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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al the Show 2

by 티니Tini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이들이 많은 이유는 영원한 사랑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이들이 많은 이유는 영원과 사랑이 같은 말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연에게서 원이 떠난 지 3개월이 지났다. 벌써 겨울 지나 봄인데, 그녀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첫 번째 한 달은 아무렇지 않았다. 연에게는 원이 다시 돌아올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떠난 것도 원이니 돌아오는 것도 원이라 그렇게 스스로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원이 돌아올 때를 대비하여 두고 간 속옷과 잠옷 등은 치우지 않았고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나 마음 한편에 자리 잡았던 그녀처럼 그것들도 방안 곳곳에 자리 잡게 두었다. 돌아온 원에게 이 집이 낯설지 않게, 원의 자리를 지켜주는 척 내 마음을 지켰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보고 싶다고 나를 사랑한다고 밤낮으로 얘기하던 원에게서 무려 3달이 지난 지금까지 연락 하나 없다. 어디서 뭘 하는지 도통 소식을 알 수가 없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가고 싶은 카페가 바뀌던 변덕스러운 그녀가 아니었나.


이렇게 확고한 사람이었다니 어쩐지 헤어진 후의 그녀를 더 알게 되는 묘한 기분에 휩싸이는 듯했다.





지난가을인가, 하루는 원으로부터 펑펑 우는 소리가 가득 섞인 전화가 온 적이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과 옛이야기를 하나, 둘 꺼내며 맥주 몇 잔을 기울이다보나 자정이 넘었고 아쉬운 마무리를 끝으로 모두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중이었다.


괜스레 기분 좋아 해맑게 받은 전화에서는 그녀의 웅얼거리는 목소리만이 들려왔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종이에 베여서 쓰린 피가 난다고 엉엉 울어재끼는 그녀였다. 돌밭에서 넘어져도 안 울던 원이는 어디 갔냐고 완전 울보라고 한마디 농담을 얹었다가 혼나고 말았다.


끅 끅 거리며 갈라지는 목소리 사이로 너무해로 추정되는 말들이 들려왔다.


종이처럼 얇은 거에 베이면 따끔따끔 계속 아플 거라고 피는 잠깐이면 멎지만 그다음부터 같은 곳을 또 베이기 쉽다고, 나중에서야 어디에 상처 난 지 찾게 된다며 너무해를 연신 반복하던 그녀였다.


그때 대일밴드 말고 그녀가 좋아하는 달달한 걸 보낼 걸, 아니면 그냥 찾아갈 걸 그랬나 하고 후회했다.


원은 삐지기를 잘했고

나는 삐진 원을 잘 풀어주었고

원은 울기를 잘했고

나는 우는 원을 잘 달래주었다.


나는 삐지기를 못했고

원은 삐지지 않는 나를 보다 또 삐졌고

나는 울기를 못했고

현은 울지 않은 나를 보며 또 울기를 반복했다.


원은 이 관계에서 왜 저만이 삐지게 되는지

이해를 못 했고

나는 원이 이 관계에서 저만이 삐지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원은 사람에게 기대가 많았고

나는 사람에게는 기대가 없는 편이었다


원은 나에게도 바라는 부분이 많았고

나는 원에게 바라는 부분이 많지 않았다


나는 원이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기를 원했고

원은 자신을 고쳐서라도 나의 사랑을 받길 원했다


나는 원을 있는 그대로 사랑했고

아니 나는 원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싶었는데

나는 원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려고 했는데

내가 아는 원은 3달 내내 한마디 연락도 없을 사람이 아닌데 말이다.


원이 보고 싶다 생각하면서

연락 한통 먼저 하지 않는 내가

사실은 영원히 그녀의 답장을 받지 못할까,

걱정하며 연락하지 못하는 내가.


원은 보고 싶다, 보고 싶다고, 보고 싶어를 잘했고

나는 나도 보고 싶다, 나도, 보고 싶네를 잘했다


원은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다를 잘했고

나는 그래 좋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자를 잘했다


나는 원이랑 함께하는 시간이 좋았고

원이하고 싶은 걸 함께하는 것이 좋았다


원은 사랑해하고 말하기를 잘했고

나도 사랑해하고 말하기를 잘했다


나와 원은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하기를 잘했다


나는 원에게 보고 싶다는 연락을 못하고

나는 원에게 돌아오라는 연락을 못하고


원이 돌아오길 바라는 일을 잘 못하고 있다


소파에서 새우잠을 자는 날이 늘었고

노래를 듣다 고개를 떨구는 날이 늘었고

사진을 들여다보는 날이 늘었다.


원은 잘 지낼까.

원의 쉴 틈 없이 조잘거리는 입이 보고 싶은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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