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의 결혼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든다.
나와 내 아내에게 결혼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동생이 결혼을 한단다.
10월달에...
그래서 야외촬영 갔다 왔단다.
신혼집도 마련했고...
그리고 청첩장을 만들고 예식장을 잡고 가족들과 친구들, 일가 친척들을 다 초대해서 성대하게 결혼식이란걸 할 거다.
난 사실 아무 생각이, 아무 감흥이 없다.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라도 응당 해 주어야 하건만 그냥 무덤덤하기까지 하다.
그러니 새치기라도 한냥 무안해하고 미안해하는 동생을 타박하고 싶은 마음은 더더욱 없다.
인생이란 항상 순리대로만 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일찍 깨달았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바로 앞을 걱정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현재의 일상에 무던히 치였나보다.
지금의 아내를 택하게 된 것.
그것은 아마 현재의 내 특수성 때문에 결혼식이라는 형식적인 과정을 생략할 수 밖에 없는 내 처지를 가장 잘 이해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범상치 않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또 그 아내, 나에게 결혼식이란 과정을 생략한 것에 대해 불만을 이야기 하지 않았다.
섭섭한게 어디 그거 하나겠냐 만은 너무나 고마울 따름이다.
그런 아내가 동생 결혼 소식을 듣자 마음이 많이 흔들렸었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결혼식 사진 하나, 다정하게 찍은 커플사진 한 장 집에 걸려 있지 않은데 맏며느리로서의 당당한 자리매김 한번 하지 않고 동생이 먼저 어른들에게 인사한다는 것이 내심 섭섭했나 보다. 인지상정이다.
그동안 여자로서라기 보다는 바로 그 범상치 않은 인물로만 여겨왔던 내가 얼마나 야속했을까....
그리고 깨달았다.
내 아내도 한 명의 여자라는 것을.
결혼에 대한 아무런 철학도 의미도 처음부터 부여하지 않은 나에게 현재의 결혼 생활은 정말 마음 잘 맞는 좋은 짝과 함께 알콩달콩 잘 사는 거 같은 느낌이랄까 뭐 그렇다.
어제밤 늦게 집에 가서 거실에 켜진 불을 보며
이젠 쓸쓸한 어둠만이 나를 감싸고 정적만이 가득하던 집에 들어가지 않아도,
무겁게 철렁거리는 열쇠 꾸러미를 덤덤하게 꺼내서 내가 문을 열지 않아도,
인간미 없는 텔레비젼을 보며 혼자 나누는 대화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쁜 것인지를 새삼 되새겨 봤다.
연구실에서 늦게 귀가하면서 가볍게 문을 두드리자 어김없이 아내는 문을 활짝 열며 으레 그 발랄한 웃음을 내게 던지며 나를 반긴다. 난 그냥 가볍게 미소로 화답할 뿐이지만 그냥 하루의 피로를 날려 버린다.
미뤄두었던 빨래통을 밤늦게 챙겨서 세탁실에 가는 것 조차도
팔짱을 끼며 남편과 데이트 간다며 신나하는 아내를
왜 내가 더 많이 사랑해주지 못하는지 나를 타박해 본다.
문득 내 삶은 이제 예전과 조금은 다른 이야기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타국에서 독신으로 유학하는 대학원생들의 가장 큰 고민 중의 하나가 평생의 반려자를 찾는 일이다. 기나긴 여름방학 때 한국에 방문해서 소개팅이나 선도 보고 하지만 결국은 장거리 연애를 해야해서 원하는 사람을 찾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대학원생때 가끔씩 기적적으로 만난지 2주만에 결혼에 성공하고 같이 돌아오는 사람도 봤지만, 대부분은 그렇게 성공적인 연애를 하지는 못한다.
나는 다행히 유학오기 전에 아내를 만나 결혼을 약속하고 유학을 왔기 때문에 이런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됐다. 우리는 1년이 넘는 동안 장거리 연애를 했고, 내가 없이 한국에서 양가 상견례까지 했다. 유학생 배우자 비자를 받아야 했기에 결혼식도 없이 혼인신고도 나 없이 하고, 내가 유학온지 1년이 넘었을 때 아내는 잠시 방문하러 온 내 막내 동생과 함께 나만 보고 미국으로 왔다. 그렇게 우리의 신혼은 건축된 지 몇십 년도 넘은 바퀴벌레가 심심치않게 출몰하던 그 좁은 대학원생용 원룸 기숙사에서 시작되었다.
사회생활이 길지 않았던 우리들이기에 모아놓은 돈도 없었고 양가에서 그 어떤 지원도 받지 않았다. 대학원생으로서 받는 생활비는 언제나 빠듯했고 아내는 생활비를 아끼려고 이런저런 할인품들을 여기저기 찾아다니면서 생활을 했다. 이런 와중에 내 바로 아랫 동생이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학기 중이었고 넉넉지 않은 상황이라 결혼식 때문에 한국을 방문하는 것은 언감생심. 그래서 우리는 동생 결혼식에 참석할 수 없었다. 이런 이유로 유학기간동안 있었던 나와 내 아내의 동생들의 결혼식 사진에는 우리 내외의 얼굴이 없다.
아내가 결혼식을 중시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손 아랫동생의 결혼 소식을 듣고 꽤나 마음 신난해 했었다. 그래도 명색이 맏며느리인데 양가 친척에게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는 결혼식을 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을 것이다. 역시 인간의 마음에 아쉬움이라는 불청객이 들어오면 평정심이 나가 버린다.
이런 아쉬움을 뒤로하고 우리도 그 다음 해에 한국에 나가서 결혼식을 치뤘다. 그나마 평소 허례허식을 극도로 싫어했었기에 처가에서 보내주신 예단비도 다 돌려보내고 부모님이 원하시는 최소한의 형식만 갖춘 체 한 결혼식이었다. 그 이후 미국에서 여기저기 이사를 아홉번이나 다니고 이런저런 고비도 많이 있었지만, 지금까지 큰 불평없이 아무것도 없던 나를 믿어주고 잘 따라와준 아내가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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