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의 가장 큰 기쁨은 처음 가보는 동네다. 연기 레슨 때문에, 수강생들이 사는 근처 지역에 연습실을 잡는 나로서는, 일이 아니었다면 와보기 어려웠을, 그 동네 안에서도 더 안 쪽의 동네들을 만날 수 있었다. 신정동, 오류동, 도화동, 십정동, 구로동-
수업시간보다 훨씬 일찍 집을 나서서, 그 근처에서 밥을 먹는다. 그리고 걷는다. 내 눈길을 사로잡는 것들을 따라서- 예를 들면 봄에만 피는 꽃나무들이 늘어선 길이라던지, 오래된 아파트건물주변이나 주택들이 빼곡한 골목들을- 내가 그 길들을 찾아다닌다기보다, 그 길들에 끌려 다닌다는 표현이 맞겠다. 나는 그 길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사람이다.
운이 좋으면 걷다가, 시장을 만나게 된다. 시장은 다른 지역의 시장을 가도 내가 어릴 적부터 다녔던 그곳과 비슷한 냄새와 비슷한 모습들이어서 몸과 마음이 편안해진다. 봐도 봐도 생경하게 보아지는, 늘어져있는 여러 생선들과 갑각류, 닭들, 각종 채소들과 손두부를 뚫어져라 보며 느리게 지나가다가, 이미 배부르더라도 늘 허기지게 하는 냄새를 풍기는 호떡집이나 도너츠 튀기는 집 앞에서 잠시 서성이기도 한다.
하루는 영화를 보러 갔다가 시간이 남아서, 보자마자 단박에 마음을 빼앗겼던, 극장 바로 앞의 오래된 아파트 단지 안 길을 걸었다. 아파트 건물 맨 뒤편에는 산과 이어진 산책로가 있어서, 주민으로 보이는 분들이 천천히 걸으며 봄날을 즐기고 있었다. 산 쪽으로 빽빽이 서 있는 초록의 나무들과 단지 바깥의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나 또한 봄을 즐기게 해 주었고, 책가방을 메고 뛰어가는 아이들과 아이스크림을 고르는 가족들은 어떤 시간으로 나를 데려갔다. 영화 시간은 다가오는데, 그 길을 오랫동안 헤매고 싶은 마음에 아득해졌다.
좁은 길, 구부러진 길, 누군가의 생활과 그 길을 거니는 사람들의 정취가 뒤 섞여 있는 길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다 사라져 다시는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두려움 때문에 나는 자꾸만 그런 길들에 마음을 빼앗긴다. 주택은 아파트와 빌라와는 다르게 한 집 한 집이 다른 모양, 다른 색상이다. 새로이 덧칠한 색깔의 주택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취향을 엿볼 수 있게 하고, 주택 안에 심기어져 담벼락 바깥까지 삐져나온 나무들- 가령 (제일 많이 봤던) 감나무라던지 어떤 나무인지는 모르겠으나 고운 색을 자랑하는 꽃나무라던지- 은 여지없이 걸음을 멈추고 잠깐 그 풍경을 바라보게 한다. 밤늦게 집에 갈 때는 거기서 퍼져 나오던 빛과 사람들의 말소리에 누군가 뒤쫓아올 것 같아서 날 뛰던 마음이 가라앉곤 했다.
어린 날에는 오히려 이런 풍경들만이 도처에 깔려 있었어서, 고층 건물들이 우리의 구경거리였다. 우리 동네에 처음으로 생긴 고층 아파트를 기억한다. 지금도 있는 그 아파트는, 이제는 더 높이 솟은 건물들 덕분에 그리 튀는 형상은 아니지만, 처음 생길 때만 해도 무척 신기하고 괜히 격양됐었다. 그래서 우리 아파트의 언니 동생들과 시도 때도 없이 놀러 가곤 했다. 해가 뜨거운 여름날에, 그 고층 아파트 안에 있는 분수대에 들어가 물놀이를 실컷 하거나, 그 옆에 붙어 있던 놀이터에서 놀다가 다시 우리 아파트로 돌아왔다. 지금 생각하면 아파트에서 아파트로 놀러 가는 것이 희한한 일이지만- 그렇게 높은 아파트는 봐도 봐도 신기했다. 고백하자면 그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을 꽤 오랫동안 부러워했다. 그리고 이사를 간다면 꼭 그 아파트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이사오기 전, 귀갓길에 버스에서 내리면 꼭 그 고층 아파트를 가로질러 오는 동선으로 오곤 했다. 큰길로 걸으면 술집이 늘어서 있어서 분주했기 때문에, 고요한 아파트 길을 걸으며 종종 그 오래전으로 돌아가곤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 분수대도 놀이터도 그대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저 좁은 분수대에 들어가서, 남의 아파트에서 그렇게 천진하게 – 마치 워터파크에 놀러 온 아이들처럼 놀았을까, 옷이 흠뻑 젖는 기쁨과 낯선 공간을 맞이하는 기쁨에 젖어서. 지금은 아무리 어린아이들이라도 아무도 그 분수대에 들어가 놀지 않는다.
