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대학교 신입생때부터 빈민지역에서 공부방 교사를 했었더랬다.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이 좋았었지.
그러다가 철거싸움을 보았다.
정말 무서웠다.
철거깡패들이 웃통을 벗고 날카로운 돌로 자해를 하기도하고.
주민들에게 주먹 다짐을 거침없이 해대는 것을 보았다.
삶의 터전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주민들은 조직(전철연, 서철연)을 만들었고,
철거 싸움용 구조물인 '골리앗'을 만들었다.
골리앗 위에서 내려다보는 노란색 가로등이 점점이 흩어져 있던 달동네의 밤풍경은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아름다웠다.
그들이 집을 헐리고 살기위해 쳐놓은 천막에서 같이 지내기했고.
철거싸움으로 아이들의 티없이 맑던 얼굴에도 그늘이 지기 시작했다.
어느덧 소주병에 신나와 휘발유를 붓고 있는 나를 발견했지.
그 때 내 곁에는 삶을 이야기하고 사회를 비판하고 소주잔을 기울이던 동지들이 있었고.
그들과 함께 있으면 언제나 가슴이 가득함을 느꼈다.
모순된 사회를 향해 거침없이 주먹을 내질러댔었다.
삶이란 이런거다라는 나만의 결론을 내리기도 했었고.
주민조직 지도자들이 한없이 존경스러워 보였었지.
그러다가....
조직을 배반하고 자본의 논리 앞에 굴복하고 조직을 이탈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뭔가 인생에 대한 회의에 빠지게 되었다.
삶의 가치, 인간의 가치를 한없이 부정하게 되었다.
갑자기 내 자신의 삶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너무도 이기적으로 되어버린 나.
동지들을 지역운동의 한가운데 내팽겨친 채 무책임하게 군대를 갔다.
군대라는 도피처에 도망자처럼 사라져 버린 나...
내 나이 스물두 살 적에...
연애는 끊임없이 상대방을 알아가는 노력이다. 상대방의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결국은 나를 내어주고 사랑하는 이를 내 안에 담아내는 일이다. 서로가 상대방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의 모양이 다르거나 혹은 너무 작다면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다) 어쩔 수 없이 관계가 힘들어진다. 때에 따라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하는데 그 요구되는 노력이 임계치를 넘어가면 헤어짐이 기다린다. 연애초기 연인들의 끝모를 대화는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는 탐험의 시간이다.
나는 내가 누군지 그녀가 알아주길 바랐고, 나 또한 그녀의 모든 것이 알고 싶었다. 의미없이 던지는 그 무수한 말들로 알아가는 것도 좋았지만, 어쩔땐 나를 말로는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는데, 이 때는 글의 힘을 빌렸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했었는지 무용담처럼 말하기보다 담담하게 글로 적어 그녀에게 보냈다.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삶의 궤적을 그리며 나에게 왔는지 볼 수 있다면 보다 더 나를 잘 이해해 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마천루같은 아파트가 빽빽하게 서 있어서 과거의 그것을 상상하기가 어렵지만, 대학생때 지겹도록 드나들었던 왕십리 금호지구나 관악구 봉천동 일대는 자본과 생존이 첨예하게 부딛치던 말 그대로 전장터였다. 과거 서울이라는 화려한 도시의 이면에는 무허가촌과 재개발의 어두운 그림자가 있었다. 법적으로 따지고 보면 철거민들이 불법적으로 재개발을 방해하고 있었던 것은 맞지만, 재개발에 얽힌 철거민의 생존권이라는 것은 그렇게 단순하게 자본의 논리가 우선인 기득권이 만든 사법적 잣대를 가져다 재단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문제가 있다. 나는 단순히 빈민지역 공부방에서 봉사하고 싶다는 순진한 생각으로 발을 디딘 그 전쟁터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정신차려보니 철거운동을 하고 있었다.
고백컨데, 나는 겁쟁이였다. 특별한 철학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정치적으로 사회 개혁을 이루겠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이때 가끔씩 봤던 한 선배는 현역 국회의원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철거운동에 대한 정당성은 공유하지만 능력도 모자랐고 무엇보다 고학년이 되니 '먹고사니즘'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이 글에 나와있는 조직을 배반한 철거민들에 대한 회의는 어쩌면 그냥 핑계일 뿐이다. 그들의 고뇌와 삶의 무게를 나이 먹고 두아이를 가진 가장이 되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한여름 작렬하는 태양 밑에서 옆사람 열기를 고스란히 느끼며 어깨동무하고, 한겨울 차디찬 삭풍이 철거민용 텐트를 사정없이 때리던 혹한을 견뎌내야 했던 연대와 투쟁의 삶이 너무나 버거웠던 스물두 살의 나는, 그렇게 해서 대학 3학년을 마치고 비교적 늦게 군대에 가게 됐다.
분명한 기준이 있으면 그리 어렵지 않다.
비록 나중에 후회할지라도....
선택의 순간에 망설임이 덜한 것 같다.
하지만 분명한 기준이 없다면....
사람은 객관이란 단어보다는 주관이란 단어에 의존하게 된다.
부디...
신이시여...
제게
주관에 흔들리지 않는 힘을 주소서..
내 마음 깊은 곳에 연애 초반에 있는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거야'라는 의심과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정말 살아가는데 확실한 기준이 있다면
훨씬 살아나가는게 수월할거에요...
어제밤엔 정말 만감이 교차되면서 뭐라 말할 수 없는 묘한 포화상태였는데....
이래서 아침이 좋아요.
다시 시작하게 해 주는 힘이 있는 거 같아서.
주관에 흔들리지 않게 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
이런 상황에서 난 이런 기도를 하고 싶어요.
'주여, 주관이든 객관이든 맞는 선택을 하게 해 주소서.
부디 선택 할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문득 여행이 가고 싶다....
기도의 힘이 컸는지 시간이 지난 후 서로가 일상에 지쳐 갈 때 쯤 우리는 같이 여행을 갔다.
그것도 전혀 의도치 않게 해외로...
(계속)
*이 글을 읽기 전에 첫번째 '프롤로그'를 읽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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