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깃한 면이 지금도 생각나는 미슐랭 빕구르망의 국물없는 탄탄멘
고베 출장 4일 차입니다. 3일 차였던 어제는 사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수제버거 전문점인 S.B. Diner Kobe를 가려고 했는데 임시 휴일이라 못 갔습니다. 그래서 모 돈까스집을 갔는데 임시 휴일이더군요. 결국 산노미야 지하, 산플라자로 내려와서 식당을 물색했습니다. 야키소바와 토마토 라멘을 고민하다가 날씨도 덥고 해서 시원한 게 땡기는지라 마루가메제면(丸亀製麺)에서 여름 한정 메뉴인 고추절임 우동을 먹었습니다.
고추 장아찌 같은 게 듬뿍 올라가 있는 우동인데 꽤나 매콤한 게 괜찮더군요. 큰 걸로 시킬걸 하고 후회했습니다. 먹다 보니 카가와(香川)에 갈 때마다 꼭 한 번 "이상"은 들렀던 타니가와베이코쿠텐(谷川米穀店)의 우동이 떠올랐습니다. 어쩌면 이 타니가와베이코쿠텐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아무튼 3일 차에는 본의 아니게 체인점 우동을 땡긴지라 (물론 마루가메 제면, 꽤 좋아합니다), 오늘은 고베에서만 먹을 수 있는 가게를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산노미야(三ノ宮) 바로 옆 역인 나다(灘)에 있는 시루나시 탄탄멘(汁なし担々麺; 국물 없는 탄탄멘) 전문점인 ENISHI에 왔습니다. 이 가게에 처음 방문한 건 2015년이었는데, 2016년 미슐랭 가이드 효고/고베 특별판에서 빕구르망으로 선정된 이래로 꽤나 사람들이 몰려서 자주 가지를 못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간 게 2018년 1월 14일이었으니 거의 7년 반 만의 방문입니다. 2015년의 첫 방문 때는 15분 정도 기다려서 들어갔고, 2018년에는 1시간 조금 안되게 기다렸던 걸로 기억합니다.
가게 전경입니다. 조금 이른 시간에 도착했다고는 하나 대기열은 없었습니다. 가게 입구 근처에 놓인 입간판에 "JAPAN KOBE Michelin Award"라고 써놓은 게 좀 모양새가 빠지는 것 같았습니다. 솔직히 미슐랭 스티커만 붙여놓아도 되는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네요. 마치 집 근처 해물탕 집에 걸려있는 6시 내 고향, 생생정보통 출연한 사진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미슐랭 가이드 효고/고베 편은 2016년에만 나온 특별판이니 장기적으로 별을 유지하거나 올라가고, 강등당하는 그런 경쟁(?)이 어지간해서는 존재하지 않기에 매년 발행되는 "미슐랭 가이드 도쿄"나 "미슐랭 가이드 교토/오사카"와 같은 선상에서 놓고 비교하기는 힘들겠습니다만, 그래도 지금까지도 일본 스페니쉬 요리의 최고 존엄이라고도 불리는 카센트(カ・セント) 같은 가게도 있고 하니 빛이 바래지는 않았다고 봅니다. 당시 카센트는 별 3개를 받았는데 10년이 지난 지금은 위상이 더 올라가면 올라갔지 내려가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죽기 전에 한 번 가보고 싶은 가게 중 하나인데 기회가 있으려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ENISHI로 돌아가자면 그 외에도, 일본 최대 맛집평가 사이트인 타베로그(食べログ)의 분야별 Top 100에만 수여하는 백명점(百名店)을 2017, 2018, 2019, 2020, 2021, 2022, 2023, 2024년 연속으로 수상했습니다. 라멘같이 경쟁이 치열한 분야에서 8년 연속 상위 100위안에 들었다는 것은 대단한 성적이라고 봅니다. 참고로 라멘분야 2025년은 아직 발표가 안된 상태입니다.
가게 내부입니다. 오른쪽에 식권 발매기가 있습니다. 결재는 현금 또는 PayPay 뿐입니다. 신용카드나 기타 비접촉 결재는 지원되지 않습니다. 식권을 발권하면 직원이 자리를 안내해 줍니다.
내부는 이렇습니다. 카운터석이 메인이고 4인 테이블이 2개 있습니다. 손님은 한 명도 없더군요. 혹시 근 1년 사이에 맛이 급격하게 떨어졌나? 하는 걱정도 들었습니다만 이미 식권을 뽑았으니 어쩔 수 없죠.
자리에는 탁상조미료가 이것저것 놓여있습니다. 식초가 3종류, 라유, 두반장, 그리고 고추와 산초를 베이스로 한 스파이스, 마지막으로 후추가 놓여있습니다.
