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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잎 Aug 17. 2019

레이디버드, 엄마와 싸움에서 화난 딸 차에서 뛴 사연

레이디버드를 봤던 어떤 영화 평론가가 그랬다. 이래서 사춘기를 겪는 여자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더라고. 이렇게 예민한 애를 어떻게 옆에서 키우겠냐고 말이다.


첫 장면부터 살벌하다. 레이디버드와 엄마는 차안에서 같이 이동하고 있는데 대학 문제로 싸움이 났다. 서로가 서로에게 못났다는 말을 내뱉고 분노에 찬 레이디버드는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린다. 이 장면을 본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하지만 난 저정도면 매우 양호한데. 라고 생각했다.


사실 나도 엄마랑 차를 타고 가다가 분노에 차올라서 차에서 뛰어내린 적이 있다. 물론 달리는 차는 아니었다. 차가 멈추자 도로 한복판에서 내려버렸다. 그리고 차선을 넘어서 달려갔다. 그 어릴적 그 때는 그렇게 분노가 크게 차오르는 나이다. 지나가는 낙엽에도 깔깔대며 웃지만 몇번의 말다툼에서 아주 큰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


당시 나는 왜 엄마한테 그토록 화가 났나. 그 이유도 레이디버드와 매우 흡사했다.


레이디버드는 열일곱살에서 열여덟살로 넘어간다. 한국나이로는 열아홉살에서 스무살이 되는 셈이다. 고3을 이제 다 마친다음에 대학교에 진학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부를 잘하지 못한 레이디버드는 명문대가 모여있는 동부에 가고 싶어하는 소망만 지니고 있다. 여기에 엄마는 그쪽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어도 돈 내줄 형편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얘기로 싸우다가 엄마는 너는 어차피 공부도 못하고 그렇게 될 능력도 없어! 라고 말하고 화가 미친듯이 나서 차에서 뛴다.


나는 왜 차에서 내렸나.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비슷한 상황이었다. 나는 당시 공부욕심이 매우 컸던 고등학생이었고 학원을 다녔다. 학원에서는 새벽 2시까지 강의를 하거나 자습을 할 수 있었다. 나도 그때까지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차가 끊겨서 할 수 없었고, 엄마한테 데리러 오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엄마는 자야한다고 했다.


난 같이 공부하던 학원친구가 한명 있었는데 그 아이에게 아주 큰 경쟁심이랄지, 동경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 아이처럼 공부하면 나도 스카이에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는데 그 아이의 엄마는 새벽 2시에 차로 데리러 왔다. 왜 엄마는 그렇게 못해주냐고 화를 냈고 엄마도 화를 냈고 우리는 서로의 인생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여담이지만 그 아이는 서울대학교에 입학한 뒤 행정고시를 패스해 사무관으로 일하고 있다.

 대입때 그 아이가 서울대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그 아이의 다른 선택지였던, ky 대학교 한 과의 입학정원이 한 자리 비게됐다. 그래서 그 학교 그 과의 대기번호를 수령했던 내가  입학할 수 있었다. ㅋㅋㅋㅋ)



레이디버드도 대기번호를 받아서 동부권에 대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이것도 상황이 나랑 비슷했다. 그런데 아빠하고만 그 얘기를 상의했기 때문에 엄마는 그 사실을 나중에 알게 돼서 매우 오랫동안 냉전기를 갖게 된다.


이 상황도 나랑 매우 비슷한데, 나도 기자가 되고 싶어서 뒤늦게 언론고시 관련 학원을 신청하려고 했고 아빠가 엄마 몰래 수강비를 대줬다. 그래서 .. 여차저차 기자가 될 수 있었달까. 물론.. 소위 말하는 메이저 언론사에 가고 싶다고 여전히 생각하고 있다.


내가 레이디버드와 비슷한 상황을 겪었지만 난 레이디버드처럼 착한편은 아닌 것 같다.



레이디버드와 엄마가 돈 문제로 싸우는 장면이 있다.


엄마는 "너를 키우는 데 돈이 얼마나 많이 들었는데. 너는 그렇게 헛돈을 매일 쓰고. 학교에서 정학을 맞았다고? 너는 도대체 왜 그러냐?" 성을 내자


레이디버드는 종이를 꺼내서 "나를 키우는데 그래서 얼마가 들었는데? 내가 다 갚고 엄마랑은 인연을 끝내버릴거야"라고 말하면서 얼마냐고 묻는다.


엄마는 "그래? 너는 못해. 너는 그 돈을 다 갚을 능력도 없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만한 좋은 직장에도 못 갈거야."라고 말하자 레이디버드는 분노에 차서 종이를 벅벅 찢어버린다. 그리고 뛰쳐나간다.


물론 엄마는 딸에게 돈을 받기 위해서 한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정말 돈을 받고 싶었다면 얼마인지 말해주면서 한달에 꼬박꼬박 갚으라고 했을테지만. 딸 입장에서는 이런 생각이 들수도 있다.


내 존재가 가족에게 짐이 된다. 나는 쓰레기 같다. 는 생각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자존감은 끝없이 하락하고 이것은 한발자국만 삐긋하면 영혼의 파멸을 이끌 수도 있는 것이다. 정말 나약한 인간이거나 한끗만 잘못되어도 정신병에 걸릴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초라하다는 말을 주기적으로, 그것도 가장 큰 의미를 주는 사람인, 가족에게 들어온 사람은 과연 제대로 성장할 수 있을까.


내가 아직 나이가 덜 들어서 이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부모가 지닌 아주 큰 삶의 부담을 딸에게 넘기면서 네 존재가 돈만 드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 좋지 않다.


나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사람은 사실 내게 큰 의미를 지닌 사람이어야 가능하다. 길에서 지나가는 사람이 내게 욕을 퍼부었다고 하면 그것은 상처로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경찰에 신고하고 사과를 받으면 된다. 그러나 상처를 줄 수 있는 사람은 사실, 내게 소중한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이다.


레이디버드의 엄마와 아빠가 나중에는 결국 화해를 한다. 그리고 레이디버드도 그렇게나 싫었던, 크리스틴이라는 본명을 다시 부른다. 또 싫었던 고향을 바라보면서 애정을 느낀다. 자신을 존재할 수 있도록 한, 엄마아빠, 그리고 고향을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다가, 그것을 성취하자 다시 그곳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사람은 그런 것 같다.목표를 세우고, 새로운 삶을 꿈꾸고, 정말로 그것을 이루고 나면, . 그것이 정말 나 스스로가 이뤄낸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내가 지탱하고 있는 땅, 내가 밟은 곳, 나를 품어서 키운 나의 부모를 다시 보게 된다. 그리고 그 부모는 내 품을 떠나 새로운 삶을 사는 자식을 보면서 어떤 의미인지를 모르는 눈물을 흘리며 서로의 손을 잡는 것이다. 한편의 영화가 내 마음을 너무 크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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