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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잎 Apr 10. 2019

작가 박상영의 작품을 읽고.

친구가 책을 한권 추천했다. '젊은작가 수상작품집'. 최근에 나온 좋은 책이라고.


사는게 퍽퍽해서 책 안읽은지 꽤 됐다. 친구와 나는 삶이 퍽퍽한 것을 느끼지 못했던(퍽퍽했으나 인지만 못했던) 시절 만난 친구라, 살아가는 얘기보다는 생각의 흐름이랄까 감정의 흐름 같은 걸 주로 얘기한다. 


한 때 독서광이었던 나는, 독서를 많이 하는 만큼 그것에 대한 감상을 아주 주절주절 늘어놓는 습관이 있었는데, 책을 안 읽다보니 그런 습관도 사라졌다. 그러나 그 습관을 기억하는 친구는 내게 또 한권의 책을 추천해달라 하였다. 


그러나 읽은 책이 딱히 없었다. 그래서 늘어놓을 말도 없었는데. 이제 다시 늘어놓을 책이 생겼다. 박상영 작가다. 아. 이 아름답고 귀여우면서 과하지 않은 문장을 좀 보라. 


정말 귀엽다. 문장도 귀여운데 생각하는 것도 귀엽고. 그런데도 비교적 사회화돼 있어 소설에 나오는 인간들이 밉지 않다. 그냥 졸라게 귀엽다. 오. 귀여운 작가. 


머리가 멍청해진지 꽤 된 터라 소설을 다 읽어가면서도 이제는 상징이랄지, 해석이랄지, 의미 파악이랄지 뭐 이런 문학 읽는 법을 다 까먹어서, 깊이 있는 해석을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친절한 문학 해설가 선생님께서 뒤에 글을 덧붙여준다. 


사랑의 방식을 표현한 작품이다. 엄마의 사랑을 통해, 형의 사랑을 통해. 뒤틀린 사랑을 표현한 작품이며, 각종 이데올로기가 뒤얽혀 있는 방식을 캐릭터들을 앞세워 서사로 풀어냈다는 것이다. 


아, 이해를 못했었는데 되짚어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다. 어쩜. 이 짧은 소설을 읽고 매우 큰 감동을 받은 것은 나의 엄마와 그의 엄마가 매우 일치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밑에서 소스라치게 고통스러웠던 주인공과 나도 거의 유사했다. 


그의 인스타그램을 들어가보니 이건 뭐 엄청나게 귀여운 덩치큰 남자인간이 떡하니 있는데, 너무 귀여운 것이다. 저 얼굴로 이런 소설을 썼다니. 개 매력적이잖아. 간만에 덕질할 작가가 생겨서 매우 기쁘다. 


바로 장편소설을 한 권 더 샀다. 이 작가를 알려준 친구에게 깊은 밤에 카톡을 남겨놓는다. "박 작가가 미친듯이 좋다. 이 분을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친구하고 싶다. 개좋아. 정말 좋아."라며. 


내 모든것을 받아주는 친구에게도 인상깊은 구절 한 곳을 사진으로 찍어 전송했다. "매력이 넘치는 작가를 찾았어. 엄청나." 심야한 시간이라서인지 아직은 읽지 않았지만 그녀는 작가의 얼굴을 알게 되면 "완전 네 스타일인데."라고 말할 것이다. 와. 씨. 


근데 이분은 퀴어 소설을 쓰는만큼 게이다. 퀴어 소설을 전면에 등장시킨 서사의 한바람을 불고온 그런 작가인데, 이 사람에게서는 퀴어라는 특성을 빼고도 잠재적 작가성이 매우 넘쳐난다고 누군가 평가했다.


잠재적 작가성이란 끝없이 이야기거리가 있다는 의미다. 이야기할 것이 계속 있다는 것은 생각이 깊고 계속 변화해 나간다는 것이고 또 삶에 어떤 '아젠다'같은 것을 품고 살아간다는 뜻이며 .. 뭐 그것을 또 소설로 형상화할 줄 아는 능력도 함께 개발해나간다는 것인데..


한때 반짝하고 마는 작가도 생각보다 무지 많다. "오 괜찮은데 이 작가!"하고 보물을 발견하듯 기쁜 마음으로 하나씩 읽어나가보면 작가의 세계가 더 깊어지거나 넓어지거나 옮겨지거나 하는 경우는 드물며 똑같은 얘기잖아. 싶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까 뭐 진짜 계속 읽을만한 작가가 된다는 것은, 나이가 들수록 더 좋아진다는 의미이며 신작이 계속 기다려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세상에 너무 많은 소설과 훌륭한 콘텐츠가 많다. 그럼에도 정말 좋다고 생각하는 서사성과 문장과 아 그러니까 인간성까지 너무 좋다고 여겨지는 뭐 그런. 아름다운 작품은 진짜 오랜만에 봐서 (는 내가 요새 책을 안읽어서) 기분이 좋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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