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대 I - 전조(前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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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가을 어느 날
며칠 전 그녀가 전화기 너머로 무엇인가를 암시했다.
내 마음 둘 곳 없어 헛헛한 마음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시간만 그냥 흘러갔다.
문득 어젯밤부터 바다가 보고 싶어 졌다.
삶이 힘겨워 눌려버린 마음 주체할 수 없으면
왠지 시야를 확 트여 마음을 던져 버릴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찾고 싶어진다.
바다는 이런 내 욕망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광활한 여백의 품을 간직한 곳이다.
아침 일찍 남주 녀석이 찾아와 수선을 떤다 (남주, 군대에서 만난 인연이 같은 대학에 다녀서 계속 인연이 이어진 친구. 미국 생활 초반도 자주 연락했었지만, 언젠가부터 연락이 뚝 끊어져 버렸다. 하지만 지금 찾아서 연락하고 만나도 반갑게 맞아줄 친구라는데 의심은 없다. 그러기에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너무 크다).
'야 스킨 좀 빌려주라'
'무슨 일 있냐?'
'어.. 오늘 내 여동생 결혼식이다.'
'엥... 미리 언질이라도 주지... 그래 결혼식 어디서 하는데?'
'으응... 인천....'
'엥... 인천.. 나 오늘 인천 갈라고 했는데...'
'그래?! 검 같이 갈래.'
'으음........ 그럴까.......'
우연의 일치 치고는 무언가 이끄는 힘이 있는 것 같다.
바다가 무척이나 나를 보고 싶어하는 듯하다....
예정보다 일찍 집을 나선다.
일요일의 지하철이라 그런지 한산하기만 하다.
짜식...
양복 여친이 골라줬다고 자랑이다....
한국에선 안 살 거란다. 의당 또 그 소리다..
'나를 길러준 사회엔 감사하지만 나를 길러준 국가에 대해서는 조금도 감사하는 마음이 없어. 난 기회가 된다면 언제라도 이 나라를 버리고 떠날 수 있다.'
'그래도 외국에 나가면 다 애국자가 된다던데..?'
'그럴지도 모르지.. 그리움에서 말이야... 하지만 난 아냐. 난 철저히 이 나라를 경시해...
휴~ 지금 이 꼴을 보란 말이야.. 아무것도 없이 허덕이면서 나라꼴이 말이 아니잖아..
2~30년 후의 우리나라 꼴을 생각하면 하루라도 빨리 나가고 싶어...'
그 말에 그냥 고개를 끄덕이던 나...
(이때는 물랐다, 그 얘의 꿈이 내 일상이 되고, 그의 일상이 내 꿈이 될 줄은)
난 우리나라 결혼식 문화가 정말 맘에 안 든다.
한바탕 신장개업하는 집의 시끌벅적함이 휩쓸고 지나가는 이벤트일 뿐,,,
결혼에 담긴 그 진정한 의미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한탕하는 장사와 같다는 느낌이랄까...
모 그래도 신랑 신부 만면에 웃음이 가득하고
여기저기 친지, 친구, 동료들의 축하의 말들이 넘쳐나는 축복의 장인 것만은 확실한 거 같다.
남주 녀석 바다 같이 가줄까 한다.
하지만 난 굳이 혼자 가겠다고 부득부득 우겨 서울로 돌려보내고
반대 방향으로 가는 전철에 몸을 싣는다....
인천역에 내려선다.
휑하니 이방인 가운데 던져진 느낌.
주위를 둘러봐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그냥 무언가가 그리워 왔는데
너무나 그리워 왔는데
그리움의 대상은 여기에 없다.
어떻게 가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 하는 새에 표지판 하나가 나의 시선을 잡는다
'월미도 2km ->'
'으음... 2km...조금만 걸어가면 되겠군...'
하지만... 이런 생각은 정말 큰 오판이었다.
먼지 자욱하고 하늘을 찌를 듯 치솟아 있는 정말 멋대가리라고 하나도 없는 일제강점기 지어진 듯한 공장건물 숲을 헤치며 걸어가는 기분이란...
말로는 그 재미없음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더군다나 꺾이지 않는 열기를 지닌 한낮의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발산하지 못하고 두터운 가을 옷 속에 갇혀있는 열기의 아우성들이 땀을 여기 시켜 흥건히 젖은 몸은 불쾌하기 짝이 없다.
