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심하고 충실한 F로 살고 있습니다만,
(1)
앞서 싹싹함이 F형들의 강점을 부각한다고 하였는데, 이번에는 반대로 F형들이 피했으면 하는 태도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사실 나는 지금까지도 간신히 피해 다닌다.)
바로 ‘소심함’이다. F형인 데다가 소심하기까지 하면 자신이 감정적으로 정말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논문을 쓸 수 있을 만큼 많은 경험담이 있지만 장황한 이야기를 최대한 줄이고 줄여서 전해보도록 하겠다.
‘소심함’을 다른 말로 하면 ‘걱정이 많음’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대학 시절 브랜딩 과제로 ‘Self branding’을 할 당시, 친구들이 나에 대해 마인드맵을 그려준 적이 있다. 거의 모든 마인드맵에 걱정이 많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그렇다. 나는 소심하기까지 한 F형이다. F형인 나는 가뜩이나 사람들이 지나가듯 던지듯 하는 말, 행동, 피드백도 그냥 넘기지 못하고 깊이 생각하고 고민한다. 거기에 소심하고 걱정까지 많아 보다 예민하고 힘들었다.
“병원에 가.” 예시에 덧붙여 설명하자면 이런 것이다. “병원에 가.”라는 피드백을 듣고 ‘내 이야기를 듣는 것이 싫고 귀찮은가?’라고 생각하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왜 상대가 내게 병원에 가라고 했는지, 혹시 무슨 일이 있던 것인지, 혹시 화가 난 것인지 고민하고 걱정하느라 마음이 편치 않고 괴로웠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좋은 측면도 없지 않다. 소심하고 걱정이 많다는 것은 한편으로 그만큼 꼼꼼하다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대학시절 과제를 할 때 혹시 오류가 있을까 굉장히 꼼꼼하게 보고 또 검토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 습관은 회사원이 되어 일을 할 때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러한 꼼꼼함은 괴롭긴 해도 굉장한 강점이었다.
그러나 역시나 진짜 괴로운 부분이기도 하다. 걱정이 많은 상태에서 검토하고 또 검토하는 것은 결국 모든 것을 확인할 때까지 불안하다는 것이기도 하고 굳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까지 걱정하며 고민하고 검토하는 과정을 반복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F형들에게는 더욱더 괴로운 일일 것이다. 가뜩이나 같은 상황에 대해 남들보다 많은 해석을 하는데 걱정이 부정적인 살을 붙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2)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내게 F형은 업무를 보다 다각도에서 검토할 수 있다는 점, 프로젝트 구성원들과 보다 원만하게 지낼 수 있다는 점에서는 도움이 됐다. 그러나 걱정이 많다는 점이 더해지니 매우 피곤해졌다. 실제로 입사 초기에는 회사 일을 잘 처리했나 걱정이 되어, 오늘 내가 한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을까 봐 걱정되어, 오늘 부정적인 피드백을 준 사람이 신경 쓰여서 잠 못 이루는 밤도 많았다. 퇴근 후나 주말에도 컴퓨터를 켜서 확인하고 검토하는 일도 잦았다.
꼼꼼하게 일을 하긴 했는데 맺고 끊기를 참 못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 업무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그런 식으로 일할 수는 없었다. 물리적인 시간과 체력이 버텨주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꼼꼼하다는 장점은 유지하면서 F형들을 더욱 괴롭게 만드는 요인은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아내야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회사 입장에서 보면 직원들이 걱정 많은 F형인 것은 나쁜 것 같지 않다?! 걱정이 되면 될수록,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 꼼꼼하게 사안을 살필 테니!)
(3)
앞서 말했듯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나를 바꾸려 하기보다는 나를 괴롭게 만드는 나의 모습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괴롭지 않게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 아무리 옆에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어르고 달래도 나의 걱정은 끝나지 않고 속상한 마음은 줄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달래주지 못하면 괴로움은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찾은 방법은 이런 나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감정과 걱정의 눈덩이를 키우지 않는 것이다.
