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여사의 사랑은 ‘돈’이었다.
어렸을 적, 우리집은 형편이 넉넉치 못했다. 서울의 반지하 단칸방에서 세 가족이 이불을 펴고 몸을 맞대어 잤다. 내 최고의 장난감은 잠자리 옆에 터를 잡은 개미떼, 제 집 마실 나온 듯 뛰지도 않는 바퀴벌레, 이벤트처럼 나타나는 쥐들이었다. 용맹한 사냥꾼이 되어 이 녀석들을 맨손으로 때려잡으면 엄마에게 칭찬받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따금 젠체하며 여자애들을 괴롭히는 남자애들에겐 슬러시컵에 한 땀 한 땀 모은 송충이 세례를 선물하기도 했다.
어느 밤엔 자다가 이불이 축축해서 몰래 일어났다. 또 이불에 오줌을 싼 줄 알고 조용히 뒷처리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이불만 축축한 게 아니었다. 지층에서 창문을 뚫고 빗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는 참이었다. 방보다 높은 지대에 있던 화장실에서도 물이 무섭게 역류하기 시작했다. 얼른 부모님을 깨웠고, 우리는 바가지란 바가지는 전부 꺼내 빗물을 퍼냈다. 창문을 두드려 같은 처지의 옆집 사람들을 깨웠다. 나란히 자리한 반지하 두 가족이 밤새 똥물과 사투를 벌였다. 세간살이는 살아남은 것 없이 모두 젖었다. 날이 밝은 후부터 이어진 뒷처리도 지루할 만큼 오래 걸렸다. 밤엔 이재민들을 위한 임시숙소에서 잠을 청했고, 낮이면 집으로 가 집기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두 번째 같은 일을 겪었을 땐 아무도 당황하지 않았다.
매달 21일이 다가오면 엄마는 열흘 전부터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나는 엄마의 숨결만 듣고도 아빠의 월급날이 다가오는구나, 느낄 수 있었다. 눈치 백 단인 나는 엄마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이 없도록 말을 잘 들었다.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밥상 위에 열흘간 같은 반찬이 올라왔다.
아빠는 늘 회식 중이었기에, 그것은 곧 그녀와 나, 단 둘의 밥상이었다. 엄마가 유난히 ‘돈이 없다’ 소리를 많이 하는 달이면, 이나마도 못 먹게 될까 두려움에 떨기도 했다. 반대로 매일 같은 음식이나마 그저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한 날들이었다.
와중에 엄마는 늘 음식을 나에게 양보했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도 10kg가 될까말까 했던 말라깽이였기에, 엄마는 늘 나의 증량에 열심이었다. 그런데 늘 바깥에서 주문하는 음식은 2인분이 아니라 1인분이었다. 월급날 기사식당에서 사먹었던 우동도, 백화점 푸드코트에서 먹어본 조각 피자도, 동네 중국집에서 맛본 짜장면도 전부 한 그릇, 한 조각뿐이었다. 본인은 맛보는 척만 하고는 대부분을 내 입에 넣어주었다. ‘나는 이런 음식 별로 안 좋아한다’거나 ‘배가 고프지 않다’는 핑계로. 나는 그것이 가난 때문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어린 눈에 비친 아빠는 매일 회식을 하고 돌아오시니 맛있는 음식을 많이 드실 것만 같았다. 그런데 하루종일 집에만 있는 엄마는 거의 굶는 것이 틀림없었다. 집에서는 늘상 나와 같은 음식을 먹는데, 그나마도 다 양보하니까 나라도 엄마를 챙겨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유치원에서 나눠주는 간식을 싸오기 시작했다. 사과 한 쪽, 떡 한 개, 요구르트 하나, 과자 한 봉지, 귤 한 개 등 야무지게 수저를 담았던 지퍼백에 챙겨갔다. 수저에 묻었던 음식 때문에 더러웠을 법도 한데, 그 간식을 보여주면 엄마는 늘 환한 미소를 띄며 맛있게 먹어주었다. 친구들이 맛있게 간식 먹는 시간을 참아내는 것도, 거지라고 놀릴 때 견디는 것도 힘들지 않았다. 엄마가 굶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다.
그때 엄마는 나의 세상이었으니까.
그 시절 나는 ‘생존’의 위협과 싸우고 있었다. 바비 인형이나 과자, 반찬, 용돈 따위의 사치가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내가 무언가를 사면, 우리 가족은 굶어야 한다’는 공포감은 금방 아이를 ‘얼치기 어른’으로 둔갑시켰다. 겉으로는 의젓한 척 행동하면서도 오랫동안 내 꿈은 ‘마술사’였다. 나이 많고, 고생만 하던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내가 마술로 살려내서 다시 행복해 지리라, 이렇게 다짐했었다.
어느 해질 무렵, 시장에서 다리가 아파 “이제 우리 그만 집으로 가자.”라고 했더니 엄마가 차갑게 내려다보며 “우린 집이 없어.”라고 말했다. 아무리 더럽고 좁은 반지하라도 ‘우리집’인데, 멀쩡한 집을 두고 집이 없다니?! 그날 처음으로 시장통에서 어린이다운 어린이가 되어 울부짖었다. “우리 집이 왜 없어? 우리 사는 집 있잖아!”하고 악을 썼다. 처음 보는 내 반응에 당황한 엄마가 얼른 달래주어 상황은 마무리되었지만 그땐 정말 온세상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집이 없다는 것, 그건 상상할 수 없는 차원의 문제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먹고 싶은 것을 참는 것, 가지고 싶은 것을 포기하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그걸론 ‘집’이라는 어마어마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었다. 얼굴 보기도 힘들 정도로 아빠는 매일 열심히 일을 하는데, 왜 우리 집은 이렇게까지 힘든 걸까. 엄마가 매달 보여주는 통장에 찍힌 숫자보다 분명 우리는 아끼며 살고 있는데, 그 돈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