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 ③] 유후인 온천에서 느낀 세심한 위로

유후인 료칸 체험기

by 도토리의 일상

유후인 역에 도착한 뒤, 예약해 놓은 료칸에서 픽업 서비스를 해준다기에

시내를 여유롭게 돌아보며 기다렸다.


노천탕이 있는 료칸 특성상, 시내에서 떨어져 산속에 위치하기 때문에

이렇게 손님들을 역에서 데려오고 데려다주는 서비스가 있다는 것에 세심함이 묻어났다.


그리고 드디어 료칸 입장.

입구부터 너무 상냥한 직원이 맞이해 주셨다.

그리고 객실까지 같이 걸어가며 노천탕과 실내탕 모두 설명해 주고,

숙소 내부 이용까지 직접 보여주던 모습이 인상 깊었다.


일본인 중에서도 서비스업 종사자라서 특히 더 친절한 거겠지만

이런 사소한 배려들이 참으로 좋았던 날.

숲과 하늘을 바라보며 하는 노천탕에 꼭 들어가 보고 싶어 이 숙소를 골랐었다.

탕마다 구비되어 있는 면봉, 머리끈, 새 수건들, 옷 보관함 모두

손님이 원하는 걸 하나하나 적어가면서 만든 게 아닐까 싶은 모습이었다.

탕은 계속해서 뜨거운 물이 끓어 나오고 있었다.

가만히 몸을 담그니 바깥공기는 시원한데 몸은 뜨거운

내가 딱 좋아하는 온도 완성.

집에 난방을 하지 않고 전기장판만 깔고 이불을 얼굴만 내놓고 자는

'코 시리고 등 따신 상태'를 너무 좋아하는 나에게는 여기가 천국이고 말고.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이 료칸의 매력은 바로 식사 공간 앞에 있는

실내 모닥불이 아닐까 싶다.

료칸 손님들이 식사 전 잠깐 대기할 때, 식사 후 디저트를 먹을 때, 밤에 자기 전, 아침 체크아웃을 기다리며

편하게 머물다 떠나는 곳이었다.

모닥불이 계속 타오를 수 있도록 직원은 나무 땔감을 계속 넣어주고

불쏘시개로 가끔 저어주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가슴이 넉넉해지는 따듯한 모습이었다.

겨울에 추울 때 모닥불 냄새가 좋듯, 이 공간의 향기도 명상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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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중요한 식사 시간.

제철 음식 재료들로 만든 가이세키 요리가 나왔다.

코스 요리라서 조금씩 서빙되는데, 좋은 음식엔 맥주가 빠질 수 없지.

노천탕에서 몸을 지지고 노곤노곤한 몸으로 먹는 맥주는 시원하면서도 금방 취하게 만든다.


숙박 비용이 비싸기도 하지만 요리를 내어주는 모습 하나하나

정성 아닌 것이 없는 곳이기에,

직접 머물고 나와보니 전혀 비싸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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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고기 사시미가 에피타이저로 나오고,

소고기와 닭 숯불구이를 직접 구워 먹을 수 있었다.

그만큼 오랜 시간 일행과 대화하며 식사할 수 있어 좋았던 순간.


특히, 일행별로 칸막이를 두어 조용한 환경에서 즐길 수 있었는데,

식탁 이외의 공간은 모두 어둡게 만들어 음식을 돋보이게 하는 의도가 눈에 띄었다.

료칸 안에서는 계속 온천을 하기 때문에

개인 옷보다는 유카타를 걸치고 나막신을 신게 된다.

물에 자주 들어가니 빨리 마르는 나막신이 수월했고,

유카타는 식사 이후로 한 차례 바꿔주기도 하며 냄새까지 신경 써주는 세심한 배려가 돋보였다.

노천탕에서 바라본 밤하늘은 별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불빛이 있어 잘 안 보이던 별들도

료칸 밖으로 조금 나오니 선명하게 더 숫자가 많아졌다.

고요한 나머지 숨을 괜히 참게 되던 순간.

소중해서 여기는 다시 와야겠다는 다짐을 이때 했었던가.

푹 잘 자고 일어난 아침.

식사 예약해 둔 시간에 맞춰 다시 식당으로 나가보니

아침 한 상이 차려져 있다.

어렸을 때 엄마가 아침부터 해주던 된장국이 문득 생각나는

정겨운 한 상이다.

속이 편한 음식들 위주로 구성되어 있었다.

특히 김이 폴폴 나는 갓 지은 밥을 열어봤을 때,

밥 내음을 맡으며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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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까지 다 마치고 준비한 뒤에 체크아웃 직전.

마지막 따듯한 모닥불을 즐기며 불멍을 때렸다.

료칸에서 1박만 하고 떠나는 게 아쉬울 정도로,

인상 깊은 하룻밤이었다.


안 풀리는 일들이 많을 때마다 '아 몰라. 그냥 대충 하자(또는 살자)'하고 될 대로 되라며

시간을 내버려 두는 일이 잦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매일이 흘려보내기 아깝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특히 나이가 점점 들어갈수록 더 아까워지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나를 소중하게 대접해 주는 사람이 있을 때 그게 크게 와닿는다.


주변 사람들을 료칸에 있던 직원들처럼 세심하게 대해줘야겠다.

소중한 내 사람들도 이렇게 마음이 넉넉해지는 순간들을

꼭 료칸을 가지 않더라도 일상에서 때때로 느끼게 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온천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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