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2002]【8】울 엄니

어떻게 사람이 종교가 없을 수가 있어?

by 짜근별

2002-05-29


이사하는거 도와주러 오신 어머니 배웅하면서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말을 더듬는 어떤 사람이 다가왔다.

의례 그런 상황에서 난 짜증을 내곤 한다.
분명 무언가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을 내밀면서 사 달라거나
혹은 그냥 때에 찌든 손을 내밀어 동정을 구하는 경우이다.

친구들이랑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껌 하나만 사 달라는 어르신들의
세월의 무게에 찌든 손도 손사래를 치며 거절하기 일쑤다.

그런데
매우 더듬어서 잘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이었지만
그 사람은 자신을 '전도사'라고 소개하고
손에는 '기도월보'라는 기독교 잡지 몇 권을 들고 있었고
그 중 한 권을 내밀면서 그냥 읽어보라는 것도 아니라
하나 사 달라고 조른다.

그 날도 난 마음의 색안경을 끼고
짜증 섞인 표정으로 그냥 묵묵부답으로 앉아서 지켜보기만 했다.

독실한 불교 신자이신 우리 어머니.
집안의 대소사시에는 항상 지성으로 절에서 불공을 들이시는 모습을
평소 보아 왔기에 비록 정중한 태도였지만 거절하실 줄 알았다.

그러나
주섬주섬 지갑을 꺼내시며
그 사람이 말하던 책값이라는 2000원을 챙겨 주시는 거였다.

그 사람이 가자 나를 보며 나즈막히 말씀하신다.

"그냥 보시(布施)라고 생각해. 보시라고..."

그러면서 나한테도 한 말씀하신다.

"너 성당 나가고 싶은 생각 없냐. 이 엄만 그래도 상관없는데...."

라고 하신다.

순간 알 수 없는 전율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그런 기분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평소 우리 어머니 마음씨 착하고 남에게 친절하며
솔선수범에 일가견이 있는 분일 줄 알았지만
그토록 어머니가 커 보인 적은 없었다.
반대로 내가 그렇게 작아 보인 적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 말 무시하기 일수고,
며칠전 자취집 아주머니에게 그랬듯이 말 한마디로
사람 마음 긁어 놓는데 선수인 나...
이 순간 남의 마음에 상처를 줬던 말 한마디 한마디가 파노라마처럼 주욱 머리속에 펼쳐지면서 떠올랐다. 신기하고 놀라웠다.
분명 마음은 그게 아닌데 표현의 방법이 정말 한참이나 잘못 되었다는걸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깨달은 건 그때가 처음이지 아닌가 싶다.

어머니의 그 자애의 근원을 생각해 본다.

울 엄니.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 사랑'의 정신이 있는 것 같다.
세상사에 찌들고 세월에 할퀴고 마음까지 상해도
어려서부터 옆에서 지켜본 우리 어머니, 이 점 하나만은 정말 한결같다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거 다 닮았어도 우리 어머니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점이 있다면
'사람 사랑'과 '부지런함'이다.



종교는 참 민감한 주제인데 정말 신기한 것은 우리나라에 그나마 종교 갈등이 다른 나라만큼 심하지 않다는 것이다. 내 외가는 대대로 불교 집안이고 내 이름도 고향 앞산 중턱에 있던 절에 다녀오신 할머니가 스님에게서 받아온 이름이다. 외가나 본가 모두 불교적 색채가 강하지만 난 어려서부터 불교에 그렇게 끌리지 않았다. 이렇게 된 데에는 어렸을 때부터 절에 방문할 때마다 봤던 불교 예술에 도무지 정이 가지 않았던 면이 컸던 것 같다. 사천왕상이나 군집으로 그려진 탱화를 많이 무서워했었다. 교회도 꽤 오랫동안 발을 담궈 봤지만 그다지 깨달음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은 딱히 따르는 종교가 없다. 큰집이나 이모 중 한 분은 또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시지만 집안에 종교 때문에 분란이 일어난 적은 한 번도 없다. 모두 상호 존중하면서 잘 지내신다.


