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아온 우울 삽화

by 연보라


그렇게 의미 있는 한 학기를 보내고, 우울 삽화는 갑작스럽게 다시 나를 찾아왔다.


사실 평범한 하루였다. 여느 때처럼 나는 카페에서 혼자 과제를 하고 있었고, 과제를 무사히 다 마친 뒤 카페를 나섰다. 그 순간, 왠지 모르게 서러운 감정이 들었다. 그냥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고 싶었다. 기분전환을 위해 혼자 산책을 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걸음이 나를 이끈 곳은 마포대교 위였다.

마포대교 위를 한참 하염없이 걸었다. 그러다 생명의 전화 앞에 멈춰 섰다. 당장이라도 전화를 걸어 내가 죽고 싶으니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싶었다. 하지만 용기가 부족했다. 그래서 그 앞에 쭈그려 휴대폰 메모장을 켜 주치의 선생님께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주치의 선생님께:

선생님 안녕하세요.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 몰라 몇 번을 썼다 지웁니다.

저는 지금 마포대교 위에 있어요. 걸음이 이끄는 대로 걸어왔더니 이 위에 앉아 편지를 쓰고 있네요.

딱 일 년 반 전이었던 것 같아요. 죽고 싶다고 발버둥 치다가 살기 위한 이유를 찾으러 이곳에 왔던 게.

그 후로 제 삶은 많이 바뀌었어요. 입원치료, 면담치료를 통해 치열하게 제 자신을 찾고 가꾸는 과정을 거쳤어요. 자꾸 뒤로 되돌아가고 넘어졌지만 선생님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셨고 저도 잘 살고 싶었기에 열심히 치료받았어요.

2020년은 치료 성과가 나타나는 해였던 것 같아요. 책도 쓰고 , 전시회도 열고... 성취지향적이었던 저는 치료에 있어서도 결과물을 원했고 다행히 모두 만족스럽게 마칠 수 있었죠. 그리고 저는 정말 괜찮아진 줄 알았어요. 눈에 띄는 우울 삽화 없이 몇 개월을 지냈어요.

그렇게 복학도 했어요. 공부만 잘 해내면 이제 정말 제가 다 나았다고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믿으면서요.

개강한 지 일주일이 지났어요. 저는 생각보다 잘 해내고 있어요. 과제도 미리 다했고, 친구들 그리고 가족들과의 관계도 괜찮아요. 하고 싶은 일도 생겼고 그를 위해 노력해고 있어요. 제가 꿈꾸던 인생을 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왜 또 죽고 싶을까요? 공부가 너무 큰 부담으로 다가와서 일까요? 제가 원하는 인생은 사실 이게 아닌 걸까요? 제가 너무 나약한 걸까요? 아니면 저는 그냥 태어나서는 안될 존재였던 걸까요? 잘 모르겠어요. 그냥 제가 아팠을 적에 이루고 싶었던 것들을 이뤄낸 지금 인생에 별로 미련이 없어진 것 같아요. 사라지고 싶어요.

죄송해요... 저는 아마 죽을 용기가 없어서 이렇게 쭈그리고 앉아서 울다 일상으로 돌아가겠지만 오랜만에 든 생각과 감정을 기록해두고 싶었던 것 같아요. 눈물이 나다가 글을 다으니 쏙 들어가네요. 저는 생각보다 괜찮은 것 같아요. 다음 주 면담 시간에 뵐게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상황을 솔직하게 밝힌 편지를 쓰고 나서도 나는 괜찮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생명의 전화를 집어 들었다. 전화를 받으신 분은 목소리가 젊으신 여자분이었다.

"이름을 밝히는 게 어려우면, 혹시 제가 '이쁜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그분은 나를 ‘이쁜이’라 칭하시며 내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어주셨다. 나는 지금 상황부터 지금까지 해왔던 노력까지 빠짐없이 이야기했고, 상담사 분의 적절한 리액션에 나도 모르게 점점 안정이 되었던 것 같다. 그분은 내가 노력하는 모습이 너무 멋지고 대견하다며 생명의 전화에 전화한 것도 큰 용기고 노력이니 앞으로도 나아져서 너무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나중에라도 나를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하셨다. 빈말이라도 그 말이 큰 힘이 되었다.


통화가 끝나고 나는 생명의 전화에서 연락이 가 나를 데리러 온 동생과 함께 집에 돌아왔고, 상황은 종료되었지만 나는 다시 지속적으로 자살 충동을 느끼게 된다.

전과는 분명히 다른 종류의 '죽고 싶음'이었다. 이전의 '죽고 싶음'에는 분명한 원인과 결과가 존재했다. 세상을 살아내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워 빨리 끝내고 싶었다. 그 당시의 '죽고 싶다'는 말은 정말 죽어야겠다가 아닌 이렇게 살기 싫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죽고 싶음'은 말 그대로 '죽고 싶음'이었다. 삶에 미련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지금 당장 죽어도 괜찮을 것 같은 느낌. 그래도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을 것 같은 느낌.

이루고 싶은 것들을 다 이루었으나 별것이 아님을 깨달았을 때 오는 절망감 때문일까? 아니면 사실 나는 개강의 중압감이 눌려 행복한 척하고 있었던 걸까?


이유야 어찌 되었든 그날 이후로 나는 일상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죽고 싶다는 생각에 빠져 강의를 들을 수가 없었다. 모든 생각들은 마치 깔때기가 씌워진 것처럼 한 곳으로 모여 결국 죽고 싶다는 생각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그저 소설 '아몬드'에 나온 살인마가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을 무분별하게 죽인 것처럼 수동적인 자살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바랄 뿐이었다.

하루는 나도 모르게 달려오는 차에 뛰어들려 했다. 이 이야기를 의사 선생님께 이야기하자 분위기는 사뭇 심각 해지셨다. 다음 외래 때까지 살아있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덧붙이자 교수님께서는 잠시 고민하시더니 바로 입원을 하자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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