방법 1: 일단 미루기
걱정거리, 속상한 마음, 분노 등이 생길 때에는 키워드를 따서 예쁜 메모지에 적어두고 감정들을 미뤄두는 것이 도움이 된다. 메모지에 잘 적어두었으니 문제를 잊어버릴 염려가 없기에 걱정 없이 일단 딴 일을 먼저 처리하는 것이다. 더 많은 생각과 감정을 일정 시간 동안 차단하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알아서 해결되는 것들도 있고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는 문제들도 있다. 여기서 핵심은 감정을 키우지 않는 것이다. 다른 일들을 먼저 처리하여 덕지덕지 붙어있는 나의 걱정들이 어느 정도 알아서 도망가도록 시간을 주는 것이다. 그렇게 나의 감정이 최대한 객관적이고 작아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방법 2: 최대한 간단하게 구조화하기
그러나 그래도 해결이 안 되거나 나의 마음을 여전히 괴롭게 하는 것들이 있다면, 그때부터 걱정이나 감정을 요약하듯이 나열하여 정리해 본다. 사족은 다 떼고 핵심만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 처한 상황, 문제, 나의 감정과 생각을 가장 간단하게 구조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A, B, C와 같은 문제들이 있고 나는 D와 같은 마음이다.” 정도로.
그리고 요약한 문제들과 감정을 구분하여 찬찬히 살핀다. 부정적인 감정에 잠식당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해결해 나가며 문제들을 지워 나간다. 그렇게 정성을 다해 고민해야 하는 부분과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별 것 아닌 문제들을 나누고, 당장 처리할 수 있는 문제들은 처리하여 문제의 사이즈를 최대한 줄인다. 문제를 줄여나가지 않으면 그만큼 부정적인 감정은 커져만 갈 것이다. 걱정은 복리로 늘어나니까. 그러니 최대한 원금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내게 더 큰 불안을 주지 못하도록!
문제들을 지우고 줄이고 난 후에는 나의 감정의 변화도 살펴본다. 분명 쓸 데 없이 덕지덕지 갖고 있던 감정들은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방법 3: 정공법 쓰기
위와 같은 방법으로도 전혀 정리되지 않는 문제와 감정이 있다면, 이것은 정공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문제를 피하지 않고 물어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묻고 사과할 부분이 있다면 사과하면서 말이다. 이때는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 핵심이다. 어차피 앞서 차분히 생각했을 때도 해결되지 않았던 문제들인데 더 오랜 시간 혼자 끙끙댄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그냥 괴로움만 커질 뿐이다. 나의 F적인 능력을 나를 괴롭히는 곳에 활용하지 말자. 많은 시간이 주어지면 주어질수록 더 많은 생각들을 끄집어낼 것이기에 고민하는 시간이 길면 불리하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더 많은 생각을 하고 더 많은 감정을 느끼라 부추기는 것이 된다.
내 것일 필요가 없는 감정은 과감히 버려버리고 내가 오롯이 감당해야 할 것은 피하지 않고 감당해 내는 것이 중요하다.
(4)
위와 같은 방법은 업무를 할 때도 큰 도움이 된다. 앞서 말했듯 나는 업무에도 참 걱정이 많은 편이고 나의 말투나 행동이 남에게 상처를 주었을까 고민하는 사람이다. 반대로 상처도 잘 받고. 그런 내가 위의 방법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소개해보고자 한다.
