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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나무 Dec 07. 2020

나와 할머니의 여름방학

언제든 갈 수 있는 시골이 있다는 것은 下

학창 시절 중에 제일 지루했던 때를 꼽으라면 단연 중학생 때인데, 그중에서도 3학년 때는 유독 학교에 가는 게 싫었다. 제사 때문에 가족들과 외가에 갔던 어느 여름, 마침 방학이었고, 부모님에게 한동안 외가에서 지낼 테니 나를 놓고 가라고 했다. 도시에서, 번잡한 아이들에게서, 가기 싫은 학교에서 멀어지고 싶은 의지의 표현이었지만 진짜로 그럴 자신은 없었다. 다음 날 집에 갈 때가 되면 없었던 일로 하고 아빠 차에 탈 생각이었는데, 눈을 떠보니 휑한 외갓집에 나 혼자 덩그러니 누워있었다. 부모님이 출발한 지도 한참이 지났을 시간이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그냥 던져본 말이었는데, 아니 그 순간에는 진심이었다 할지라도 막상 혼자 남으니 낙오된 기분이었고, 시골이라 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가는 그런 일은 너무 어려운 일이었으니 갇힌 기분마저 들었다. 그래도 여기는 정말 먼 곳이고 학교와도 정말 정말 먼 곳이어서 엄마에게 전화해 징징대는 것을 끝으로 이곳에서의 시간을 받아들였다.


할머니는 끼니때마다 고봉밥을 차려주셨는데 솔직히 국도 반찬도 맛이 없었는데, 왜 그렇게 토실토실해졌는지. 학창 시절 중 최고 몸무게를 찍어, 그때 외가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지금도 헛웃음이 나올 정도다. 내 기억에 그즈음 할머니는 약간 우울해 보이셨는데, 그때는 그게 기력이 없으신 건지, 지루하신 건지, 내가 있는 게 싫은 건지 알 수 없었다. 웬 종일 안 방에 등 돌린 채 누워만 계셨는데, 나는 그 정적을 환기시키고 싶기도 했고, 이 먼 곳에- 이 조용한 곳에 이제는 할머니와 나 단 둘 뿐이니까 누군가와라도 이야기 좀 하고 싶은 마음에 어느 날은 안방 문을 빼꼼히 열고

-할머니 초콜릿 드실래요

한 적이 있다. 그러자 할머니는

-됐다 너나 먹어라

그 말이 순간적으로 어찌나 미웠던지, 빈정이 상한 나는 그 후로는 할머니에게 구태여 뭔가를 권하거나, 그 마음을 허물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 여름방학, 외가에서의 밤들이 생각난다. 할머니와 나 단둘이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던 밤 들. 나는 그때 잠시 할머니의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둑한 밤, 인적 드문 시골에 친척들이나 아는 사람이 갑자기 찾아올 리 만무한 그 깊은 정적 속에, 차 지나가는 소리만 간간히 들리는데, 차에서 나오는 번쩍이는 불빛과 괭음이 어찌나 반갑던지. 차 지나가는 소리가 반가웠던 건, 열여섯 인생 처음이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쩌면 할머니는-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누군가를 기다리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시골의 밤은 적응되지 않는 쓸쓸함이 함께 한다.


할머니와 나, 우리의 사이가 언제 가까워졌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이제 외가에 도착하면 할머니를 부둥켜안고 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할머니는 가끔 내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한 번은 친구와 무턱대고 찾아온 나를 보더니, 할머니는 소스라치게 놀라셨고, 그 날 저녁 같이 옥수수를 쪄 먹었다. 다음날 아침, 다시 서울로 향하며 이제 나도 돈 버는 어른이 되었다 싶어 할머니 손에 5만 원을 쥐어 드렸다. 할머니는 노발대발 하시며 그 5만 원을 돌려주시고 준비한 5만 원을 꺼내셨다.

-네가 할미 보고 싶다고 여기까지 와준 것만 해도 나는 고마워. 

나는 할머니가 영원히 나와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삼례의 공기도, 옥상이 넓은 외갓집도, 사촌동생들도, 이모와 이모부들- 고기를 구워 먹고, 새벽까지 화투를 치고, 딴 돈으로 치킨을 시켜 먹는 그 일들이 영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아주, 아주 어릴 때부터 해왔다.

-할머니. 이 모든 추억들은 다 할머니가 만들어준 거야. 고맙습니다.


외갓집 앞마당에서 할머니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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