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풀잎 May 03. 2019

나는 품안에 파고드는 고양이가 된 것 같다.

그러니까 내가 원한건 그를 안고 있는 것이었다.


그의 품에 안겨있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거였다. 나는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그의 손목을 잡고는 어깨에 나를 기대었다. 그는 따뜻하고 따뜻했다.


나는 그의 눈을 마주보고 그 얼굴을 쳐다보는 것도 좋아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면서 그러니까, 어떤 성적 끌림을 느끼는 것은 아니어도, 그저 따뜻한 눈길을 주고받았다. 나는 그와 얘기할 때는 긴장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는 사람을 속단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또 나는 어떤 믿음이 있었는데 그가 어떤 식으로든 나를 받아줄 것이라는 그런 것이었다. 나는 긴장하거나 예의를 차리지 않았지만 내가 조금 무례하다 싶으면 그도 기분 나쁜 표시를 했다. 나는 그때마다 재빠르게 그에게 사과를 했다.


생각이 없는 고양이.

난 그에게 안정감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그 어디에서도 안정감을 느끼지 못했으며 내게는 한 마리 고양이만 있을 따름이다. 고양이는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아 편안했다. 나는 고양이가 주는 안정감 말고 다른 종류의 편안함을 그에게서 느꼈다. 내 엄마도 내게 우리 관계가 완전히 끝장날 수 있을 것이란 암시를 주곤 했는데 고작 몇달 알게된 그에게서 편안함을 느끼다니.


내 엄마는 아주 가끔, 사실 꽤 자주, 자신의 죽음을 얘기했다. 그가 50살 무렵부터였나. 그는 곧 죽을 것이라고 했다. 자살을 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럴 것이라는 그의 강한 예감때문이었다.


그는 정말 진지하게 유서를 쓰기도 하고 유언 비슷한 것을 남기면서 온갖 청승을 떨었다. 나는 그가 90년 정도는 살 것이란 강한 예감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는 곧 죽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 그는 "곧 죽지 못하면 난 하나님께 가서 죽게 해달라고 간절히, 마음을 다해서 기도할거야"라고 말했다.


그가 자살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의 생명력은 질겨서 40년은 더 살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식으로 내게 미친 종류의 공포감을 준다는 것이 끔찍하게도 싫었다.


내 엄마는 유언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고 "너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해라"는 식의 말을 정말 진심으로 내뱉었다. 그의 감정이 격해졌을 때 뿐 아니라 매우 차분할 때도 그 얘기를 했다. 한번 내뱉은 것이 아니라 여러번 얘기해서 그것이 진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조만간 곧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는 우울증인가. 어떤 우울증의 증세는 자신이 죽을 것이란 강한 예감을 느끼는 것도 포함된다고 했다.


그런 어떤 강한 확신에 가득 찬, 강성한 여자가 주는 생각을 끝없이 주입하면서 살았다. 나는 그 강성한 여자의 생각을 내것으로 받아들여 살아왔다.


그 결과 나는 모든 관계는 완전히 끝장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으며, 모든 것이 끝장날 것을 암시하는 아주 사소한 징후들을 찾아내었다. 연락이 안되거나, 표정이 싸늘하거나 하면 나는 그것을 "관계의 끝장남"의 징후로 받아들였다. 그 불안함 속에서 나는 살았다.


나는 내 영혼의 일부분을 모든 관계에 던져둔 것만 같다. 영혼의 일부를 타인에게 내줬다. 그리고는 내 영혼을 준만큼 예민하게 굴었다. 타인의 사랑을 면밀히 들여다보다가 허점을 발견하고는 불안감에 몸을 떨었던 것이다. 이번의 사랑도 역시, 언제나, 그랬듯이, 허점투성이군. 쳇. 하고 돌아서버렸다.


그는 나랑은 반대인 것처럼 보인다. 그에게서는 '관계의 끝장남'이란 것도 없는 것 같고, 심각해지려는 찰나에는 그저 한번 으흐흐흐흐, 하고 웃어버리며 심각해지지 않는다. 그에게는 어쩐지 안정감이 넘치는 것 같아, 나는 불안해질 때면 그의 손목을 잡는다. 그리고는 그의 품에 파고들면서 말한다. "피곤해. 안아줘."


그 '피곤해, 안아줘'라는 말이 내 인생의 어떤 여정을 담은 것인지 그는 알까. 그 '피곤하다'는 의미는 내 육체의 일인가, 내 마음의 일인가. 나는 그에게 "추워. 왜이렇게 추울까" 했더니 그는 그 모든 것을 꿰뚫어버린 듯 "네 마음이 추워서야"라고 말한적이 있다.


그의 품안에 파고드는 나는 한마리의 고양이가 된 것 같다. 그리고 사람의 손길에 만족해 그릉그릉거리는 고양이가 된 것 같다. 고양이의 그릉거리는 소리의 근원이 고양의 몸 어딘지 아직도 모르는 것처럼, 나도 그에게 안겨있으면 어디에서 나오는지 모르는 강한 사랑에 휩싸이게 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