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後愛]►12◄ 비수

상실의 시대 II

by 짜근별

2002년 1월 어느날

화려한 네온사인 흥청거림이 무르익어가던 저녁 서울 강북의 어느 대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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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진눈깨비로 축축히 젖은 길거리를 헤메다가

우리는 어느 건물 이층의 카페에 들어섰다.

우리 둘의 얼굴에는 이미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카페에 마주 보고 앉아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하염없이 울었다...

내가 나직막히 하지만 보채듯이 물었다..


"도대체 왜, 왜 헤어지고 싶은데?"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고 내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오빠와의 미래가 까마득해, 미안해."


그 비수가 날아와 내 가슴에 꽂혔다.



2002.01.29 [개인 일기]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다.

몬가 석연치 않은 느낌을 간직한채로

조바심이 엄습해 온다.
내 가장 큰 약점...
조바심...

결국 몰입되어 암것두 못한체로 말이다.
인생 최악의 여행으로 기록될 것 같다.

2002년 1월 22일...

그녀는 그렇게 이별을 고했다.

이 이별의 결정적 계기는 일본 여행이었다.


그녀의 이모가 일본에 살고 있었다. 2002년 초 겨울 그녀의 이모가 그녀를 일본으로 초대했다. 그녀가 나에게 일본 초대를 이야기했을 때 문득 내 일본 친구들이 생각났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나도 일본 친구도 볼 겸 그녀의 일본 여행에 동행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그녀는 같이 가면 너무 좋겠다고 했다.


이 일본 친구는 '[응답하라 2002]【3】'편에 나오는 대학 동아리 친구 대성이 때문에 사귀게 된 친구였다. 매년 한국 UNESCO에서 문화 교류를 주제로 한 국제 청년 캠프를 개최하는데 (지금도 있고 그 당시는 International Youth Camp라고 했다) 이 친구가 참가 신청을 해서 선발되었다. 2001년 경남 우포 생태늪에서 행사를 진행했는데, 이 친구가 거기서 만난 일본 여자얘한테 반해서 배웅간다고 부산까지 따라가고, 참석도 하지 않은 나한테 탄자니아, 태국, 일본 친구들의 서울 안내를 떠넘기듯 맡겼었는데 그 이후로도 '코지'라는 일본친구와 계속 교류를 하면서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이때 만난 태국 친구가 Piak이고 내 백문백답에 있듯이 그 친구가 Fulbright 장학생으로 Colombia 대학원 다닐때 뉴욕에서 만나서 같이 놀았다). 그래서 코지에게 연락했더니 자기 집에서 자면 된다고 흔쾌히 꼭 오라고 해서 승희랑 같이 일본 여행을 가게 된 것이었다.


