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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al the show 3

숨바꼭질

by 티니Tini

연이 어린 시절 가장 즐겨했던 놀이는 숨바꼭질이었다. 납작 기어들어가 몸을 숨기고 숨을 죽이는 일을 잘했다.


한 날은 옷장 위 이불 칸에서 잠들어버린 적이 있다. 연을 찾던 술래와 나머지 친구들이 제 풀에 지쳐 집으로 돌아간 줄도 모른 채 폭신한 옷들 사이에서 깜빡 잠에 빠져버렸다.


나중에 엄마에게 그 높은 곳까지 어떻게 올라갔냐는 잔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친구들과의 놀이에서 이겼다는 사실에 아무렴 좋았다.

한 날, 인천에서 전학 온 친구가 ‘못 찾겠다 꾀꼬리’를 알려주었다.

“못 찾겠다 꾀꼬리. 못 찾겠다 우리 원이.”

그 친구는 이렇게 외치는 즉시 술래가 게임에서 진 것이고 숨은 친구들이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연은 인생 첫 승리와 항복을 숨바꼭질을 통해 배웠다.

원에게 항복, 그녀는 어디에도 없었다.


지난 3개월 동안 수많은 장소를 돌아다녔다. 편한 차림으로 마른안주에 맥주 한잔 하던 노가리집에도, 안 되는 공부 좀 해보겠다고 붙잡고 있던 카페에도, 연의 흔적으로 도배된 원의 집에도 그녀가 즐겨 신던 메리제인은 보이지 않았다. 평소에 가깝게 지내던 원의 친구들도 그녀의 행방을 모르겠다고 했다.

연의 연인도 숨기를 잘했고, 연도 술래보다 숨기에 자신이 있었다. 연은 원을 찾지 못했다.

연은 침대에 누워 지난 여름날의 원을 생각하는 중이었다.

천둥이 쳤다. 일기 예보에도 없던 세찬 비에 숨 가쁘게 퇴근했던 날이었다.

연은 비가 세차게 쏟아지기 시작하면 늘 천둥을 걱정했다. 번쩍 눈앞이 새하얗지는 순간에 깜짝 놀랄 원을 걱정해야 했다. 그녀는 큰 소리를 싫어했다.


다 젖어 축축해진 운동화를 질질 끌고 들어온 현관에서 원의 메리제인은 보이지 않았다.

금요일은 연과 원의 습관과도 같은 날이었다.

소박한 둘은 연의 아담한 원룸에서 맛있는 것을 같이 만들어 먹고 밀린 시리즈물을 보다가 함께 잠들기를 자주 했다.

만남 초반에 원은 금요일을 함께 보내자고 제안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길고 평안한 밤을 오래고 보내고 싶다고 했다.


다소 이른 시기에 사랑이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 원을 보며 그녀의 사랑의 경중을 깊게 고민한 밤도 있었지만 그녀와 함께하는 금요일 밤에서 토요일 새벽은 어느 때보다 7평 원룸이 생기를 내는 시간이 되었다.

연이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원에게는 자다가 중간에 깨거나 아예 잠에 들지 못하는 날들이 많았고 꿈을 꾸는 날들이 잦다는 것이었다.


타인과 함께 잠들기는 그녀가 제일 못하는 일 중에 하나였다는 사실에 그녀가 보고 싶어진 월화수목이 있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원을 찾으러 다녔다. 위치를 숨길 생각이 없는 술래처럼 노란 3단 우산을 들고 그녀에게 닿기 위해 빙글빙글 동네를 돌아다녔다.


퇴근시간이 훌쩍 넘었는데 연락 한 통 없는 원이 걱정이 되었다가 짜증도 났다가 다시 돌아서면 걱정부터 되었다.

원은 이 노란 우산이 연과는 어울리지 않다고 했다. 무채색 인간이 어쩐 일로 우산은 노란 걸 드냐며 왼쪽 볼 한쪽에 폭하고 파인 보조개를 달고 희게 웃던 그녀였다.


그 길로 연은 우산을 5개나 더 샀다.


빨주노초파는 역시 하나도 안 어울린다고 신나서 장난을 치는 그녀가 보고 싶었다. 왼쪽 볼에 폭 하고 움푹 파인 보조개를 달고 희게 웃는 그녀가 보고 싶었다.

동네 세 바퀴를 돌고서 엉망이 되어버린 운동화를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산을 탈탈 털어 꽂이함에 집어넣었을 때 그 많던 우산들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되었다.

[연아, 옥상이야.]

못 찾겠다며 술래야 하고 꾀꼬리가 먼저 연락해 왔다. 숨바꼭질의 첫 번째 원칙은 술래의 시야에서 멀어지기, 두 번째 원칙은 인기척을 내지 않기, 세 번째 원칙은 잠자코 기다리기였다.

노란 우산을 들고 옥상으로 올라가는 내내 이해되지 않는 연을 이해해 보고자 백을 세었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인기척까지 내다니, 숨바꼭질의 원칙을 모르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술래는 숨은 이유까지 물어보는 사람은 아니니까, 찾는 사람이니까.

평상에는 빨간 우산, 주황색 우산, 초록색 우산들이 펼쳐져 있었고 그 옆에는 미처 못 핀 파란색 우산과 그녀의 메리제인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연의 연인은 그녀를 집어삼킨 듯 크고 넓은 장 우산 밑에 쭈그리고 들어가 숨을 죽이고 앉아있었다. 연을 돌아볼 생각이 없어 보이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 옆으로 다가섰다.

“원아 내가 졌어. 드디어 찾았네.”

“연아, 미안해. 배터리가 없어서, 보조배터리가 있는 걸 깜빡했어.”

습관과도 같은 금요일을 함께한 지 2년이면 배터리가 없다는 말은 혼자 있고 싶었다는 말로 해석되기도 한다.


노란 우산을 접고 그녀의 장우산 속으로 들어갔다. 챙겨 왔던 겉옷을 건네고 가만히 앉아있는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연아 나는 어릴 때, 거실 바닥에 우산을 펼쳐 두고 내 집이라고 했다? 거기서 따로 살겠다고 했어.”


“그래? 그럼 원이는 집이 4 채네. 빨간색 집, 주황색집, 초록색집. 그리고 검은색집?”


“근데 연아, 집에는 온몸이 다 들어가잖아. 이제 다리가 튀어나와, 좁아. 많이 좁아.”


“저 밑 편의점 가서 파라솔을 뜯어올까?”

연의 농담에 원이 숨죽여 울었던 것도 같고, 연이 원을 토닥였던 것도 같고, 원이 연의 손을 꽉 쥐었던 것 같기도 하다.


빗소리가 울렁거려 제대로 들리지 않을 소리로 원은 연에게 빗속에서 찾게 만들어 미안하다고 연신 미안하다고 했다. 연은 괜찮으니 오늘처럼 가까이에만 숨어 있어 달라고 원을 토닥토닥하였다.

천둥이 쳤다.

그날 초록 바닥의 옥상에는 빨간색 집, 주황색 집, 초록색 집, 검은색 집을 가진 두 연인이 있었다.


7평 원룸에 우산집 4채를 업은 채, 세찬 비에 온몸이 다 젖은 연과 원은 꼬박 이틀을 감기로 고생했다.


금요일 저녁부터 월요일 아침까지, 서로를 사랑하는 두 사람은 길고 평안한 밤을 함께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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