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러운 F
# 소심하고 충실한 F로 살고 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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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MBTI 성격 유형 중 나의 MBTI는 대한민국에 몇 없다는 ENFJ이다. MBTI는 Myers-Briggs Type Indicator의 약자로, 마이어스와 브릭스가 칼 융(Carl Jung)의 심리 유형론을 바탕으로 고안한 성격 유형 검사도구이다.
아래의 4가지 구분자에 따라 총 16가지 조합이 존재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16가지 중 한 유형으로 자신을 분류하고 해석하는 것을 즐기고 있다. 각 MBTI 유형의 특성 중 자신과 일치하는 부분에서 크게 공감하고 이를 주변 사람들과 비교해보는 식이다.
1) 외향 – 내향 (Extraversion - Introversion)
2) 감각 – 직관 (Sensing - Intuition)
3) 사고 – 감정 (Thinking - Feeling)
4) 판단 – 인식 (Judging – Perceiving)
*이 글은 MBTI를 분석하기 위한 글이 아니기에 MBTI에 대한 설명은 여기서 끝내겠다.
네 가지 구분자 모두 흥미롭지만 이 글에서는 사고와 감정 즉, T와 F에 대해서만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이 둘의 구분이 매우 뚜렷하고 한 사람의 특성을 결정하는 데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F와 T에 대한 단편적인 예시를 SNS에서 찾을 수 있었다. 아래 대화에서 A가 F형인지 T형인지에 따라 B의 말에 대한 반응이 극명하게 갈린다는 것이다.
A: “나 아파”
B: “병원에 가”
A: ???
A가 T형이라면 B의 말을 “병원에 가”로 이해할 것이고,
A가 F형이라면 B의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 많은 감정과 생각들이 떠오르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아프다고 말하는 것이 귀찮은가? 듣기 싫은가? 왜 그냥 병원에 가버리라고 하지...’
같은 상황에서도 F는 묘한 상처를 받게 된 것이다. 이는 F형들이 같은 상황에서도 더 많은 생각과 감정을 끄집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F의 부정적인 특성으로 보이겠지만, 사실 이것은 관점을 달리해 잘 활용한다면 매우 큰 강점이라 할 수 있다. 더 많은 생각을 하고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관점을 가질 수 있다는 것과 다양한 사람들을 배려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 F형은 기본적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잠재력을 가득 갖고 있다. 위와는 반대로 칭찬이나 좋은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남들보다 더 큰 기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소한 칭찬의 말일지라도 더 많은 감정을 이입할 수 있다. 그렇기에 행복, 즐거움 기쁨 등의 긍정적인 감정 역시 더 크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과다하면 긍정적인 감정에만 매몰되어 상황을 냉철하게 파악할 수 없게 되니 주의해야 한다.
이렇듯 부정적인 측면은 잘 관리하고 긍정적인 측면을 최대한 끌어올린다면 F형은 매우 큰 강점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이런 F의 특성을 듬뿍 활용해 더 행복하고 유리한 생활을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나의 경험과 깨달음, 노하우 등을 가득 담아 F의 사랑스러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2)
나는 한 치의 예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F형이다. 나와 타인의 거의 모든 말과 행동의 숨은 의미를 아주 잘 찾아낸다. 그래서 가끔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큰 기쁨을 누리기도 하고 또 가끔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큰 슬픔을 누리기도 하는 사랑스러운 성격 유형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신기한 점이 있다. 사회생활을 하면 할수록 F의 농도가 진해진다는 점이다. 입사 후 시간이 지날수록 F의 농도가 줄 것으로 예상했다. 사회생활에서 생각과 감정이 많으면 상처를 받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히려 F의 농도는 진해졌고 오늘도 나는 많은 감정과 생각을 갖고 사람을 만나고 업무를 보고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는 F의 사랑스러움이 내게 큰 도움이 되었고 내가 이것을 뚜렷하게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비록 작은 것에도 많은 감정을 느끼고 생각이 많아지기에 불편한 점도 많았지만 동시에 F의 사랑스러움으로 얻은 것이 많았다. 내가 얻은 것이 잃은 것보다 많았기에 F형을 벗어나고자 하지 않은 것이다.
(3)
나는 회사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재미있는 일이 많은 직무이기는 하나 사실 그다지 폼나는 일은 아니다. 매니저는 모든 일을 다 처리하는 사람 혹은 모든 일에 다 참견해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궂은일이 참 많다. 심지어 아주 다양한 유관부서와 접점을 갖고 있다 보니 함께 해결해야 하는 이슈도 넘쳐난다. 겉은 번지르르하나 속은 힘든 일이 많은 직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사실 처음에는 F형인 나의 성격이 퍽 불편하게 느껴졌다.
다양한 사람들이 이슈들, 해결되지 않는 크고 작은 일들을 가져온다. 좋은 소식들을 전할 때는 다른 직무보다 여러 가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렇게 부정적인 소식들인 경우 여러 가지 불편한 상황에서 다양한 양상으로 예민한 사람들과 마주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F의 성격 유형은 나를 더 피곤하게 만들기 일쑤였다. 관계의 연속 속에 (그것도 모두가 예민해져 있는 관계의 연속 속에) 던져진 지극히 F형인 내게 사람들의 말과 행동은 더 많은 생각과 감정의 촉진제였기 때문이었다. 그 많은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고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악의 없이 던지는 말에도 온갖 생각을 다 하는데 이슈로 예민하고 날카로운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는 또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겠는가? 사람들이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몇 시간을 고민하고 괴로워하기 일쑤였고, 가끔은 나 역시 남들이 상처 받을지 고민하면서 그런 ‘무심코’를 일삼아야 했다.
이 뿐만 아니라 냉철한 거절에 익숙해져야 했다. “병원에 가.”라는 말 한마디에도 많은 감정을 투과하고 소모하는 F형 인간인 내게 반복적으로 돌아오는 냉철한 거절(상대는 아니었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그러한)은 괴로운 일이었다. 또 규정과 우리 팀의 의견과 상황 때문에 냉정하게 거절해야 하는 상황을 마주할 때면 개인적으로 그냥 마음이 괴로웠다.
(뒤에서 이야기하겠지만 악의 없는 말에는 덤덤해지고 서로 기분이 상하지 않게 거절하는 좋은 방법이 있다.)
거절을 당하고 나면 또 반대로 거절을 하고 나면, 어찌나 마음이 아픈지. 일이 잘 안되면 상사나 프로젝트 구성원들의 말 하나, 행동 하나가 어찌나 신경이 쓰이는지(혹시 나 때문에 상심하여 저런 반응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객사가 싫은 소리 한마디 하면 그게 또 얼마나 비수로 날아와 꽂히는지. 아주 힘든 시간을 보내곤 했다.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잠 못 드는 밤이 늘어나기도 했다.
이렇게 생각이 많은 밤을 무수히 보내고 나서야 F형인 것 자체가 내게 아주 큰 자산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실 처음에는 F형의 장점을 발견해내는 것은 그저 F형이지만 잘 해낼 수 있다고 다독이는 자기 최면 같은 것이었다. 이러한 장점이 있으니 나도 그런대로 괜찮은 사람인 거라고. 그런데 이제는 삶을 즐기기 위한 방법으로써 그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진심을 다해 나를 응원하고 사랑하는 방법으로 F의 사랑스러움을 발견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 사랑스러움을 다른 F형들도 발견했으면 좋겠다. F형들을 이해하고 사랑할 준비가 된 그 누군가에게 우리의 사랑스러움을 한껏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 F형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T형들에게도 우리의 사랑과 애정을 듬뿍 담아 우리를 알릴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