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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잎 May 29. 2019

연극 '어나더컨트리', 누구나 겪는 성장기의 질풍노도

이것은 연극이었다. 연극 배우들의 대사를 들으면서 속으로는 '대사 뭐냐. 와 진짜 오바한다. 무슨 연극이냐'라고 중얼대다가 '아, 이거 연극이구나'라고 깨달았다. 


연극은 뮤지컬도 아니고 영화도 아니다. 연극은 사람들 앞에서 연기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말을 빠르게도 하고 감정을 넣기도 하고 소리를 크게 지르기도 한다. 일상에서 보는 평범한 대화가 아니라 말 자체에 감정을 싣는 것이다. 


영화라면 소근소근 얘기해도 괜찮을 것이다. 카메라가 알아서 얼굴을 비춰주고, 음성은 마이크로 충분히 전달이 되고 필요하면 음악도 있고 각종 효과가 있으니까. 연극은 다르다. 사람이 사람 앞에서, 그리고 공간도 한정적이고 배경도 한정적이다. 작은 공간에서 사람들은 가끔 옷을 갈아입지만 아주 큰 변화없이 연기를 해야한다. 노래를 부르지도 않으니 대사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무대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곳에 앉아 있어서 배우들을 얼굴을 가까이서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머리카락을 다양하게 염색을 했기에 비슷한 제복을 입고 있었지만 구분 할 수 있었고 또 물론 목소리도 달라서 구분할 수 있었다. 


남자배우들만 나오는 연극이다. 배경은 남자 고등학생들이 묵고 있는 남자 기숙사다. 남자 고등학생들은 나이에 비해 어른들의 세계에 속해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정치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계산도 하고 아부도 하고. 이해관계를 따진다. 


그들의 고등학교는 계급이 있다. 이것은 문학 장치로써 세계를 만들어낸 것인지, 아니면 1900년대 초에 영국에서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계급은 확고하게 등급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실제적으로 어떤 이득을 얻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들의 계급은 좋은 대학교와 연결돼 있고 대학교는 또 다시 그럴듯한 직업을 줄 수 있는 곳이 되니까. 


그래서 자신의 삶의 행로를 결정할 수 있는 고등학교 세계에 집착한다. 고등학교 세계가 전부인 것처럼 살아간다. 그들은 고등학교에서 위치가 서열화돼 있다. 어떤 이들은 그것에 만족한다. 그리고 높은 곳을 향해 달려간다. 어떤이들은 그것에 의문을 품는다. 그리고 그 의문은 학교를 넘어서 사회, 인류, 체제, 국가까지 확장된다. 


그래서 이들의 대화는 혁명을 논하고 계급을 논하고 사회를 논한다. 너무 어려운 철학적 주제를 대화로 풀어나가보니 이해하기에 다소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거대한 사상과 관념을 계속 얘기하는 탓에 당황스럽게 웃긴 측면도 있지만 아주 크게 공감했다. 20대 초반의 머릿속을 보는 것 같아서다. 


내 머릿속에서 생긴 의문들을 배우들이 말로 읊어주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당시 나는 세상을 이해하는 것과 그리고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도 모르겠었다. 내 머릿속은 정리가 안되고 복잡한데 사회도 마음에 안들었다. 사회 이곳저곳이 전부 맘에 안드는 그런 상태였는데 여기 고등학생들은 내 머릿속을 읽는 것처럼 계속 얘기한다. "이것도 맘에 안들고 저것도 맘에 안들고. 내 삶의 기준이 어딨는거야. 대체. 이건 불합리해!!" 이런 감정과 얘기들을 계속 얘기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 대화를 이어나가고,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성장해나간다. 그런 쓸모없는 탁상공론같은 얘기들은 쓸모 없어 보이기도 한다. 어른이 된 입장에서, 돈을 버는 데 허덕이는 입장에서는, 쓸모없는 것이라고, 더 생산적인 데 시간을 쏟는게 어떻냐고 말할 법도 하다.


그들에게는 그런 시기가 필요하다. 생각을 하고, 확장하고, 토론하고 논의하면서 하나씩 세계관을 만들어나가면서 인격체가 된다. 


그런 혼동의 시간들, 각종 애정의 감정들이 세상에서 전부가 된 것 같은 그 시기의 문학적 압축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흥미로웠다. 재밌고. 


물론 상업적 측면도 있다. 꽃미남들을 데려다 놓고 아주 멋진 제복을 쫙 빼입힌다. 그들은 머리칼도 풍성한 곱슬머리에 새까맣고, 금발이고, 갈색으로 풍성하다. 만화책에서 그려지는 왕자님이 눈앞에 있는 듯하다. 그런데 심지어 그들 사이에서의 권력투쟁과 애정관계라니. 어찌 빠져들지 않을수가 있나. 그럼에도 공감할 수 있는 주제도 있기 때문에 좋은 콘텐츠이고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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