아버지는 우리들에게 어머니를 항상 '작은 보살'이라고 말씀하셨다. 곱디고운 그 성정을 어려서부터 지켜보고 자라왔기 때문에 그나마 내 성격이 이 정도인 것 같다. 하루가 다르게 기력이 쇠하시는 어머님을 보는 마음이 편치 않은데 해외에 사는 나는 더욱 잘해 드리지 못하니 그 마음이 너무나 편치 않다. 나 같이 장성한 사람들의 이민 생활의 가장 큰 고민이 부모님에 대한 걱정인데 뾰족한 답이 없으니 답답할 뿐이다. 부모님 돌아가시면 이 불효를 어찌 감당할 수 있을까?



내가 유학 중에 겪었던 잊혀지지 않는 한 장면이 있다. 대학원 때 석사과정이었던 친하게 지내던 '아밋'이라는 인도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인도 최북단 우리들에게 익숙한 카슈미르지역 근처 '펀자브'지역 출신이었는데 자기 지역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서 자동차 번호판도 나중에 'Punjab'라고 지어서 달고 다녔다 (미국에서는 돈을 더 내면 자기가 원하는 자동차 번호판에 원하는 문구를 살 수 있다). 이 펀자브 지역에서 가장 보편적인 종교는 '시크교'이다. 이슬람교와 힌두교의 영향을 많이 받아 창시된 종교로 남자들이 머리에 터번을 두르고 다니는 것이 특징인데, 뉴욕 배경 영화 'Learning to Drive(인생면허시험)'의 주인공이 바로 이 시크교도이다.


그 친구와 어느 날 대화를 하다가 종교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 친구가 물었다.


아밋: 한국은 종교가 어떻게 돼?

: 종교가 없는 사람(무교)이 과반수이고, 기독교와 불교가 거의 비슷한 것 같아.

아밋: 아니 어떻게 사람이 종교가 없을 수가 있어?

: 없을 수도 있지, 종교가 꼭 있어야 하니?

아밋: 그럼, 사람은 종교를 꼭 가져야 해.


그 당시에는 종교의 중요성과 필연성에 대한 아밋을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한참 시간이 흐른 후 서강대학교 유로메나연구소 박현도 교수님이 하신 말 때문에 어느 정도 이해를 했던 것 같다. 그 분이 말씀하시기를 중동인들에게 종교는 실존하는 일상이자 정체성의 핵심이기 때문에 종교가 곧 인간 자체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 핵심인데, 사람이 종교가 없다는 것은 곧 인간성에 대한 부정과 거의 동일한 의미라는 뜻의 말씀을 하셨다. 시크교도 이슬람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그 정체성이 녹아 들어가 있는 것이다. 이는 힌두교를 믿는 대다수의 인도인들에게도 거의 똑같이 적용된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무교라고 하지만 개개인들의 믿음을 따지고 보면 유교와 전통 무속신앙 등이 혼재된 종교적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중동인들이 종교를 물어볼 때는 특정 종교가 없더라도 무교라고 하지 말고 신을 믿는다거나 따르는 신이 있다고 말해야 관계의 곤란을 겪지 않는다고 하셨다.


세상에는 참 사람도 많고 그 수만큼 생각도 많다는 것을 겪어봐야 느끼는 것 같다. 역시나 어떤 것에 정답은 없다. 다만 사실과 그것을 대하는 나 자신의 태도만 있을 뿐.


(계속)


*이 글을 읽기 전에 첫번째 '프롤로그'를 읽으세요.


[이별後愛] - 눈부시도록 찬란했던 하지만 처절하게 가슴시렸던 첫사랑과의 만남과 이별

[응답하라2002] - 간절했던 꿈을 향한 유학도전기와 X세대 친구들의 20대시절 고민과 만나는 추억 여행

[삶, 사람, 사랑] 유학, 이민 생활 동안 떠오르던 단상과 고민들 그 일상 나누기

작가의 이전글|삶, 사람, 사랑|[8]조금은 다른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