나 보란 듯이 날 놀리면서 지나가는 차들이며 버스며, 공장지대임을 시위라도 하듯 지나쳐가는 보기만 해도 중압감을 느끼게하는 지저분한 대형 트레일러들...
짜증이 극에 달하면서 한 시간을 그렇게 터벅터벅 아무 생각 없이 걸어갔다.
주위를 둘러봐도 끝을 알 수 없게 이어진 길다란 담벼락과 메케한 정체를 알 수 없이 희뿌연 스모그들만 나를 감싸고 있을 뿐 일요일의 공장지대에서 인적을 찾기란 정말 힘든 일이었다.
그렇게 얼마를 갔을까....
정신이 아득하여 고개를 드는 순간
갈매기 한마리가 저~~~~~ 끝에서 가녀린 날개를 허공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시야가 넓어지자 갈매기들이 하나 둘 늘어나더니
어느새 하늘에 갈매기떼들이 무언가를 찾아 휘젓고 다니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면서 코끝을 간지럽히는 비린 바다내음이 차츰차츰 몰려왔다.
월미도의 그 꼴사나운 놀이시설이며 인파의 홍수를 뒤로하고 나는 앞으로 오직 바다의 수평선을 목표 삼아 나아갔다.
순간...
골목길 사이 저 끝으로 햇살이 반사되어 눈에 작렬하는 드넓은 바다의 자락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바다 옆 문화의 거리는 일요일의 한적함을 즐기려는 가족, 연인, 친구들로 가득 차 있었다.
왠지 알 수 없는 외로움.
가슴 깊이 파고드는 외로움.
정말 밑도 끝도 없이 파고드는 외로움과 함께
바다가 옆 바위에 몸을 앉혔다.
저 멀리 영종도의 국제공항을 향해 얼마나 날아왔는지 모를 지친 기체를 서서히 내리는 비행기의 동체가 눈에 들어왔다.
멀리 나지막이 펼쳐져 있는 구름의 장막도 눈을 뜨기 어려울 정도로 작렬하는 햇살의 따가움으로
잘 보지 못했다.
인천의 바다는 생각했던 것만큼 트여있지 못했다.
인천을 둘러싸고 있는 섬들이 시야의 퍼짐을 수렴하여 드넓게 마음을 열지 못하게 했으며
예의 어느 유흥지에나 가면 들려오는 싸구려 유행가의 가락이 마음을 평화로 이끌지 못하게 했다.
잠시의 망설임과 함께 난 몸을 일으켰다.
잘 다듬어진 인위의 장소가 아니라 거친 바다가 보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왔던 길과 반대로 계속 걸었다.
정말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이었다.
인적은 거의 없었고 군 시설물임을 알리는 표지판만이 오랜 풍파에 노화되어 나이먹음을 자랑이나 하듯
페인트칠이 군데군데 벗겨진 채 지나가는 사람의 벗이 되어줄 뿐인 길을 계속 걸어갔다.
그렇게 또 얼마나 걸었을까.....
저 멀리 길 끝으로 차들이 분주하게 달려가는 길이 나타났다.
원했던 자연의 바다는 주위 시설물의 벽에 가려 난 아무것도 충족시킬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끝 갈림길에 섰을 때..... 갑자기 허탈함이 밀려왔다.
아까 왔던 길로 다시 돌아와 버린 것이다.
시간의 흐름을 가늠하기 위해 시계를 흘깃 보고
돌아가야 할 시간임을 깨닫고는 주저 없이 왔던 길을 되짚어갔다.
인천역...
어스름이 깔린 인천역은
오랜 여정을 끝내고 각자의 집으로 되돌아가려는 사람들의 분주함만이 가득했다.
난 아직도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에
전철에 몸을 실을 수 없길래
다시 한번 두리번거렸다.
'<- 화교 마을 200m'
으음...
이국적으로 서있는 화교들이 모여사는 곳임을 나타내는 꽤 높이 솟아 있는 문 모양의 시설물이 눈에 들어왔다.
무작정 그곳으로 발을 옮겼다.
마을의 끝 오르막길...
계단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다.
동네 노인 몇몇이 나무가 드리워준 그늘밑 평상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저 위쪽으로 사람들이 한가로이 다닌다.
시민공원(나중에 인천 자유공원인 것을 알았다)인 듯했다.
뭔지 모를 설렘임에 발이 저절로 오르막길 계단을 오르고 있다.
