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이야기

아이들과 방탈출하다

by 물결

내일 먹을 점심 메뉴를 정하느라 돼지 삼 형제 톡방은 아침부터 불이 다.


여기 갈까, 저기 갈까 논의가 정말 뜨거웠다.

그러나 나는 예측하고 있었다.

결국 점심 메뉴는 삼겹살에 소주로 결정될 것임을.


예전에 딱 한 번, 내가 선호하는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애들이 그다지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아 이후로는 애들의 선택에 맡기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먹을지, 어디를 갈지 만나기 전에 빼놓지 않고 논의를 이끌어내는 둘째의 에티튜드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둘째는 말했다.

왜 다들 어디 갈지 질문만 하는 거지?
'아들아, 답답한 사람이 우물을 파는 거란다'


삼겹살에 소주는, 아들만 셋인 내게는 참 고마운 메뉴였다.

오랜만에 만난 아이들의 긴장을 풀어주면서 이야기를 편하게 끌어내주는, 어찌 보면 그동안 우리들에게는 최고의 메뉴였.


식사 후에는 점심 먹은 곳과 가깝거나 조금 걷긴 해도 빵이 맛있는 북카페 중 한 곳을 가곤 했다.


커피타임은 비교적 짧게 끝난다. 부른 배를 달래며 못다 한 얘기를 조금 더 나눈 후에는 아이들끼리 오락실을던지, 나랑 같이 노래방을 가던지 정하게 된다.


아이들이 오락실을 가게 되면 나는 카페에서 책을 보거나 필요한 일을 하곤 했다.

저녁 먹고 코인 노래방 가고, 이어서 스티커 사진까지 찍으면 아들 셋과의 즐거운 데이트는 마무리되었다.


그동안 아들 셋과의 데이트 루틴은 한결같았다.

애들에게 여자친구가 생기기 전 까지는.


어제는 큰 애가 결혼할 여자친구(다빈)와 만나는 두 번째 자리였다.


신경 쓰였던지 둘째 녀석이 늘 먹던 삼겹살 대신 샤부샤부로 예약했다.

물론 이번에도 무엇을 먹을 건지 논의가 활발했었다.


요즘 노원의 핫플레이스인 '노원익스프레스'를 가보자고 제안했더니 모두 찬성이었다.

아쉽게도 전화 예약은 안되었고 당일 현장에서 순서표를 받아야 한다고 했는데 점심 예약은 이미 끝났다고 했다


결국 둘째는 나와 논의해서 샤부샤부로 결정하고 근처 식당을 예약했다.


아이들과 샤부샤부 외식은 처음이었만 오늘을 계기로 아이들과의 외식 메뉴에 많은 변화가 생길 것 같은 기분 좋은 느낌이 들었다. 다빈 고맙다.


다빈과 함께한 점심은 처음엔 조금 서먹한 듯했지만 나이대가 비슷해서인지 금방 재미있게 대화가 이어져나갔다. 흐뭇^^


점심을 먹고 나서 아이들은 '방탈출' 가자고 의기투합하는 분위기였다

토요일까지 넘겨야 하는 원고도 있고 해서 잠시 망설였지만 이럴 때 아니면 언제 가보냐 싶어 나도 같이 가겠다고 했다.

거절할 줄 알았던 엄마의 동참에 아이들이 다들 "레알?" 하고 놀랬다.

그동안 밥 먹고 차 마시는 스케줄만 함께 했음에 살짝 민망함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방탈출은 1인당 2만 원 정도의 비용을 내고 1시간 안에 5개의 방을 모두 탈출해야 성공하는 게임으로

입구에는 우리 말고도 한두 팀이 대기 중이었다.


핸드폰을 포함한 모든 지참물을 사물함에 보관한 후, 신발까지 갈아 신고서야 입장 가능했다.

티는 안 냈지만 나는 사실, 살짝 긴장되었다. '뭐라도 일조를 해야 할 텐데...'


우리는 '일탈'이란 주제를 선택하고 첫 번째 방으로 입장했다.


다섯 명이 들어가니 방은 금방 꽉 차 버렸다.

희미한 조명이 켜져 있는 방에는 매트리스, 책상, 모니터, 책꽂이등이 밀조밀 있었고 책상서랍에는 모두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방탈출 초보인 나의 눈에는 모든 게 어리둥절하고 신기했는데 문제를 풀 때마다 달라지는 조명의 채도는 속으로 성을 자아내게 했다.


아이들은 방안의 모든 구조물을 활용해 주어진 문제를 진지하게 추리해나갔고 유추해 낸 번호나 방향을 대입해 자물쇠를 하나씩 어나갔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당시 나는 방 한구석에서 딱 이런 느낌으로 멍하니 있었다.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그 혼돈스러운 구조물 사이에서 힌트를 하나씩 캐치해 냈고

결국 시간 안에 5개 방의 자물쇠를 모두 풀고 방탈출에 성공했다


도움은 하나도 못주었지만

1시간 동안 아이들 넷이 협동하며 문제 푸는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건 나에게 참 행복한 순간이었다.


아마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방탈출 마치고 멘붕이 와서 따라가지 못했던 보드게임.

다음번에는 같이 가야~~~


얘들아 엄마 끼워줄 거지^^


방탈출 성공 기념 단체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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