들으신 할머니는 특유의 감탄하는 말투로 “좋다”고 하셨어요. 당신의 마음을 대변하듯 쓴 편지를 흡족하게 여기신 모양이에요. 마지막 순간 산소포화도가 떨어지며 할머니께서 혼자만의 시간을 견디시는 동안, 나는 이 편지를 곱씹었어요.
사랑하는 나의 공주,
너를 처음 만난 날, 19##년 3월 13일.
네가 태어났는데 꼭 이상한 기분이 들더구나.
자식이 넷이니 네가 첫 번째 손주도 아닌데 말이야.
이상하게 마음속에 평안이 번지며 어떤 위안 같은 게 들었어. 무척 예뻤고 특히 넌 눈이 빛났다. 영롱한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자면 옹알이조차 시작도 안 한 네가 나에게 무어라고 말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지. 종일 너를 안고 그 별을 바라보느라 하루가 저무는 줄 몰랐던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지. 큰아들 집에 있다가 기어이 네 아빠 집으로 온 것도 너를 내 손으로 기르기 위해서였단다.
쉰다섯, 요즘 같으면 할머니라는 말이 매우 어울리지 않는 청년의 나이라지만 그때 내겐 이미 ‘함미’라는 호칭이 매우 익숙했단다. 회갑잔치 때 고운 다홍치마에 색동저고리를 한 너와 두 손을 잡고 춤을 추던 일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친척들은 나를 참으로 부러워했다. 장위동에 추도예배를 갈 때나, 개포동 큰 시누이집에 갈 때나 손녀가 강아지처럼 내 손을 붙잡고 함미, 저기야! 하면서 길 안내를 해주니, 그 먼 길을 어떻게 찾아왔냐고 가족들은 묻지도 않았지. 여덟 살짜리가 참 물건이라고 입이 마르게 칭찬을 해대니, 나는 네 자랑을 하느라 시누이들 찾아다니는 일이 그렇게도 재미가 있었단다.
어느 겨울 밤새 열이 펄펄 끓던 너를 업고 바깥에 찬 공기를 쐬어 주며 열을 내리던 그날엔 심장이 쪼그라들어 네가 다 나았는데도 나는 한 달이 지나서야 겨우 회복했단다. 이튿날 곧장 시장으로 달려가 모과를 잔뜩 사다가 청을 담가 두었지. 너는 그걸 먹으면 감기가 똑 떨어졌으니까. 네가 시다고 고개를 돌리면 아직 아픈 거였어, 건강한 너는 그걸 꿀꺽꿀꺽 잘도 마셨지.
너와 떨어져 지낸 그 시절이 가장 외로운 시절이었다. 처음엔 용감한 네가 먼저 혼자 미국으로 떠났고, 네가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큰아들이 나를 모시겠노라며 비행기표를 보냈었지. 형제들은 자식 잘 키워 미국에 몇 번이나 다녀온다며 나를 부러워했지만, 가장 친한 친구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내겐 유배의 시간처럼 생기 없었단다. 땡큐, 노 잉글리시, 말고는 할 수 있는 말도 없었으니 말이다. 네가 초등학교에 다녀와서 내 앞에 에이 비 씨 디를 써놓고 선생 노릇할 때 잘 배워뒀어야 하는데, 그제서야 때늦은 후회를 하곤 했지.
대학교 시험기간이면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른단다. 전화를 걸면, 행여나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너에게 방해가 될까 염려가 돼 과일 몇 조각 잘라놓고는 아파트 1층 현관문에 내려가 네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지. 자정이 넘어 들어온 네가 “추운데 새벽까지 왜 밖에 서있었느냐”고 성화를 부려도 네가 와야 잠을 잘 수 있는 걸 어쩌겠니.
