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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서 이야기

세무서 과장도 잘 모르는 그들의 세계

by 송종문

87년 초 병역을 마친 나는 A사에 입사했다. 수습을 끝내자마자 세무팀장이 되었는데 현재 A사에서는 팀장이 임원급 직위지만 당시에는 대리 아래였다. 신입인데도 대학원 졸업자라고 팀장을 맡긴 듯하다.

어느 날 업무 처리를 위해 관할 세무서를 방문했는데 기업 세무를 주로 처리하던 2층으로 올라갔더니 텅텅 비어있었다. 한두 명이 자리를 비운 것이 아니라 아예 2층 전체에 직원이 없었다. 황당하여 회사에 보고한 뒤 사무실로 돌아왔다.

"어떻게 된 거래요?"

"그 세무서에서 뇌물 사건이 터졌대. 수사 시작됐다니까 다 튀었대."

"뇌물 받은 사람 도망갔다고 그렇게 텅텅 비어요?"

"먹으면 혼자 먹나. 나눠 먹지"

그 큰 세무서의 수많은 직원이 다 나눠먹었을 리는 없고, 캐기 시작하면 고구마줄기처럼 줄줄이 뭐가 나올까 봐 무서웠던 것일까? 어쨌든 수사기관과 이야기가 잘 되었는지 달아났던 세무공무원들이 돌아와 업무는 곧 정상화되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언론사 사회부 기자가 돼서 서울 000 세무서를 방문했다. 사회부의 경찰 출입 기자는 서울을 몇 개 구역으로 나누어 담당 지역 안에 있는 경찰서, 대학, 병원 등을 드나들었다.(당시에는 대학가에 시위가 잦아서 대학도 중요한 취재 대상이었다.) 그러나 세무서는 거의 출입대상이 아니었고, 다만 고등학교 동기가 내 담당 지역의 일선 세무서에 과장으로 왔다고 해서 얼굴이나 보려고 찾아간 것이었다. 행정고시 중에서 재경분야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한 친구였는데 병역 미필이다 보니 국세청으로 갔고, 고시 출신이라 일선 세무서에 가자마자 '과장님'이 됐다.

"야, '박 초시'(初試, 조선시대 과거의 1차 시험에 합격한 사람. 행정고시 1차 시험에 합격했을 때 놀리던 호칭)가 과장님이 되셨네"

"과장이면 뭐 하냐, 아는 것도 없는데. 근데 난 여기 와서 언론사가 그렇게 많은 줄 처음 알았다"

"언론사?"

"응 무슨 세무XX, 세정OO 하는 신문이 많더라고. 엊그제도 그런 신문사 기자가 왔거든"

"뭔가 취재 거리가 있나?"

"그런 건 아니고, 우리 과에 나이 많은 주사가 한 분 있는데, 그날 '기자가 왔는데 말씀이나 나누시죠' 그러면서 봉투를 하나 주는 거야. 그래서 '이게 뭡니까' 그랬더니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하다가 슬며시 주시면 됩니다' 하더라고. 그래서 알려준 대로 했지 뭐."

"봉투에 얼마가 들었는데?"

"몰라. 열어보지도 않았어. 사실 그 돈이 어디서 나왔는지도 몰라."

이건 현재의 이야기가 아니고 80년대 말의 이야기들이다. 그리고 세무공무원을 싸잡아서 비리 연루자로 비난한다든가, 타 언론사를 비하하려는 뜻은 전혀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많은 세무공무원이 청렴하고 성실하게 업무를 수행한다고 생각하고, 당시에는 내가 소속됐던 이른바 '유력' 언론사들도 촌지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시절이었으니까.(그에 관한 이야기는 뒤에 별도의 장으로 썼다.)

다만 그 당시 시대상을 한 조각의 역사로 남기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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