내가 담당하는 프로젝트는 해외 공장에서 생산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시차’와 관련된 갈등이 많다. 한국과 해외 공장의 시차는 8시간인데, 몇몇 해외 공장 담당자들이 자신의 근무 시간이면 언제든 아무렇지 않게 내게 연락을 한다. 내가 퇴근을 했어도. 밤 9시여도 10시여도. 근데 더 큰 문제는 그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잘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다. 죄송하다면서 매일 급한 것도 아닌데 내가 자기 직전에 전화를 거는 분들도 계셨다. 미리미리 확인하여 해외 공장 오전에만 연락을 해도 친절히 받을 텐데 말이다. 아무런 배려 없이 자신의 시간과 편의에 따라서만 움직이니 화가 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화를 내고 언성을 높인다 해도 무례한 사람들의 무례함은 줄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냥 나의 대응 방법을 바꾸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당연 표현하지 않고 요령 있게 피해가도 나의 마음이 다치지 않을 경우에는 이렇게 해도 된다는 것이다. 내가 견딜 수 없다면 상대가 듣든 말든 나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도 감정을 표현할 용기가 있다는 것을 나에게 전하기 위해서. 이 부분도 뒤에서 다뤄보자.)
그래서 퇴근 후에는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 답장을 하지 않을 때도 있다. 메시지를 보고 사안에 따라 다음날 출근하여 처리하기도 한다. 메모지에 연락한 사람 이름을 적어두고 양치도 하고 오고,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오고 여러 가지 딴짓을 하고 온다.
매번 이러는 것은 아니지만 연락과 답장 사이에 시간을 둘 때가 종종 있다. (아 물론, 나 밖에 그 업무에 대한 피드백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정말 급한 상황이면 칼답 한다.) 그러면 대게 그 사이 알아서 일이 해결되어 있다. 내게 묻는 것이 지름길이었겠지만 조금만 더 신중하게 찾아보면 되는 것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연락과 답장 사이에 시간 간격을 두는 것은 이런 불쾌한 상황에 많은 감정과 생각을 낭비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타인의 불편은 고려하지 않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무언의 방식으로 전하는 것이다. (성격상 대놓고 말하기 부담스러우니까.)
다른 상황을 살펴보자. 업무를 하다 보면 변수가 발생한다. (아 변수가 발생하다 보면 업무를 하는 건가? 변수가 너무 많아서 뭐가 먼저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늘 그 변수와 맞닿아있다. 이런 변수가 내부 및 고객사 일정, 요구사항들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매니저는 그런 변수가 발생하면 프로젝트 진행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하고 대안을 요청, 그 대안이 잘 작동하는지 검토해야 한다.
그래서 전화가 오면 느낌이 이상할 때가 많다. 굳이 전화를 한다고? 또 무슨 어려운 말을 전하시려고! 아니나 다를까 이런 이상한 예상은 늘 현실이 된다. 예정된 기한 내에 끝나지 못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하냐고 묻는다. 아니 분명 잘못은 내가 한 것이 아닌 것 같은데 걱정은 함께 한다. (걱정은 나누면 두 배라는 T형들의 말이 공감되기 시작한다.)
이럴 때는 이슈들을 잘게 쪼개고 진짜 문제와 문제가 아닌 것을 갈라놓는다. 걱정이나 원망 등의 감정도 일단 분리해둔다. 그리고 정공법으로 바로 직진한다. 이왕지사 이렇게 된 것 부정적인 감정을 내세우기보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한다. 그래야 내가 덜 피곤하니까. (겪어보니 나의 부정적인 감정에 집중해서 문제 해결을 지연시키고 방해받는 것은 효율적이지 못하다.)
물론 상사들과 고객사의 컴플레인은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일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에 열심히 하되 불필요한 죄책감도 받지 않고 감정적인 소모도 하지 않는다. 괜히 감정적으로 밀어붙여 나의 감정 역시 다치지 않도록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해본다.
(5)
F형들은 참 매력적인 사람들이다. 그러나 거듭 강조하듯 완급조절을 잘할 필요가 있다. 어떤 강점을 내세울지, 어떤 것을 조심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내가 편안할지, 어떻게 해야 나의 불편한 마음을 조절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고 나를 가꿔나갔으면 좋겠다.
오늘도 매력적인 F형들이 더 행복해지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