어릴 때의 나는 미처 몰랐다. 유난히 높아서 부러웠던 그 아파트 같은 건물이 우리 동네에 주택이나 저층 아파트보다 훨씬 많아질 줄은. 그래서 어른이 된 나는 이제는 반대로, 낮은 건물을 찾아 이리저리 걸어 다니나 보다.
한 주에 한 번 나가는 학원이 이사 가기 전 동네라, 버스가 살던 집 근처를 지나칠 때마다 언제 펜스가 쳐질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창 너머 아직은 그대로인 주택가를 바라본다. 산과 이어진 산책로 길 밑에, 내가 자주 가던 카페에는 재개발을 의미하는 노란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새로 이사한 집에 누워있다가 그곳이 사라진다고 상상하면 아득한 웜홀에 빠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 거리가, 그 건물들이 모두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슬픔을 넘어서 어떤 시간을 빼앗기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엄마와 그곳에서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와 나 둘 다 그 동네를 그리워하고 있지만, 서로에게는 그 그리움에 대해 얘기하진 않는다. 모든 건물이 허물어지기 전에 이곳에서 사진을 찍는다면, 먼 훗날 그곳에 대해 얘기할 때, 우리의 모든 추억이 담겨 있는 그 길들이 사라졌다고 말하기 전에, 우리- 이 길이 사라지기 전에 사진을 남겨놨었지라고 말할 수 있겠지.
사진을 찍기로 한 날 가까운 전철역에서 그전에 작업했던 사진작가님과 만나서 셋이 함께 동네를 향해 걸었다. 강풍이 불어 걱정했었는데, 주택가로 들어서자마자 운이 좋게 바람이 멎었다. 그전에 왔을 때는 몇몇 가구들이 남아있는 것 같았는데- 이제는 아무도 살지 않는 것 같았고, 쓰레기들만 도처에 널려 있었다. 아스팔트가 깨져 울퉁불퉁하고 푹 꺼져있기도 해서 걷기에도 좋지 않았다. 작가님이 모든 곳을 다 샅샅이 찍어주었으면, 하고 바라면서도 지저분한 형국에 어디를 찍어달라고 해야 할지 망설이게 됐다. 사람이 없으면 길마저 이렇게 낡아 버리고, 사람이 사라진 자리에는 버리고 간 물건들만이 천천히 썩어갔다.
사진작가님의 요청으로 엄마와 손을 잡기도 하고 팔짱을 끼기도 하고, 누가 살았을지 모르는 집- 그러나 오랫동안 지나쳤던 집 앞에 쭈그려 앉기도 했다. 내가 능숙하게 엄마를 리드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엄마는 카메라 앞에 많이 서 본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웃었고, 나는 엄마를 잡은 손이 어색한 것이 어색해서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엄마도 나도 이 동네가 나이 든 것처럼, 많은 변화의 해를 지나왔다. 그리고 그 변화를 계속 감당하며 살고 있다.
늘, 이곳이 언제 사라질까 두려워지면 혼자 오던 길을 셋이 걸으니 외롭지 않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엄마의 뒷모습과 사라질 거리들을 연신 핸드폰으로 담았다.
셋이 걷고 있다가 내가 연출했던 영화에 로케이션으로 쓰였던 골목의 한 귀퉁이를 보며 반가움에 “여기서 영화를 찍었었어요”라고 작가님께 소개했다. 재작년 영화를 찍을 때만 해도 초록 이파리가 무성한 나무와, 여러 생활의 소음과 사람 사는 생기가 있었던 곳인데, 죽은 엉겅퀴 같은 것들만 벽에 늘어져 있었다. 그즈음에 앉아계시던 할아버지가 “무슨 사진 찍는 거요?” 하고 물으셨다. 나는 괜히 주눅이 들어 말이 빨리 나오지 않았고, 엄마가 “이 동네서 평생 살아서 없어지기 전에 찍어 놓는 거예요” 했다. 할아버지는 순간 동지를 만난 듯 “많이 남겨요. 이거 나중에는 귀한 기록이 될 거예요” 했다. 귀한 '기록'이라는 단어가 일순간 아주 먼 훗날로 나를 데려다 놓았다. 이 모든 게 사라진 뒤 사진을 들여다보는 내 모습으로. 그래서 그 말씀을 듣고 더 필사적으로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이제는 문을 닫은 오래된 정육점 앞에 나란히 앉아계시던 네 명의 아저씨들도 사진을 찍는 우리를 장난스럽게 쳐다보며 “우리는 왜 안 찍어줘요” 하며 괜히 말을 거셨다. 그리고는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잡고 있는 엄마와 나를 부끄러울 정도로 계속 바라보셨다. 할아버지도, 아저씨들도, 엄마와 나 우리 모두 한 마음일 것이다. 더디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
기록의 의미는 무얼까- 지금 남긴 사진은 훗날 어떤 이야기들을 불러일으킬까? 요즘도 조마조마해하며 버스 안에서 그 주택가를 바라본다. 펜스가 쳐져 있을까? 곧 모든 것들이 허물어지겠지. 그렇지만 아직 굳건히 자리한 다른 동네의 골목들을 걸으며 나는 계속해서 우리 동네를 만난 것처럼 반가워할 것이다. 그리고 (그곳의 사는 분들의 바람과 다를 수 있기에) 죄책감 어린 염원이지만, 그 길들이 오래 존재해 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