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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라미수 Mar 26. 2024

친하지 않아서가 아닌데

 일이 생기면 혼자 고민하고 해결하는 편이다. 내향인의 특성이기도 하다.

결론이 날 만큼 윤곽이 드러나야 지인들에게 말한다. 그래서 친구들은 나에게 섭섭함을 토로하기도 한다.

친구가 나에게 자신의 마음을 속속들이 드러낼 때면 친구에게 고맙기도 하고 중압감을 느끼곤 한다. 나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는 거 같아 고맙기도 하지만 나도 친구들처럼 나의 속내를 털어놓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중압감을 떨쳐낼 수가 없다. 장터 갑판에 펼쳐진 물건처럼 내 마음도 쫙 펼쳐 보여주고 싶기도 다.


 속내를 보이고 싶은 충동과 중압감이 맞물려 필요 이상으로 말을 많이 한 날이면 실언을 하게 되고 집으로 돌아가 어김없이 후회를 한다. 내가 한 말에 친구가 딱히 뭐라 하지 않았는데도, 친구가 어떻게 생각하고 느꼈을지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펴며 소설 한 편을 쓴다. 친구는 다음에 내가 그런 얘기를 했었는지조차 기억을 못 할 때도 있는데 말이다.


 친구에게 내 마음을 속속들이 말하지 않는 이유가 친구에 대한 신뢰가 없어서가 아니다. 친하지 않아서도 아니다. 고민과 감정을 누군가와 나누면서 해소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혼자 생각하고 괴로워하고 정리하며 조금씩 해결해 나가는 게 편한 사람이 있다. 나는 후자이다. 고민을 해결하고 감정을 해소하는 방식의 차이일 뿐이다.


 말하지 못하는 게 고민만은 아니다.

"퇴근하면 집에서 뭐 해?"

웬만해선 약속을 잡지 않고, 연락도 잘 안 하다 보니 가끔씩 친구들과 통화를 할 때면 뭘 하면서 지내기에 이렇게 조용히 지내냐며 묻곤 한다.

"그냥 쉬지."

대답한 대로 그냥 쉴 때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어떤 일이 진행 중이어도 얘기하지 않는다. 신비로움이 콘셉트는 아니다. 진행하고 있는 일이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했기도 했고 쑥스러워서다.


성격이 털털한 친구들은 자신이 요즘 무엇에 관심이 있고, 취미 생활로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묻기도 전에 먼저 말을 꺼내지만 나는 그게 잘 안 된다. 결과물이 나오면 그때서야 그동안의 과정을 말한다.

지역 문화재단에서 작곡 수업을 한 적이 있다. 10주에 걸쳐 일주일에 한 번씩 참여하는 과정이었다. 코드도 모르는 내가 작곡을 해서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 낼지 의문이었기에 말하지 않았다.

자격증 공부를 할 때도 한 번에 합격을 할 자신이 없어 합격하고서야 알렸다. 책을 출간하고도 멋쩍어 망설이고 망설이다 한 달이 지나서야 알렸다.

언제든 그만두어도 되고, 잘하지 않아도 되는 취미인데도 언제 그만둘지 몰라, 잘할 수 있을지 몰라 얘기를 안 한다. 결과물에 무게를 두다 보니 공개적인 실패가 두려웠다. 한 번 시도해 볼까 하는 마음이면 충분한데도 말이다.


  친구들의 섭섭한 마음을 덜어보고자 고쳐볼까도 지만 감정을 온전히 드러내는 날이면 불편해지는 내 마음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기로 했다.

대화를 할 때면 듣는 비율이 높은 편이지만 들어주는 일 또한 친구들이 나에게 바라는 것이지 않을까 한다. 

많은 말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어떤 말을 하지 않느냐가 중요할 때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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