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그 후

<이제 그만 우울을 놓아주고 싶다>

by 연보라

주요 우울장애로 치료를 받던 어느 날, 양극성장애(조울증) 2형으로 추정 진단명이 바뀌었다.


갑자기 기분이 들뜨는 2주를 보냈기 때문이었다. 그 시기의 나는 하루에도 두세 개씩 일정을 소화했고, 많은 일에 의욕이 넘쳤다. 잠을 자지 않고 음식을 먹지 않아도 에너지가 넘쳤다. 머릿속은 쉼 없이 돌아갔고, 해야 할 일들은 정리되지 않은 채 쏟아져 나왔다. 새로운 일을 기획하고 실행하며, 나는 희열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우울증 치료 일기를 책으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 하나로, 나는 써둔 일기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흩어져 있던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 모으고, 무너졌던 날의 감정들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나는 하루의 거의 모든 시간을 책 작업에 쏟았다. 책상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다 보면 어느새 밤이 되었다. 글쓰기에 집중하는 시간만큼은 무기력도, 자책도, 외로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오래전 잃어버렸던 에너지가 갑자기 되살아난 것처럼. 신기했다.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시간조차 아깝게 느껴졌고, 나는 쉴 틈 없이 글을 써내려 갔다.


불과 20일. 그 짧은 시간에 300쪽이 넘는 책의 초고를 완성했다.
그 후, 약 석 달간의 퇴고가 이어졌다. 문장을 고치고, 내용을 다듬고, 삽화와 표지까지 직접 만들었다.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른 채 열중했다.

그렇게 완성된 책의 제목은 <이제 그만 우울을 놓아주고 싶다>였다. 지금 다시 하라면 도저히 하지 못할 만큼, 이상하리만치 지치지 않고 달려온 시간의 결과물이었다.

책은 펀딩 사이트를 통해 세상에 나왔다. 관심과 응원의 마음으로 펀딩에 참여해 준 사람들 덕분에, 결과는 나름 성공적이었다. 펀딩은 목표의 300% 이상을 달성하며 마무리되었다.

공감이 되었고, 위로가 되었다는 독자들의 말에, 오히려 내가 더 위로받았다.
그때만큼 나는 우울할 틈도 없이 기분이 좋은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나의 책의 제목처럼, ‘이제 나의 우울은 끝났구나.’라고.

하지만 아니었다. 책을 내고도, 여전히 내 안의 우울은 계속되었다. ‘계속 아프고 싶다 ‘는 생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끝나지 않은 우울 삽화가 나를 다시 어둠 속으로 데려갔다.


나는 부끄러웠다. 아직도 이렇게 힘든 내가, 우울을 극복했다며 누군가에게 조언하려 했던 것이 오만하게 느껴졌다. 충동은 조절하기 어렵다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잠깐 괜찮아졌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위로하려 했던 나 자신이 창피했다.


이제는 인정한다. 우울은 쉽게 끝날 수 없음을. 내 책은 우울의 ‘끝’이 아니라 ‘과정’이었음을. 그리고 이제는 안다. 이 과정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지만, 함께 걸어가는 이들이 있기에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나는 써 내려간다.

월, 금 연재
이전 07화나를 배우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