그리고 잠시 후
난
드넓은 하늘아래 펼쳐진
인천항의 돌하나 파도 한 너울이 모두 다 보이는 자리에 서 있었다.
가슴을 열어 기지개를 켜고
노을에 선홍색으로 벌겋게 물들어가는 펼침의 공간에서
한없는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코 끝 바다 내음에는 가을도 묻어 있었다.
그윽하고 깨끗한 바다는 아니었지만
바다의 풍만함을 담고
난 다시
서울로 가는 전철에 몸을 실었다.
초가을 계절을 즐기는 혼자만의 가을여행은 그렇게 끝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끝은 끝이 아니듯 그렇게 새로운 시작이 서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무언가 맺지 못한 매듭처럼 나는 그 매듭을 향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지하철 4호선 쌍문역
내 젊음이 그녀와 녹아 있는 지하철 역이다.
무거운 마음을 꾹꾹 눌러 어렵게 휴대전화를 꺼내 다이얼을 돌렸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그녀는 그곳에 없었다.
아니 어쩌면 예상했던 바다.
사실 뚜렷한 목적이 있어서 그녀에게 전화를 했던 건 아니다.
단지 바다에서 느꼈던 그 끝을 알 수 없는 그리움을 채우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하지만 풀지 못할 매듭처럼 가슴 속에 꽁꽁 묶여 있는 마음을 풀지 않으면 난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디야?'
'학교 앞이야.'
'나 지금... 쌍문역인데...'
'으음 그래..? 나 지금 아는 언니랑 얘기 중이거든 10분만 기다려줘. 다시 전화할게..'
무거운 10분이 흘렀다.
그리고 다시 온 전화.
'기다릴 거야?'
'으음... (조금 망설이다가) 곧 올 수 있어?.. 기다리께.'
'그래.. 그럼 갈께.. 기다려..'
전화를 끊자 기다림이 시작됐다.
머릿속에서 알 수 없는 무언의 메아리가 소용돌이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심리적 공황상태가 이어져 갔다.
심리적 마지노선까지 마음이 밀리면서 그냥 무조건 보고 싶어 졌다.
성신여대 입구까지 오라는 그녀의 말에 전철에 몸을 실었다.
이틀 만에 마주친 그녀의 모습을 고개를 기울여 쳐다보았다. 알 수 없는 싸늘함... 찾지 못한 심리적 불안정....
그녀는 울었다.... 가슴속 응어리를 조금씩 조금씩 밀어내는 애한과 풀림의 눈물이 그녀의 가녀린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젖은 눈망울... 원망과 한스러움... 한의 결정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녀 앞에 앉아서 말을 들어주는 것뿐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런 내가 미웠다...
성신여대 입구역에서 헤어진 후 무작정 남쪽으로 걸었다.
여기가 어딜까...
시계에 멍한 시선을 던지니 어느덧 새벽 1시를 힘겹게 넘어가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표지판을 본다.
<-을지 X가 || 종로Y가->
갈림길에서 머리에 떠오르는 복잡한 생각을 억누르려 또 무작정 걸었다.
지친 다리를 힘겹게 옮겼지만 그래도 계속 걸어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새벽의 한가운데를 향해 달리는 서울의 밤.
유흥가의 흥청거림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앞으로 가야겠다는 욕망과 중첩되어 주위에 시선을 던지니 바쁘게 살아가는 군상이 주위를 채우고 있었다.
휴~ X빨~
'난 모하고 있는 거야... 다들 열심히 살아가잖아... 여기서 이렇게 주저앉을 순 없잖아... ㅡ.ㅜ'
'조금만 더 가자.. 조금만...'
'어.. 여긴...'
숙대입구역이었다...
제자리를 맴도는 시지푸스의 힘겨운 걸음처럼 어렵게 정상에 달았다가 굴러 떨어져 처음의 자리로 돌아온 듯한 느낌이었다. 우리의 인연이 시작된, 내 떨리던 고백의 여운이 남아 있는 곳.
무한이 도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난 그렇게 끝을 돌아 관계의 처음으로 돌아온 것이다.
갑자기 피로가 몰려왔다.
무작정 손을 들어 택시를 탔다...
집으로 향하는 길....
집에 발걸음이 머물렀을 때 시계의 작은 바늘은 2시를 갓 넘어 느린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고 큰바늘은 잰걸음을 재촉하여 15분을 지나고 있었다.
통화키를 눌렀다.....
'여보세요'...
....
...
(침묵)...........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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