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풀잎 Oct 06. 2019

현재에 충실한 고양이에게는 힐링을 배워.

카페에 나와서 앉아서 바라보는 동네의 풍경이 좋다. 집에만 있으면 우울해진다. 내 집에는 나의 고양이도 있는데 말이다. 나는 고양이와 함께 잠에 든다. 고양이는 잠들어 있는 나를 좋아한다. 움직이는 나에게서는 멀찍이 떨어져 있다가도 내가 잠에 들어 가만히 있으면 꼭 내 옆에 온다. 


고양이와 함께 있으면 고양이가 지니는 감정과 나른함이 내게 전해진다. 나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고양이를 계속 쓰다듬고 있을 뿐이다. 고양이는 내게 나른함을 준다. 그것은 좋기도 하지만 어떤 무기력함과 우울함도 준다. 고양이는 현재, 현재, 현재, 그리고 현재에만 사는 것처럼 보인다. 


나의 사랑하는 고양이는 몇개월째 같은 사료를 먹어도, 몇개월째 같은 장난감을 갖고 있어도 그것에 실증을 내지 않고 그것들을 너무 좋아한다. 언제나 격한 반응을 보이면서 좋아한다. 특히 고양이에게는 애착 장난감 같은 애착 낚시대가 하나 있다. 원래는 깃털도 달려있었는데 고양이가 물어뜯어서 없어졌다.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그 애착 낚시대를 고양이는 너무 좋아해서 낚시대를 입으로 물고 다니고, 그 옆에서 누워 있다가 배를 까 뒤집는다. 


나는 낚시대를 들고 이리저리 움직이기만 해도 고양이는 사정없이 달려든다. 한번 누으면 몸을 일으키기 힘든 나와는 반대로, 어떤 편한 자세를 취해 자리를 잡고 있어도 고양이는 낚시대의 움직임이 보이면 바로 몸을 일으켜 아주 빠르게 달려든다. 이것은 정말 오래된 놀이이고, 아주 반복적인 행동인데도 고양이는 언제나 그렇듯이 아주 잽싸게 움직인다. 정말 신기하다. 고양이에게는 현재는 현재일 뿐이고, 과거와 비슷한 현재도 늘 재미있다. 반복적이어도 새롭지 않아도, 고양이에게는 현재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양이에게는 미래를 위한 현재도 없다. 미래의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한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고양이에게 현재는 현재로서만 존재한다.


이런 지점에서 고양이와 함께 있으면 우울감이 살짝 드는 것이다. 나는 현재를 바로 이 지점에서만 바라볼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현재를 과거와 이어져오는 지점에서 보고, 미래를 나아가는 지점에서도 바라본다. 나는 세계에서 대한민국 서울에 있는, 공간적 측면에서도 나를 바라보고, 내 일생의 끝을 보는 지점에서도 30대의 나를 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여러 측면에서 현재의 내가 해야할 것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늘 현재로서의 현재만 생각할 수가 없다. 나는 과거로부터의 나를 생각하면서 한없이 우울해질 때도 있다. 과거의 나를 자책하고 미워하고 용서할 수 없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또 과거의 좋았던 것을 그리워하고 아쉬워하기도 한다. 또 미래지점에서의 현재를 바라보면서 가끔은 채찍질을 하기도 한다. 미래 지점에서바라보는 나는 더욱 현실을 충실하게 살아서 나의 가치를 높여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공부도 열심히해야 하고, 운동도 열심히 해야한다. 공간적 측면에서 보자면 이곳은 한없이 작은 것만 같기도 하다. 가보지 못한 대륙, 바다,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고 싶기도 하다.  또 죽음에서 바라보는 나의 영혼도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종종 고양이와 떨어져 나와서 카페에 온다. 카페에서는 여러 사람 사이에 있는 나를 보면서 사회 구성원으로써 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여러 지점에서의 현재를 살아낸다. 특히 미래 지점에서의 현재를 살다가 다소 피곤해지면, 내게 충실한 현재를 사는 고양이 곁으로 와 힐링을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양이를 기르면서 부모의 마음을 조금 느끼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