김밥을 싸 들고 서울대공원으로 소풍을 갔던 그날 기억나니? 날씨가 좋다며 깎던 과일을 통에 담아 과천으로 향했던 봄날을 나는 자주 되감아본단다. 동물원에 가본 게 얼마 만인지, 잔디밭에 앉아 나른한 시간을 보내며 모처럼 여유를 즐기던 때가 어제 같구나. 내가 걸음 걷는 걸 힘들어하게 되면서 그날이, 내가 걸어서 외출한 마지막 날이 되었지.
기자가 된 네가 무시무시한 사람들을 혼내주는 기사를 썼다고 하면, 나는 쉽사리 칭찬을 해줄 수가 없었다. 그 사람들이 너한테 해코지라도 하면 어쩐다니. 현관에서 너를 기다리는 동안 광택이 나는 검은색 고급차가 집 앞에 한 동안 서 있으면, 혹시나 너를 잡으러 온 권세자들이 아닌가 할머니는 마음이 조마조마했단다.
품에 쏙 들어오던 너를 안고 기도하던 날들이 이젠 먼 옛날이 되어, 이젠 네가 나를 토닥이며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정신이 지금처럼만 맑게 해달라고 나를 위해 기도하는구나.
살면서 숱한 사람을 만나고 떠나보내고, 음식을 나누고, 같이 울고 웃었지. 구순이 되어 보니, 그중에도 늘 곁에서 세월이라는 여행을 함께 한 살붙이가 가장 좋은 친구였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이젠 글씨가 생각이 나지를 않아. 받침을 빼먹는 건 예사고 자꾸만 글자가 생각이 나질 않아. 너에게 전하고픈 말들을 고상하게 편지로 옮기고픈데 자꾸만 기억이 흐릿해져 가니 고달프기만 하다. 그래도 참 신기하지, 너와 인연이 닿았거나 될 뻔했던 녀석들은, 생김새가 어떻고 무슨 일을 했는지, 너를 속상하게 하진 않았는지, 대부분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이름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말이다.
너와의 우정으로 충만했던 이 소풍을 끝낼 날이 이젠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요즘 들어 부쩍 더 든다. 새벽에 눈이 뜨여 창 밖을 내다보다가, 창가에 닿아있는 나뭇잎과 그 위에 내린 이슬을 한 동안 바라보았다. 이윽고 해가 떠오르고 작지만 충만했던 한 방울의 이슬이 스러지는 걸 보니 내 인생과 꼭 닮았지 뭐니.
너는 내가 백 살까지 살 거라고, 어린 시절부터 네가 그리 기도했으니 반드시 이뤄질 거라고 줄곧 나를 북돋워주곤 했지. 그런데 너의 그 간절한 기도가 이뤄진다 해도, 이제 그 또한 얼마 남지 않았구나. 인생을 마무리한다는 생각이 왜 아쉽지 않겠니, 왜 두렵지 않겠니.
그럴 때마다 아침저녁으로 네 목소리를 들으니, 나는 참말 행복한 사람이다. 이 소풍 끝나는 날, 내가 아버지 앞에 가거든 그곳에서 너를 축복하마.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말아 다오. 부디 이젠, 남들일랑 그만 챙기고 너만을 생각하며 온 힘을 다해 행복하게 살아다오.
네 소풍을 응원하며 기다릴 너의 친구, 망구, 함미가.
슬픔의 티백을 우려내본다는 세 개의 소제목으로 나뉘어요.
이별의 잔에는 상실 후 겪는 여러 감정과 혼란을 적으려고 해요.
추억의 티백에는 할머니와 함께 한 추억들을 곱씹으며 즐거운 기억을 불러올 거예요.
슬픔의 향에는 식탁에 쌓아둔 ‘상실의 책탑’에서 건져올린 문장들과 책을 읽으며 든 생각들,
마음 치유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남기려고 해요.
‘추억의 티백’ 글 싣는 순서
① 소풍
② 쏠트커피와 종이학 스무마리
③ 요양원 도둑(?)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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