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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잎 Apr 07. 2019

영화 '강변호텔'을 보고.

이 영화를 다 본 뒤 남은 물음은 "그래서 영화감독은 죽을 작정인가" 하는 것이었다. 


남자주인공은 언제니 그랬듯이 홍상수 감독이다. 그는 불륜을 저질렀던 인간이기는 하지만 아주 나쁜 인간으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당연하게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스스로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구절절 이유가 많다. 

 

그는 사랑을 정의내리기를 '책임감을 동반한 것'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사랑은 늘 찾아오는 법이라고 생각해 '매우 가변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는 어떻게 보면 사랑을 매우 잘 찾아내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에게서 사랑할만한 것들을 찾아낸다. 또 일상의 모든 장면에서도 아름다움을 끄집어낼줄 안다. 그리고 자신이 느낀 아름다움을 표현해낼줄 안다. 


피아노도 멋드러지게 칠 줄 알고 작곡도 한다. 시를 짓기도한다. 물론 영화도 만들어 낸다. 매번 그의 영화에는 그가 잘하는 것들이 영화속에 녹여져 있다.


하지만 그는 너무 아름다운 여인과 함께 지내면서도 마냥 즐거운 것은 아닌 모양이다. 여주인공인 김민희는 영화속에서 정말 아름다운 분위기를 풍기는 풍기는 여인이다. 까맣고 긴 머리카락은 그녀의 얼굴을 감싸고 있다. 그녀는 마르고 기다란 몸을 지니고서는 강변에 서 있다. 



그녀는 유부남과 사귀다가 헤어져서 슬퍼하고 있다. 우울함이 그녀를 휩싸고 있으며 그녀는 매우 체념하고 있는 듯한데 그 모습은 매우 아름답게 묘사된다. 하지만 어떤 생산적인 것을 할 여력이  남아있지 않아 종일 침대에 누워있다. 그녀는 흑발을 얼굴에 늘어뜨린 채 기운이 빠져 가만히 있는데 그 모습은 또 어찌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그녀의 모습을 요약하자면 의지가 상실된 인간, 앞으로 무엇을 하면 좋을지 모르겠는 인간, 그보다 슬픔이라는 감정이 그 무엇보다 앞서 있어서 가만히 있는 것밖에 할 수가 없는 인간이라고 해도될까. 그녀를 보고 있자면 이들은 마치 생존과 출세에서는 벗어난 인간들처럼 보인다. 


생존해야만 하는 지독한 현실도 없고 치열한 직장생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골머리를 썩을 일도 없으며, 집안에 우환이 들지도 않은 인간들처럼 보인다.


영화는 매우 현실적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또 매우 인위적이다. 생존을 위한 모든 것들은 완벽히 준비된 무대를 마련하는 것 자체가 인위적이지 않은가. 그 무대위에는 아름다운 여자와 세상의 모든 것을 자신의 사랑으로 삼아버릴 줄 아는 늙은 예술가가 올라있고 영화는 그들을 열심히 관찰한다.  


그들은 세상의 본질이라든가 인생을 죽음이 끝인 것이라고 여겨 인생을 하염없이관조적으로 바라보다가도 그러고 있는 스스로를 비웃기도 한다. 그런 장면을 통해 주인공들은 스스로를 매우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할테지. 그러나 관객 입장에서 보자면 너무 웃기는 장면인 것이다. 


제일 웃겼던 장면은 늙은 예술가가 강변에 서있는 두 여자를 향해 "아름답습니다. 너무 아름답습니다. 그곳에 그렇게 존재하고 계시다니 너무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하는 장면이었다. 그 여자들이 아름다운 것은 왜 그렇게 예술가의 위안이 됐던 걸까?


전반적으로 우울한영화인데 한편의 코미디같기도하다. 사는게 너무 퍽퍽하고 힘들 때 아무 생각없이 관조할 수 있는 장면을 쳐다보고 싶으면 볼 만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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