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아픔은 흔적을 남긴다>
책이 나오기도 전, 나는 또 다른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된다. 바로 ‘마음에 대한 전시회’를 여는 일이었다.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 공감이 오가는 작은 소통의 장을 만들고 싶었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생각했다. 입원 시절 미술치료 시간에 만들었던 작품들을 중심으로 전시를 꾸미고, 한켠에는 내 책과 엽서를 함께 놓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들떴고, 전시회를 구상하며 또 며칠 밤을 꼬박 새웠다.
그러나 문득, 혼자서는 전시회장을 다 채우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함께 전시회를 꾸려나갈 작가들을 SNS를 통해 모집했다. 그렇게 나를 포함 세 명의 작가가 모였다. 나는 기획자이자 작가로서 전시회장을 알아보고, 전시 주제를 정하고, 콘셉트를 구체화하며 프로젝트를 나름 즐겁게 이끌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예전에 만들었던 작품들이 전시를 하기에는 퀄리티가 너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원 당시에는 도화지, 색연필, 크레파스, 같은 제한된 기본 재료로만 짧은 시간 안에 작품을 완성해야 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전시회 날짜는 이미 정해져 있었고, 내 손에는 준비된 작품 한 점도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상하게도 당황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되겠지.’
근거 없는 자신감이 나를 밀어붙였고, 놀랍게도 실제로 단 두 달 만에 열 점의 작품을 완성했다. 결국 <모든 아픔은 흔적을 남긴다> 전시회는 120명가량의 관람객이 찾아주어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나중에 의사 선생님께서는 그 시기를 두고 ‘경조증 시기’였다고 하셨다.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았고, 자신감이 과도했으며, 의욕과 추진력이 비정상적으로 넘쳤다는 이유에서였다.
나는 그동안 내가 책을 내고 전시회를 연 것이 병이 완치되어 ‘정상적인 나’로 돌아온 건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것조차 병의 일부였다는 것이 절망스러웠다.
그러나 그동안 나를 봐오셨던 사회복지사 선생님께서는 나의 이러한 상태를 ‘착한 경조증’이라고 이름 붙여 주셨다. 결국 그 시기가 내게는 소중한 경험을 남겼기 때문이다.
주치의 선생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경조증은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어요. 잘만 다스리면 오히려 인생에 도움이 될 수도 있죠.”
이제 나는 안다. 그 시기의 열정과 에너지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저 다른 형태로, 조용히 내 안에 숨어 있었을 뿐이라는 것을. 그 시기는 바로 그것을 증명해 준 시간이었다.
모든 아픔은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들은 상처의 기록임과 동시에 내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그래서 나는 그 흔적들을 지우지 않기로 했다. 그것들이야말로 내가 다시 나아갈 수 있는 이유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