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봉권, 그리고 내가 누군지 알리기 싫었던 사람들
A사에서 몇 달간 세무팀장을 하고 나서는 자금팀장이 되었다. 한두 달 정도는 일반 자금업무를 했는데, 한 달에 한 번씩 한국은행 ㅇㅇ지점을 찾아가 급여에 쓸 현금을 찾아왔다. A사는 당시에도 급여를 계좌에 직접 입금했는데, 여전히 현금으로 받는 직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 번에 십몇 억 원을 찾아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은에서는 신권 지폐 백 장을 한국은행 마크가 인쇄된 띠지로 묶고, 그 묶음 10개를 비닐로 패킹해서 출고한다. 즉 비닐팩 하나에 지폐 천 장이 들어있는 셈인데 이걸 관봉권(官封券)이라고 부른다. 당시 최고액 지폐인 1만 원권 관봉권 한 덩어리면 천만 원이고, 그걸 40개씩 한은 마크가 찍힌 검붉은 헝겊 자루에 담아주니 한 자루에 4억 원이 된다.
지폐는 꽤 무거워서 처음 4억 원짜리 자루를 들 때 선배들이 허리 다치지 않게 조심하라고 했다. 들어보니 허리를 다칠 정도는 아니지만 훔쳐 메고서 재빨리 달아나기는 어려울 무게였다. 사실 10억 원이라도 만 원권으로만 찾아오면 몇 자루 안 되니까 어려울 게 없는데, 급여로 나누어 주어야 해서 천 원권, 5천 원권을 적절히 섞어서 찾아왔다.
10개가 넘는 돈자루를 밴(통칭 '봉고')에 실으니 한은 마크가 찍힌 자루들이 불룩 솟아 오른 모양이 뒷 유리창으로 다 보였다. 운전기사와 둘이서 회사까지 그 돈자루를 싣고 돌아오는데 조마조마했다. 돈인 걸 알아본 강도라도 달려들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나로서는 평생 처음 보는 관봉권이었고 그 시절 이후로는 한번도 못봤는데 최근에는 정치뉴스에 자주 나오고 있다.
A사는 매달 월차 결산을 했는데, 한번 재무제표를 뽑으면 연속출력 용지로 몇 박스씩이 나왔다. 그런데 대차대조표의 부채항목에 미지급 급여 수천 건이 딸려 나오는 것이었다. 그것도 대개 10만 원 미만의 소액이었고, 심지어 몇천 원짜리도 많았다. 그게 매번 월차 결산 때마다 1건당 1줄씩 줄줄이 출력되니 번거로워 처리방안을 찾고 있었다.
"大 A사가 이런 걸 떼어먹을 리는 없는데?"
알고 보니 그중 상당수가 생산라인에 근무하던 직원들이 어느 날 갑자기 회사에 나오지 않으면서 지급하지 못한 돈들이었다. 정상적인 퇴직절차를 밟았으면 정산을 해줄 텐데, 며칠 일하다가 말도 없이 안 나오는 데다 주소나 연락처도 없어(혹은 엉터리여서) 돈을 주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런 이들 중 많은 수가 급여 계좌를 정하지도 않은 터라 송금할 계좌도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신원을 파악할 수 있을까 해서 각각의 내역에 나온 주민등록 번호를 검증해 봤는데 상당수가 엉터리 주민번호였다.(주민등록번호는 끝자리를 이용해 분석하면 제대로 만든 번호인지 확인할 수 있다) 단순오류로 보기에는 꽤 많았다. 주민번호도, 집 주소나 연락처도 알려주기 싫었던 걸까?
요즘에야 현대자동차 같은 좋은 곳의 제조업 근로자가 상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평생직장으로 여기지만 70, 80년대까지만 해도 A사의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사람조차 '공순이', '공돌이'라는 사회적 비하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기회만 되면 언제라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런 분위기로 돈을 번 사람도 있다. 생산라인에서 오래 일하며 조장이나 반장 역을 맡은 사람 중에는 주식 부자가 된 사람이 있다고 들었다. 잠깐 일하다가 나가는 퇴직자들이 몇 주씩 파는 우리사주를 사 모았는데, 싼 값에 차근차근 모은 주식들이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지금은 유상증자를 할 때 시장가에서 10-30% 정도 할인한 가격으로 발행하지만 당시에는 액면가로 발행했기 때문에 우리사주의 가격이 아주 쌌다. 문제는 종업원이 워낙 많다 보니 우리사주로 받는 주식 수가 한 사람당 얼마 안 됐고, 퇴직하면서 그걸 팔려니 장외 거래로 단주 처리해야 하는 복잡함이 있었다. 그래서 조장이나 반장이 매입가에서 얼마만 더 얹어주면(즉, 액면가보다 조금만 더 주면) 팔고 퇴직하는 직원이 많았다고 한다. 당시에도 억대를 모았다는 소문이 도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런 사람이 정년 때까지 꾸준히 모았으면 꽤 부자가 됐을 것이다. 그래도 회사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바탕으로 한 것이니 결코 횡재는 아니다.
[관련 역사 1] 관봉권, 특히 고액인 5만 원권 관봉권은 여러 차례 기사 거리가 되었는데, 주로 비자금이나 뇌물과 관련해서다.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민간인 사찰 의혹 폭로를 무마하는 데 쓸 돈을 국가정보원으로 받아 전달했는데 관봉이었다는 기사도 있었고, 대통령 영부인이 서울 강남 유명 의상실에서 수십 벌의 옷을 한국은행 띠지가 묶인 관봉권 수천만 원을 주고 샀다는 보도도 있었다. 국회의원에게 뇌물 5억 원을 전해주었는데 관봉권이었다는 진술도 있었다. 일반 시민들은 보기 어려운 돈이지만 정치권에서는 꽤나 애용되는 듯.
[관련 역사 2] 우리사주제도는 "우리 회사 주식 소유제도"의 줄임말로 기업이나 정부가 각종 지원을 제공하여 근로자가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의 주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종업원주식소유제도이다.
관련 법이나 제도가 전혀 없었던 1958년 10월 (주)유한양행이 직원들에게 자사주를 지급하여 종업원주식소유의 첫 발을 내디뎠다.
그러다 1968년 11월 22일 제정된 「자본시장육성에 관한 법률」에서 상장법인이 유상증자를 할 때 신규 발행 주식의 10%를 근로자에게 우선 배정하도록 규정하면서 법률적 토대가 갖춰졌다.
1987년 9월 15일 “종업원 지주제도의 확충방안”을 통해 1988년부터는 자사주 우선배정비율이 20%로 확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