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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집 Oct 20. 2022

곶감 좋아하시나요

텃밭 이야기 2

 10월 셋째 주 처마 밑에 감이 달립니다. 


 감 수확철이 시작되고 장날에 감 상자가 나오기 시작하면 엄마는 괜히 분주해집니다. 매년 가을마다 돌아오는 곶감 만들기가 시작되는 것이지요. 사진첩을 뒤적여보니 2018년 10월에 처음 감을 달기 시작해서 벌써 5년째 이어지는 작은 행사입니다. 엄마에게 곶감 만들 생각을 왜 했냐고 물어보니 “예쁘니까?”라는 답이 돌아왔는데, 처마 밑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감들을 보면 그게 딱 알맞은 답이 아닐까 싶습니다. 

엄마가 어릴 적에 살던 시골에도 가을이면 이 집 저 집 감이 달렸었다고 하는데요, 그때는 볏짚으로 새끼를 꼬아 감을 매달았다고 합니다. 요즘은 신기하게도 곶감용 고리가 만들어져 나와 새끼 꼬는 수고까지는 하지 않아도 되지만, 아마도 엄마의 기억 속에 주홍빛 감들은 달달하고 예쁘게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올해는 감 농사가 풍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전에 샀던 감보다 훨씬 크고 양도 많은데 한 상자 값이 작년의 절반도 되질 않습니다. 저희 마당에 있는 감나무에도 유독 감이 많아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요. 그러고 보면 마당에 가장 많이 있는 나무가 감나무인데요, 그래도 곶감을 만들 만큼 충분하지는 않아서 장날에 나가보는 일이 많지요. 곶감을 만드는 감을 ‘둥시’라고 한답니다. 둥글둥글한 감이라는 뜻일까요. 아마 경상도 지역의 사투리인 것 같아요. 좋은 둥시가 보이면 엄마는 왜인지 동네에서 가장 먼저 곶감을 달고 싶어 해서 곧바로 작업에 들어갑니다. 끙끙거리며 감을 몇 박스 사 오면 볕 좋은 마루에 앉아 돌돌돌 깎기를 시작합니다. 그래도 제법 돌려깎기를 하는 편이라 엄마 옆에서 곶감 만들기에 한 손을 보탭니다. 엄마도 마다하지 않으시지요. 

제법 예쁘게 깎고 있습니다

 감이 줄줄이 엮여 달립니다. 어쩜 가을볕과 이렇게 잘 어울리는지요. 옛 어른들은 어떻게 고운 감을 말려 곶감을 만드셨을까 생각해봅니다. 사실 텃밭을 가꾸거나 식재료를 저장하거나 곧 다가올 김장을 하는 것까지 어른들이 옛날부터 해오시던 걸 우리가 이어서 하는 것이니 그 지혜가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 덕분에 찬바람이 불면 생각나는 주전부리가 하나 더 생기는 셈이지요. 


 벼들이 누렇게 익어갈 때쯤이면 신기하게 비도 잘 오지 않고, 아침 저녁으로는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가도 햇살은 어찌나 따가운지 감 마르기에 최고의 날씨가 이어집니다. 탱글탱글했던 감은 점점 쪼글쪼글 주름이 잡히는데요, 그렇게 조금씩 말랑말랑 해지면 다 마르기 전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그때부터 하나씩 하나씩 따먹게 됩니다. 곶감도 물론 맛있지만 '반시' 정도 됐을 때가 저는 가장 맛있는 것 같더라구요. 그러다가 겨울이 되어서 보면 가을에 달았던 그 많던 감들은 온데간데없고 절반 정도만 곶감이 되어 차가운 겨울을 나고 있답니다. 

해가 가장 잘 들어오는 마루가 곶감과 호두의 자리입니다

 올해도 이만큼 감을 깎아 처마 밑에 달아 두었습니다. 지나가던 동네 분들이 "올해도 곶감 달았네. 예쁘다." 하시며 사진을 찍고 가십니다. 종종 모형을 달아 놓은 거라고 하시면서 확인하러 오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요즘은 마트나 온라인에서 예쁘게 포장되어 있는 곶감이 더 익숙하다 보니 상주가 아니고서야 이렇게 처마 밑에 곶감을 달아 놓은 풍경을 보기가 어려운가 봅니다. 그래서 곶감이 맛있어질 때 즈음엔 이웃 어르신들께 조금씩 맛보시라고 나눠 드리기도 합니다. 다들 좋아해 주시니 그것 또한 하나의 즐거움이지요. 엄마의 정성과 마음 덕분에 우리의 작은 집은 가을이면 더 반짝반짝 풍성해집니다. 


 갑자기 날씨가 부쩍 추워졌습니다. 강원도 지역은 벌써 아침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서리가 내렸다고 합니다. 그렇다는 것은 이제 따뜻한 이불 속에 웅크리고 들어가 맛있는 겨울 간식을 먹어야 할 때라는 것이지요. 붕어빵, 호빵, 군고구마, 찐만두. 말만 들어도 침이 고이고 배가 고파지는 것들이 많지만 그 가운데에 곶감도 살포시 끼워 넣어 봅니다. 저는 올해도 한겨울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처마 밑을 지나갈 때마다 조물조물 하나씩 먹어 없애겠지요. 다음 텃밭 이야기는 한층 더 추워진 날을 기록할 텐데 그때까지 다들 따뜻한 주전부리 하나씩 곁에 두고 푸근한 겨울맞이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갑자기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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