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사람, 사랑| [1] 가까이 있는 것들

삶은 모두에게 힘들다

by 짜근별

2025.12.20


오늘도 나도 모르게 입으로 되뇌인다..


'힘들다'


언젠가부터 이 말을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입에 달고 살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산다는 게 무엇이 그렇게 힘든 것일까?


젊었을 때, 더 힘들고 더 바쁠 때에도 힘들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은 것 같은데

나이가 들어갈 수록 이 말이 너무 쉽게 나온다. 세월의 무게가 더해져서 그런가?


따지고 보면 살아오면서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그렇게 힘든 일을 겪어보지 않은 인생이다.

하지만 그래도 누구에게나 그렇지만 삶을 살아가기가 그렇게 쉬운 것만은 아니다.


작년에 고등학생인 아들이 갑자기 엄청난 우울증을 앓아서 학교도 못가고 힘들어 했다.

사춘기에 무뚝뚝한 아들이 자주 '힘들어, 힘들다고' 라고 말했는데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그게 쌓이고 쌓여서 어느 순간 폭발해서 나타난 것이 극도의 우울증이었다.


내가 스트레스에 약하다는 것을 안 것은 30대초반이었다.

어느날 갑자기 극심한 소화불량이 왔는데 쓰고 있던 논문이 원인이라는 것을 곧 깨닫았다.

그때부터 가능하면 스트레스를 어떻게든 피하려고 노력하고 살아왔는데 작년 아들이 정신적 문제로 학교에도 불려가고, 정신과 상담도 받으면서 평생 받을 스트레스를 이때 다 받은 것 같다.

부모로서 자식이 아픈데 뭔가를 크게 해 줄 수 없다는 고통...

이건 살면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스트레스 중 하나다.


그 고통의 나날을 보내면서도 나에게 계속 읊조렸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역시나,

세월이 약이었다.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고통의 나날도 세월이라는 만병통치약으로 시나브로 사라져 가고있다.

지난 학기내내 새벽 5시에 일어나 미식축구 연습하러 보내고, 방과후 학교 Marching 밴드 연습으로 7시에 학교에서 픽업하는 나날들이었다. 그 직전학년내내 무기력하게 일상에 끌려다니더니 언젠가부터 주체적으로 제 몫을 해 내는 게 내심 안심도 되고 대견스럽기도 하고.

어제는 기말시험 마지막 날이자 미국에서 가을학기가 끝나고 짧은 2주간의 겨울방학으로 들어가는 날이었다. 큰아이가 오전에 끝난 학교를 마치고 그냥 집으로 오기 섭섭했는지 친구들이랑 어울린다고 했다.


친구집 주소 알려주면서 저녁 8시에 픽업오라고 해서 길을 나섰다. 오스틴 북쪽에서 강을 가로질러 남쪽으로 가야하는 길인데 나는 이 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수년째 공사중이어서 오스틴 다운타운을 가로지르려면 상시있는 교통체증에 짜증이 몰려온다.


어제는 문득 막히는 차안에서 고개를 돌려 보니 오스틴 야경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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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틴이 이렇게 아름다웠었나?'


나도 모르게 이런 소리가 나왔다.

매일 지나다니는 길, 가까이 있지만 느끼지 못하고 산 내가 너무 무심하게 느껴지기고 했고,

그동안 사는 게 그렇게 힘들었나 라는 생각도 들기도 하고.


친구집에 도착해서 전화해서 나오라고 하니 큰애가 뻐팅긴다.


'친구 엄마가 밥도 주고 노래방(karaoke)하고 있어. 너무 재미있는데 아빠도 들어오면 안돼?'


금방 갔다 오리라 생각하고 후질근하게 맨발에 슬리퍼만 신고 나선 길,

밤에 갑자기 들어가는게 예의도 아니고 해서 약간 역정을 내며 밖에서 기다린다고 하고 정리되면 나오라고 했다. 조금있다 누가 차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봤더니 처음 뵙는 친구 어머니가 나와서 웃는 얼굴로 들어오라고 한다.


어쩌다 보니 들어선 집에선 아이들이 노래방으로 흥이 한창이다. 인도계 집이었는데 마침 인도에서 친척이 놀러와서, 아들 친구하고 그 여동생, 그리고 인도에서 방문하러 온 친척 여자아이 하나와 아들이 마이크를 잡고 노래하고 있었다.


작년에 한국에 갔을 때 처제집 이종사촌들과 노래방에 간 적이 있는데 다른 사람 노래할 때 멀뚱멀뚱 보고만 있더니 아예 마이크를 잡고 놓칠 않는 큰아이가 너무 낯설었다. K-pop의 영향력이 정말 크긴 큰가 보다. 인도아이들이 다 한국말로 노래를 한다. 인도에서 오신 그 여자아이 어머니가 원래는 힌디어로 노래했는데 K-pop듣고부터는 아예 한국말로 노래만 한다고 반농담 섭섭한 말투로 나에게 푸념을 떤다.


이집에서는 아빠가 노래방을 좋아해서 금요일은 원래 노래방 나잇이란다. 사랑과 행복이 넘치는 가정이라는 느낌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조금 놀다가 자리를 뜨려고 했는데, 아들이 너무 재미있어하고

부모님들과 이런저런 수다 떨다보니 10시가 훌쩍 넘은 시간에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올해 고3인 큰아이가 집으로 오는 차에서 지나가는 말로 혼잣말 한다.


'OOOO (고등학교이름) 가길 정말 잘 한 것 같아'


학교 가기 싫다고, 자퇴하고 싶다고 말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속으로 섬찟 놀라며 안도의 눈물이 핑 돌았다. 그렇게 큰아이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찌보면 난 가진게 정말 많은데 그리고 그 소소한 행복이 가까이에 넘치고 있는데 왜 그렇게 삶이 힘들다고 느끼며 사는 것일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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