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무뎌간다
진짜 힘든 하루다...
아니 안 힘들 수도 있었는데 면접을 잘 못 봐서 그런거 같다.
집에 돌아오는데 진정이 안 되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한참을 앉아 있었다.
이 자괴감....
그때 화장실만 안 갔어도 좀 다르지 않았을까?...내가 왜 그랬지..
좋은 경험했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잘 안된다.
오늘 옷이 너무 맘에 안 들었다.
치마는 커서 돌아가지 블라우스도 카라가 자꾸 말썽이어서 더 거추장스러웠다.
그 옷 정리하느라 화장실 갔다 온건데 내 차례가 지나가다니..
정말 황당했다.
방금 다음카페에 들어갔더니 어제 본 두명이 합격통보를 받았댄다.
지금 내 기분은 증말 뭐 같다...
피곤하고 덥고 잠이나 자야겠다...
승희는 취준생이었고 여기저기 무던히 면접을 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IMF의 여파가 남아있던 2000년대 초는 갓 대학을 졸업하는 사회초년생들에게 취업 한파가 무엇인지, 사회의 냉혹함이 무엇인지 뼈져리게 느끼는 시기였다. 좋지못한 집안 형편 때문이었는지 일자리를 정말 간절히 원했던 그녀는 계속되는 좌절에 많이 당혹스러워했고 정서적으로 많이 무너지고 있었다. 취업의 문은 그녀에게 쉽게 열리지 않았고, 나는 이런 그녀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다.
남자친구라면 해줘야 하는 정서적 지원도 있으련만 MBTI 극 'T'인 난 기본적으로 '공감'이라는 정서를 탑재하고 있지 못했다. 그녀의 계속된 실패가 그녀에게 얼마나 큰 고통이었는지 공감하지 못했고, 이때는 나도 내 꿈을 잡으려고 허우적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나 자신도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서로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만나고 있었으니 그녀가 우리 관계를 많이 힘들어하기 시작했다.
언젠가 승희가 나에게 말했다.
"난 이 다음에 다시 태어난다면 남자로 태어나고 싶어. 여자로 살아가는 건 너무나 힘들어."
나는 나중에 이 말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
이젠 무뎌간다.
옆에 있는게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일까?
많이 무뎌졌다.
그런만큼 조심해야지
서로가 서로에게
가끔씩 실수를 많이한다.
특히 '말'로...
어렸을때부터 내 말의 위험함에 대해 깨닫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러한 자각이 가끔씩 머리에서 사라져버려
하릴없이 나를 슬픔의 나락으로 몰아버릴때가 있다.
군대가 나에게 많은 삶의 지식을 주기도 했지만
나에게 끼친 가장 나쁜 영향이
내 말에 '욕'을 심어줬다는 점이다.
"말 좀 예쁘게 했으면 좋겠어"
결혼 적령기 여자들이 이상형으로 꼽는 남자들에게 가장 많이 요구하는 것이다. 말을 예쁘게 한다는 것은 참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특히 남자가 여자들의 마음에 들게 말을 이쁘게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유인원적 원시 습성이 남아있는 거친 수컷들의 서열 집단 속에서 예쁜 말을 하는 감수성을 가졌다는 것은 어쩌면 생존경쟁에서 뒤쳐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을 예쁘게 하는 남자들의 특징은 아버지나 어머니가 그런 사람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말을 예쁘게 한다는 것은 그 집안이 화목하다는 것의 좋은 증거이다. 어렸을 적 난 화가 많고 성격이 급한 아버지의 성격을 많이 싫어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닫고 보니 싫어하던 아버지 모습이 내 것이 되어 있었다. 특히 구타와 부조리가 남아있었던 군복무 당시의 상황이 이런 내 말버릇에 많은 악영향을 끼쳤다. 나는 말을 다정다감하게 하지 못했고 마음대로 일이 되지 않으면 버럭 화를 냈다. 잘못된 것인줄 알면서도 무의식 중에 저지르고 후회와 사과하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런 잘못된 행동은 사이가 가까울수록 더 심해지고 자연스러워지기 마련이다.
우리의 위기는 여기서 시작되었고, '조심하자, 조심하자' 라는 자기 암시의 반복에도 결국 타고난 천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악화되어 갔다.
(계속)
*이 글을 읽기 전에 첫번째 '프롤로그'를 읽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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