앞에 있는 칩은 개당 100엔에 사는 건데 어디에 쓰는 거냐 하면 점원에게 주는 겁니다. 그리고 그 점원은 나중에 저 칩을 100엔으로 교환할 수 있다고 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팁"입니다. 팁 문화가 없는 나라에서 나고 자란지라, 솔직히 미국 생활하면서 팁 때문에 스트레스받은 게 이만저만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근 1, 2년 사이에 한국에서도 뭔가 팁 문화를 도입하려고 하는 가게가 있을 때마다 좀 불편하게 느끼긴 했습니다. 물론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아직 팁을 주고 안 주고는 개인의 자유고, 소비자의 선의에 기대는 측면이 크다고 봅니다만, 그래도 팁이라는 선택지 자체를 놓는 게 조금은 불편하더군요. 아무튼 이 부분은 최저 임금을 포함한 노동의 제도적, 사회 문화적 측면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안이니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음식이 나왔습니다. 제가 주문한 내용은 마라 탄탄멘(麻辣坦々麺; 1,130엔) + 고수 (350엔)입니다. 마라 탄탄멘은 온타마(温玉; 온천 계란)와 마지막에 양념에 비벼먹을 작은 밥이 붙어있는 세트입니다. 밥 위에 올라간 저 작은 무언가는 우메보시(梅干し)입니다. 제가 비교적 최근에 먹기 시작한 일본 음식이 이 우메보시입니다. 작년 즈음부터 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 일본생활 20년째에 우메보시를 입에 댈 수 있게 된 거네요. 고수는 저번에 도쿄에서 탄탄멘 먹은 리뷰를 쓸 때 썼습니다만, 2018년인가 2019년 즈음에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여자 친구 (현 아내)은 고수를 먹고 저는 못 먹었는데, 제가 고수에서 화장품 냄새 나서 못 먹겠다고 한 이래로 아내도 그걸 자각하면서 지금까지도 고수를 못 먹고 있는데, 정작 저는 고수를 극복해서 지금은 저렇게 산 처럼 쌓아놓고 먹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탄탄멘 확대샷입니다.
탄탄멘 항공샷입니다.
맛있는가? 하면 맛있습니다. 타베로그 백명점의 신뢰성은 사람마다 이견이 있겠습니다만, 적어도 함량미달인 가게에게 8년 연속으로 백명점 라벨을 붙여주지는 않겠죠. 맵기는 신라면보다는 덜 맵습니다. 저는 탁상 조미료인 스파이스와 라유를 잔뜩 뿌려먹었더니 그제야 좀 먹을 만 해지더군요. 맵다고 느끼는 타이밍이 오면 그때 저 온천 계란을 넣으시면 됩니다. 저는 나중을 위해 비축해 놓았습니다. 3분의 1 정도 지난 시점에서 식초를 사정없이 뿌려줬습니다. 시루나시 탄탄멘과 식초의 조합은 최고지요. 도쿄의 탄탄타이거도 그렇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오사카의 시루나시 탄탄멘집도 그렇지만 식초는 무조건 놓여있죠. 탄탄멘과 식초의 조합은 "면을 새콤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탄탄멘의 여러 스파이스를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무엇보다도 에니시의 최고 장점은 면입니다. 사진에는 면이 안 보이는데 칼국수와 비슷한 납작한 면으로 처음부터 간이 잘 배어있습니다. 그리고 이 면이 쫄깃쫄깃쫄깃쫄깃하면서 정말 양념과 잘 어울립니다. 이 면의 식감만큼은 어느 시루나시 탄탄멘집 보다도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중간중간 씹히는 고소한 땅콩과 오이 피클 또한 포인트입니다. 탄탄멘에 이 오이절임은 특이한 조합입니다만, 중간중간 느껴지는 상큼함이 좋은 자극이 되어줍니다.
먹고 나면 생각보다 양념이 꽤 남는데, 여기에는 밥을 넣고 비비시면 됩니다. 저는 이 시점에서 온천 계란을 넣었습니다. 우메보시도 이때 넣어서 잘게 으깻고요. 우메보시에는 씨가 있으니 꼭 빼시길 바랍니다. 잘못 씹으시면 강냉이가 날아갑니다. 듣기로는 일본 치과가 안 아프게 잘해준다고는 하지만 여행까지 와서 치과는 좀 아니죠. 전체적으로 양은 적당한 편입니다만 좀 많이 드시는 분에게는 모자랄 수도 있습니다. 면 추가도 되고 다른 사이드 메뉴 (가라아게 등)도 있습니다.
다 먹고 나올 즈음에는 조금씩 손님들이 차기 시작했습니다만, 그렇다고 줄을 설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산노미야 바로 옆 동네이기도 하니 맛있는 시루나시 탄탄멘을 드시고 싶으시다면 추천드립니다. 피크 타임에는 어떨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평일 17시 반 즈음 기준으로는 한산했습니다. 여행 동선상 들리시기 어려우시다면 산노미야에 있는 가게도 검토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에니시가 몇 년 전부터 프랜차이즈를 시작해서 산노미야에도 있고, 오사카에도 있습니다. 오사카는 우메다에서 조금 떨어진 후쿠시마라 추천드리기는 어렵고 저도 가본 적은 없지만, 산노미야 지점의 경우 많은 음식점이 몰려있는 산노미야 지하상가에 있습니다. 직영점은 아니고 프랜차이즈이기 때문에 본점과 같을 수는 없겠습니다만 재작년? 즈음에 갔을 때는 꽤나 비슷한 맛이었습니다. 여기 지하에는 많은 관광객이 좋아하는 로컬맛집이 꽤 숨어있습니다 (지하가 꽤 넓고 길쭉한데 외지인이 많이 가는 구역과 그렇지 않은 구역이 나뉘어있습니다). 혹시라도 지하에 왔는데 가려던 가게가 휴업 중이라거나 대기열이 너무 길다면 에니시 산노미야점도 추천드립니다.
종합평가 : ★★★☆ (3.8)
상호명 : 에니시 총 본점 (ENISHI 総本店)
지역 : 효고현 고베시 (兵庫県神戸市)
위치 : https://maps.app.goo.gl/2KPmqQGJYxE5cwCx8
분위기 : 카운터 6석 + 4인 테이블 2개
방문일시: 2025년 8월 19일 (화) 17시 15분경
사용금액: 약 1,500엔/1인
제 리뷰의 점수 기준은 아래와 같습니다.
★★★★:명점 = 장시간의 웨이팅 또는 치열한 예약경쟁의 가치가 있는 집
★★★:맛집 = 단시간의 웨이팅 또는 예약의 가치가 있는 집
★★:평범 = 어딜 가나 있을법한 퀄리티
★:비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