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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잎 Nov 26. 2018

하얗고 투명한 그의 얼굴을 보고 있다.

아직도 소년인 그는 얼굴이 하얗다. 하얗고 투명하다. 채도가 투명하여 소년성이 피부에 반영된 느낌이다. 하얗고 투명한, 아니 노랗고 투명한, 아니 까맣고 투명한. 아니, 어떤 색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 저 투명한 남자의 얼굴이 보인다.


어떤 색인지는 모르겠으나 투명하고 채도가 높은 얼굴이다. 무슨 색인지가 중요하랴. 그저 선명한 색깔의 선명한 투명도를 지니고 있는 것이 그의 특징이다. 


그의 투명하고 하얀 얼굴에는 소년이 가득하다. 사실 소년인 이 남자는 사회생활을 하느라 소년을 잠시 감춰뒀다. 


그는 소년을 감춰뒀다가 소년을 알아봐주는 사람에게는 소년을 내보인다. 그 사람에게는 사회에서 어른인 척을 덜어내고 한없이 소년이 된다. 


그의 하얗고 투명한 얼굴은 채도가 너무 선명히 높다. 그의 얼굴을 보고 있자면 관념론이 아니라 유물론이 맞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까만 머리칼과 생기있는 탄력성은 그의 젊음을 상징하고 있다. 젊고 아름다움이 먼저 있는 것이 아니라 머리칼을 통해 드러나는 듯하다. 


그의 하얗고 투명한 얼굴에 박혀있는 주근깨는 얼마나 소년스러운지. 


나는 그를 앞에 놓고, 그가 이해하든 말든 혼자서 중얼거린다. “인간은, 그래, 인간 말이야. 인간 그리고 세계. 그런 것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말야.”


그는 호기심있게 쳐다본다. 소년의 얼굴을 하고서는 이 여자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그걸 보고 있다.  


나는 “그런 것을 생각하는 것은 살아가는 삶의 이런 것들과는 달라. 그것은 한껏 올라간 그런 최상위의 추상수준의 것이지”말하면서 그의 소년을 끄집어낸다. 그는 어른에서 이미 소년이 됐다. 


나는 ‘그건 가장 나중에 생각하게 되는 큰 화두야. 인생에 있어서.’ 혼자 말을 삼킨다. 


어떤 존재로서의 그가 보이는 듯하다. 그의 인간상이 보인다. 그에게는 삶의 활력과 생기가 있으나, 외부 세상에 의해 조금씩 상처 입은 영혼이 보인다. 


육체의 피로를 느끼고 또 우울감, 행복감을 느끼는 1차원적 그의 모습에서 어떤 육체가 보인다. 그에게는 개별적 인간과 보편적 인간이 전부 있다. 그 존재를 통해 나는 어떤 사랑스러움을 느낀다. 


그 사랑은 내안에 미리 심겨져 있던 사랑일까, 그가 지닌 사랑스러움을 그저 내가 발견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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