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든 갈 수 있는 시골이 있다는 것은 上
언제든 갈 수 있는 시골이 있다는 것은 上
나의 외가는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이다. 나는 언제나 그곳에 가고 싶다. 어릴 적에는 부모님 차를 타고만 갈 수 있었던 그곳을, 근처 여행을 하다 늦은 밤에 가서 할머니와 삼겹살을 구워 먹었고, 탈진할 것 같던 날에 도망치듯 가서 물가 옆 길을 자전거를 타고 몇 시간이고 달리기도 했고, 친구를 데리고 가기도 했다. 삼례는 전주에서 버스로 1시간을 들어가야 하는 시골이고, 구멍가게 하나 없을 정도로 단란하고 작은 마을이다.
우리 외할머니는 막내 삼촌까지 자식을 일곱이나 낳으셨는데 그 덕에 외갓집에 갈 때마다 항상 또래의 사촌들과 친척 어른들로 북적댔다. 어릴 적 외가에 가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사촌동생들이었는데, 갈 때마다 오랜만에 만나는 것이니 서로 데면데면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이 마주쳐 실실 웃음이 났고, 같이 놀자며 엉기는 동생들이 예뻤다. 그들과는 울며불며 머리끄덩이 잡고 싸우다가도 얼마 안 가 다시 뛰어놀 수 있었다. 그 시간들이 다정하고 안온했다. 학교 친구들과 노는 기분과는 달랐다. 본연의 나로 돌아간 듯 신이 나고, 힘이 솟아서, 괜히 저 멀리 까지 함께 걸어갔다 오자고 하고, 뛰어다니고, 작은 놀이터만 발견해도 아주 오랫동안 놀 수 있었다.
그곳에서 볼 수 있는 엄마의 기색이나 표정도 좋았다. 우리 엄마가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엄마!' 하고 외치면, 우리 엄마가 아니라 삼례에 살던, 유영희 여사의 딸로 금세 탈바꿈하여 말소리에 생기를 머금는 것이었다. 나 또한 그곳에만 가면 온몸 가득 활기가 솟았다. 학교는 지겹고,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의 삶은 나를 위축시키는데, 외갓집에 가면 사촌동생들이 나를 따르고, 용돈도 받고, 다들 신이 나 있으니까. 새벽까지 왁자지껄 형부- 동서- 아이고-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화투 판 소리를 배경 삼아 우리는 즐겁게 놀기만 할 수 있었으니까. 오래된 책과, 앨범들, 외삼촌의 일기장- 놀 거리가 무궁무진했으니까.
구옥의 쿰쿰한 냄새가 나는 작은 방에 다 같이 모여 이불 덮고 앉아, 어른들이 옛날에 있었던 일들을 다시 그때로 돌아간 듯 정겹게 나누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불을 다 끄고 막내 이모가 해주는 무서운 이야기를 듣기도 했는데, 문만 열면 왁자지껄한 거실인데도 나가지 못할 만큼 오금이 저렸다. 그럼에도 또, 또 얘기해달라고 졸라댔던 이유는 무엇보다 ‘같이’ 무서워하는 게 재미있어서였다.
사촌들 중엔 내가 제일 맏언니여서, 이리 가자, 저기 가보자 하면 우르르 달려와 환히 웃는 동생들이 귀엽고 우쭐한 마음이 들었다. 도시에서 했던 놀이를 부풀려 소개하고 거드름을 피우면 또, 또 하자고 졸라대니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것 같았고, 괜히 잰 체하며 그 아이들을 기다리게 해서- 얼른 하자고 조르는 그 소리를 듣고, 또 듣고 했다. 그런데 외삼촌이 외가에 그놈에 컴퓨터를 가져오고 나서는 인기가 깡그리 컴퓨터로 옮겨갔다. 동생들은 누나가 하자는 놀이에는 관심도 없고 컴퓨터 게임에만 열중하니, 나도 그들과 어떻게든 어울리고 싶어, 종국에는 내가 게임 한 번만 시켜달라고 졸라댔었다.
나는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고 성인이 돼서도 동생들과 컴퓨터 게임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바로 앞 삼례 시골길로 다 같이 나가 내가 사는 곳에서는 맡을 수 없는 공기를 아주 오랫동안 맡고 싶었고, 계속 걸으면서 순해지고, 어딘가가 허물어지는- 외가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것들을 최대한 오래, 많이 감각하고 싶었다. 도시에서 독해지고 복잡해지고 마침내 탈진한 내가 그곳에서만큼은 투명해지는 게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