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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phy Oct 02. 2015

진정한 노약자

B군의 자몽

B군은 착한 청년이다.

원래 심성도 착하게 태어난 데다 훌륭한 부모님을 만나 잘먹고 잘 사는 법 뿐만 아니라 올바르고 선하게 사는 법도 잘 배웠다. 어디를 가도 미움 받지 않는 성격의 B군은 늘 옳은 일에 발 벋고 나섰으며 의리라면 두 번째가 서러운 남자였다. 특히 약자를 향한 그의 끓어오르는 자비심은 그의 삶의 원동력이었다. 

조금 거칠긴 하지만 어쨌거나 B군은 착한 청년이었다!


그런 B군이 착해지기 너무 어려운 곳이 있었으니.... 바로 대한민국 전철 안이었다!

전철 안에서 기대되어지는 착한 행동은 온 국민이 알고 있다시피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다.

물론, B군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벌떡 벌떡 일어나곤 했다. 

힘든 어르신들이 노약자석이 아닌 곳에는 서있기 미안해하며, 젊은이들을 피해 일부러 전철 구석으로 가서 서는 것을 여러번 봤기에 B군은 더욱 뜨거운 눈빛으로 노인들을 찾았다.


하지만 문제의 그날 이후 B군은 전철을 타고 자리에 앉기만 하면 빛의 속도로 졸기 시작하거나 이어폰 꼽고 핸폰에서 눈을 떼지 않는 요즘것들이 되어있었다. 




그날, B군은 서점을 다녀오던 길이었다. 

전철 좌석에 앉아 책을 읽다 고개를 들었더니 할머니 두 분이 B군 앞에 서 있었다. 

순간 이분들의 정체가 아줌마인지 할머니인지 살짝 확신이 없어 재빨리 증거를 수집했다. 


증거1. 가방을 들고 있는 팔에 언뜻 언뜻 보이는 검버섯들

증거2. 목소리에서 묻어나는 연륜

증거3. 할머니들만 하는 '눈꺼풀수술'의 흔적


순식간에 식별을 끝낸 B군은 둘 중 더 나이들어보이는 할머니를 향해 말했다. 

"할머니! 여기 앉으세요!"

"아이고, 괜찮은데..." 하며 못이긴척 앉으시는게........................ 보통의 경우이다. 

그런데 이 날은 예상과 달랐다.

"뭐요? 참네... 이봐요! 내가 어딜봐서 할머니예요? 그리고 난 댁같은 손자 둔 적 없거든!! 어이 없어서..증말!"

B군은 당황해서 어찌해야할지 몰라 조용히... 다시 엉덩이를 붙였고 두 할머니는 똥이라도 밟은 표정으로 다음역에서 내렸다. 

원래 사람이 단순한 B군은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즉시 파악이 안 되서 집에 도착할 때까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이후로 B군은 맘편하게 자리를 양보하는 일이 어려워졌다. 

생각없이 하던 일을 고민하며 하려니 없던 생각도 들어왔다. 


나이들었다는 것이 무슨 죄라도 되는 것처럼 인식되는 사회에서 노인을 찾기는

.... 어렵다.

전철문이 열리면 누가 있건 아랑곳 하지 않고 냅다 달려, 밀치고까지 자리에 앉는 어린 것들은

....때려주고 싶다!

앞에 서있는 노약자를  못보고 있다가 뒤늦게 인식하고는 일어날까말까 고민하는 것은

.... 상당히 뻘쭘하다!

사람들 시선을 의식해서이거나 착해야 한다는 부담때문에 주위를 둘러보는 것은

.... 이건 아니다!

욕들어먹을까봐 겁나서 마지못해 일어나는 건

.... 아, 내가 싫다!


어쨌거나 B군은 이제 전철을 타면  편치 않았다! 




그 후 또다른 어느날, B군은 전철에 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빽빽하게 서있었고 그는  자리에 앉아 전화를 하고 있었다. 

앞에 서있는 사람들의 다리 사이로 누군가 지나가고 있는 것이 얼핏 보였다. 

허리가 구부정하게 굽은 할머니가 힘겨운듯 한걸음 한걸음 복잡한 사람들 틈을 지나고 있었다. 

순간, B군은 생각이 들어올 틈도 없이 본능적으로 사람들 다리 사이로 팔을 쭉 뻗었다. 

앞에선 사람들이 흠짓 놀라 옆으로 비켰다. 

한 손으론 전화기를 들고 한 손으론 할머니의 팔목을 휙 낚아챈 B군은 일어서며 할머니를 댕겨와 앉혔다. 

통화중이라 앉으시란 말도 못하고 시늉으로만 의자를 가리키며 앉혀드리니 할머니의 눈가가 웃음으로 예쁘게 주름졌다.

"아이고, 고마워라....아이고... 고마워요...!"

B군은 무심한 척 고개만 까딱하고 통화를 마무리했다. 

할머니는 크게 숨을 내쉬며 의자에 등을 기대시더니 이내 주먹으로 다리를 두드리셨다. 꽤 오랫동안.....

B군은 마음이 짠...해왔고 왠지모를 뿌듯함이 명치로부터 채워져 올라왔다. 


사람들의 시선도, 착해야 한다는 부담도, 욕들어먹을까하는 두려움도 아닌 순수하게 돕고싶은 맘으로 돕기...

그럴 수 있어서 참 좋다.... 참 좋다....


생각 끝! 

다시 단순해진 B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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