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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나무 Dec 03. 2020

나의 외가, 삼례

언제든 갈 수 있는 시골이 있다는 것은 上

언제든 갈 수 있는 시골이 있다는 것은 上

나의 외가는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이다. 나는 언제나 그곳에 가고 싶다. 어릴 적에는 부모님 차를 타고만 갈 수 있었던 그곳을, 근처 여행을 하다 늦은 밤에 가서 할머니와 삼겹살을 구워 먹었고, 탈진할 것 같던 날에 도망치듯 가서 물가 옆 길을 자전거를 타고 몇 시간이고 달리기도 했고, 친구를 데리고 가기도 했다. 삼례는 전주에서 버스로 1시간을 들어가야 하는 시골이고, 구멍가게 하나 없을 정도로 단란하고 작은 마을이다.


우리 외할머니는 막내 삼촌까지 자식을 일곱이나 낳으셨는데 그 덕에 외갓집에 갈 때마다 항상 또래의 사촌들과 친척 어른들로 북적댔다. 어릴 적 외가에 가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사촌동생들이었는데, 갈 때마다 오랜만에 만나는 것이니 서로 데면데면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이 마주쳐 실실 웃음이 났고, 같이 놀자며 엉기는 동생들이 예뻤다. 그들과는 울며불며 머리끄덩이 잡고 싸우다가도 얼마 안 가 다시 뛰어놀 수 있었다. 그 시간들이 다정하고 안온했다. 학교 친구들과 노는 기분과는 달랐다. 본연의 나로 돌아간 듯 신이 나고, 힘이 솟아서, 괜히 저 멀리 까지 함께 걸어갔다 오자고 하고, 뛰어다니고, 작은 놀이터만 발견해도 아주 오랫동안 놀 수 있었다.


그곳에서 볼 수 있는 엄마의 기색이나 표정도 좋았다. 우리 엄마가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엄마!' 하고 외치면, 우리 엄마가 아니라 삼례에 살던, 유영희 여사의 딸로 금세 탈바꿈하여 말소리에 생기를 머금는 것이었다. 나 또한 그곳에만 가면 온몸 가득 활기가 솟았다. 학교는 지겹고,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의 삶은 나를 위축시키는데, 외갓집에 가면 사촌동생들이 나를 따르고, 용돈도 받고, 다들 신이 나 있으니까. 새벽까지 왁자지껄 형부- 동서- 아이고-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화투 판 소리를 배경 삼아 우리는 즐겁게 놀기만 할 수 있었으니까. 오래된 책과, 앨범들, 외삼촌의 일기장- 놀 거리가 무궁무진했으니까.

구옥의 쿰쿰한 냄새가 나는 작은 방에 다 같이 모여 이불 덮고 앉아, 어른들이 옛날에 있었던 일들을 다시 그때로 돌아간 듯 정겹게 나누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불을 다 끄고 막내 이모가 해주는 무서운 이야기를 듣기도 했는데, 문만 열면 왁자지껄한 거실인데도 나가지 못할 만큼 오금이 저렸다. 그럼에도 또, 또 얘기해달라고 졸라댔던 이유는 무엇보다 ‘같이’ 무서워하는 게 재미있어서였다.


사촌들 중엔 내가 제일 맏언니여서, 이리 가자, 저기 가보자 하면 우르르 달려와 환히 웃는 동생들이 귀엽고 우쭐한 마음이 들었다. 도시에서 했던 놀이를 부풀려 소개하고 거드름을 피우면 또, 또 하자고 졸라대니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것 같았고, 괜히 잰 체하며 그 아이들을 기다리게 해서- 얼른 하자고 조르는 그 소리를 듣고, 또 듣고 했다. 그런데 외삼촌이 외가에 그놈에 컴퓨터를 가져오고 나서는 인기가 깡그리 컴퓨터로 옮겨갔다. 동생들은 누나가 하자는 놀이에는 관심도 없고 컴퓨터 게임에만 열중하니, 나도 그들과 어떻게든 어울리고 싶어, 종국에는 내가 게임 한 번만 시켜달라고 졸라댔었다.


나는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고 성인이 돼서도 동생들과 컴퓨터 게임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바로  삼례 시골길로  같이 나가 내가 사는 곳에서는 맡을  없는 공기를 아주 오랫동안 싶었고, 계속 걸으면서 순해지고, 어딘가가 허물어지는- 외가에서만 느낄  있는 그것들을 최대한 오래, 많이 감각하고 싶었다. 도시에서 독해지고 복잡해지고 마침내 탈진한 내가 그곳에서만큼은 투명해지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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