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다잉메시지를 남기실 건가요?
선생님은 죽기 직전에 다잉메시지를 남길 수 있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 그건 왜 묻나요.
- 인터넷에서 봤는데 선생님이라면 다르게 말할 것 같아서 궁금했어요.
- 제가 자발적으로 죽는 거예요?
- 아니요. 누군가가 선생님을 칼로 찌르는 거예요.
- 안 남겨요.
- 왜요? 억울하지 않으신가요?
- 몇 분이면 끊어지는 숨 아닌가요?
그 몇 분을 왜 거따써요. 아깝게.
내가 살면서 날 살게 해 준 것들, 감사했던 사람들을 회상하기도 짧을 것 같은데.
칼에 찔린 순간과 원한이 제게 주어진 마지막 생을 소모해서 다잡아야 할 만큼 생생하지 않은데요?
시간 아까워요.
- 선생님은 외모나 재능보다 선생님의 사상이 필요한 사람들이 세상에 더 많을 것 같아요.
과연 그럴까요_ 라며 웃었다.
처음부터 이런 사람인 건 아니었다.
뉴스에 흔히 가사로 나오는 은둔이나 고립된 사람.
방을 나가지 않고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아무리 좋은 책을 읽어도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들어도 세상을 살아야 하는 이유는 찾지 못했다.
일어나지도 나가지도 않고 침대에만 누워 매일매일 삶과 죽음을 저울질하며 많은 계절을 보냈다.
머릿속에서는 매일매일 부지런히 방의 창문을 뛰어내리고 있었고, 진짜 생을 내던질 것 같아
어느 날부터 용기를 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세상을 죽어라 싫어했지만
실은 내가 싫은 거였는데 _
산에 가면 아무것도 싫지 않았다.
모든 미움과 분노가 마치 원래 없었던 것처럼
마음이 깨끗해졌다.
나를 미워할 틈도 없이 자연에 눈과 마음을 뺏겨
숨을 쉬며 한없이 걷다 보면 어느새 나도 산의 일부가 되어있었다.
물론 여전히 산을 내려오면 하룻밤의 꿈이었던 것처럼 다시 살기 싫어졌고 밖으로도 잘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죽고 싶어 질 때마다 부지런히 산에 올랐다.
나중엔 우연히 만나는 새, 다람쥐, 청설모 친구들을 위해 곡식이나 에너지 바를 미리 가방에 챙겨 넣었다. 다람쥐는 손에 있어도 용감하게 가져가곤 했다.
산속에서 햇살과 비를 맞아내며 땅을 밟는 건
다시 한번 살아볼 만한 이유라고까지도 느껴졌었다.
서늘하고 시원한 바람 속에서 숨을 쉬고 얼음 같은 계곡 물을 마시면 꼭 무릉도원에 서 있는 것 같았다.
하늘이 허락하면 어느 날은 구름 위에 있기도 했다.
산을 걸으며 지치다가도 작은 동물들에 웃음 짓는 일은
자연의 작은 격려이자 선물이었다.
올라가다 힘이 들면 편히 쉬어 가고
계곡 물에 자두를 씻어 먹었다.
피곤하면 돌에 누운 채 햇살에 나를 꾸덕꾸덕 말리기도 했다.
산의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다.
도시의 시간과는 다르게 나무를 크게 안아보기도 하고 우연히 만나는 동물들을 조용히 구경하기도 했다.
빛이 나는 대도시의 번화가보다는 고요한 산의 절을 좋아하는구나 _ 같은 취향도 조금씩 알게 되면서.
그렇게 부지런히 죽고 싶어 하면서도 부단히 살고 싶어 했기에 전국 서른 개가 넘는 산들을 올랐다.
모든 것이 화려하고 과열된 세상에서
잠시나마 동떨어진 덕분에 많은 것을 알았다.
내가 설악산을 좋아하는지 칠갑산을 좋아하는지,
시원한 계곡 물에 씻어 먹는 자두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곤줄박이가 얼마나 용맹한 작은 새인지
알 수 있었다.
산 위에서 얼마 남지 않은 마지막 식수를 나에게 건네는 것은 사랑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동화 속의 마녀처럼 하늘을 보고
날씨를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떠먹을 수 있는 물과 그렇지 않은 물,
사람이 가도 안전한 길과 그렇지 않은 길,
동물이 지나도 되는 길과 살아있는 것은
지나갈 수 없는 길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랬기 때문에 학생의 질문에 웃으며
메시지를 남기지 않을 거라고 대답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