이 여행은 시작부터 삐걱댔다. 당시에는 일본을 방문하려면 단기 관광비자가 필요했다. 비자를 받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일본 대사관에 방문해야 하고 몇 가지 서류를 준비해야 하는 조금 귀찮은 일이었다. 비자를 신청하기로 한 날 우리는 일본 대사관에서 보기로 했다. 승희가 먼저 가 있었고 나는 일이 있어서 늦게 도착했다. 내가 도착해 보니 승희는 작성하려고 비자 지원 서류를 앞에 놓고 있었지만 서류가 전혀 채워져 있지 않았고, 그녀는 당황한 듯 약간의 공황 상태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상당한 시간이 지났었기에 이미 서류가 상당히 준비돼 있기를 기대했었던 나는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갑자기 짜증이 몰려왔다. 나는 상당히 계획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내가 세운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화를 내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지만 승희에게 화를 많이 냈던 것 같다. 자신도 딴에는 나름대로 노력하려고 했었다는 사실을 알아주지 않고 화부터 내니 승희가 적잖이 놀랐었던 것 같다. 연애 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 이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벌어지고 있었고 나는 내가 크게 잘못했다는 것을 느꼈지만 이미 내뱉은 말은 주어 담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럭저럭해서 비자 신청은 마무리가 되었지만 승희는 또 하나의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승희의 이모와 코지의 집은 일본 동경에 있어서 우리는 동경으로 같이 가게 됐다. 여행 내내 크지는 않았지만 사소한 충돌이 있었다. 우리 모두 일본어를 몰랐기 때문에 언어의 장벽에서 오는 여행의 어려움도 있었다. 우연히 들린 일본 식당에서 비싼 돈을 내고 입맛에 전혀 맞지 않은 일본 음식을 먹기도 했었고 간판의 사소한 한자의 발음 때문에 충돌이 있기도 했다. 우리는 여행내내 같이 지낸 것이 아니라 여행의 반은 승희는 이모와, 나는 코지와 시간을 각각 보냈다. 코지는 나보다 몇살 위였는데 동경에 집도 있었고 빨간 스포츠카도 있었는데 이 차에 나를 태우고 덮개를 젖히고 동경시내를 드라이브 시켜주기도 했다. 지금은 연락도 끊어지고 코지가 어떤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지 몰랐는데, 차를 사면 차고지를 꼭 마련해야 하는 일본에서 그것도 동경에 이런 차를 가지고 다닐 수 있었다는 것이 코지가 일반인은 아니었다는 것을 느낀건 한참이 지난 후였다. 어쨌든 승희와는 여행의 반 정도만 같이 다녔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둘이 같이 있는 시간이 오히려 즐겁지 않은 여행이었다.


많은 이유가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승희는 이 일본 여행을 계기로 나와의 연을 끝내기로 결심한 것 같다. 여행에서 돌아온 얼마 후 난 이별 통보를 받게 된다.


아직도 그날이 잊혀지지 않는다.


일본에 여행 갈 때 승희는 나에게서 여행 가방을 빌렸다. 동생이 마침 어학연수를 갈 때 쓴 웬만한 어른도 들어갈 수 있는 큰 캐리어 가방이었는데 나는 이것을 그녀에게 빌려 주었다. 헤어지던 날 그녀는 이 가방을 나에게 돌려주었다. 개인 차가 없었던 나는 내 가슴까지 올라오는 이 커다른 가방을 버스 좌석 사이에 어렵게 구겨넣고 앉아 끌어안고 얼굴을 파묻고 아무리 울려해도 흐르지 않는 눈물과 함께 커다란 상실감 속에서 서울을 종단하는 한시간 반내내 망연자실한 채로 있었다.


그렇게 우리의 사랑은 지나간 과거가 되었다.



(계속)


*이 글을 읽기 전에 첫번째 '프롤로그'를 읽으세요.


[이별後愛] - 눈부시도록 찬란했던 하지만 처절하게 가슴시렸던 첫사랑과의 만남과 이별

►1◄첫번째 파고: 상실의 시대 I - 전조(前兆)

►2◄설레임: 인연의 시작

►3◄고백: 내가 알지 못했던 비밀

►4◄상처: 아침에 울린 전화벨소리

►5◄그 남자의 이야기: 기도

►6◄두개의 시선: 연인의 친구들

►7◄화양연화: "별따씨"

►8◄그 여자의 이야기: 그때....나는.

►9◄위기: 이젠 무뎌간다

►10◄다시 시작: 감기가 준 사색

►11◄마지막 노력: 난 어쩔 수 없는 인간이다

►12◄비수: 상실의 시대 II

►13◄매달림: 시지프스

►14◄강북구 미아4동 75-XX: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15◄잘 지내지?: 상실의 시대 III

►16◄이별 후 만남: 홀로서기

►17◄미련: 슬픔을 이기기 위해서는

►18◄그 사랑...: 에필로그

►19◄마지막 자취: 이별 3년후

►20◄사람아 아 사람아: 이별 7년 후


[응답하라2002] - 간절했던 꿈을 향한 유학도전기와 X세대 친구들의 20대시절 고민과 만나는 추억 여행

[삶, 사람, 사랑] - 유학, 이민 생활 동안 떠오르던 단상과 고민들 그 일상 나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