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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라미수 Mar 19. 2024

때론 외향인이 되기도 한다

 야구 시즌이 돌아왔다. 

유난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스토브리그가 끝나고 한 달간의 전지훈련을 마친 선수들이 시범 경기에 돌입했다. 시범 경기를 보며 기지개를 켜고 목을 가다듬으며 나도 준비운동을 한다. 야구가 쉬는 4개월 동안 숨겨 놓았던 외향인의 가면을 준비한다. 응원을 하기 위해 예열 중이다.


 대학생 때부터 시작된 야구장 나들이는 연중행사이긴 했지만, 승패와 무관하게 갈 때마다 흥겨웠다. 당연히 내가 응원하는 팀이 이기면 좋지만, 야구 자체를 즐겼다. 

나와는 다르게 승패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남편. 다행히 남편과 내가 같은 팀을 응원하고 즐기다 보니 아이들도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야구를 접하고 함께 즐기게 되었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야구장을 가도 아이들을 챙기는데 여념이 없었다. 3시간 이상 진행되는 야구 경기 특성상 아이들이 힘들어하고 지루해하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야 했다. 아이들이 즐기는 음료와 초콜릿과자는 필수였다. 아이들이 편히 앉아서 볼 수 있도록 휴대용 방석과 담요도 준비했다. 나와 같은 부모들의 고충을 알았는지 야구장 안에 유치부들을 위한 놀이방이 마련되어 있었다. 놀이방을 유용하게 활용하며 경기 도중에 집에 가는 일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아이들을 챙기느라 경기에 집중할 수 없었지만, 야구장이 주는 에너지가 좋았다. 이제 야구장은 아이들과 함께 응원하며 즐길 수 있는 가족 단합의 장이 되었다.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 가면 에너지를 빼앗기는 내향인이지만 이곳에서 만큼은 다른 내가 된다. 내향인인 내가 외향인으로 돌변하는 곳이다.

1군 선수들은 응원가가 있다. 율동도 있다. 응원이 시작되면 유치원생처럼 유치한 율동까지 따라 하며 목청껏 응원가를 부른다. 응원하는 팀이 안타를 치면 누가 일어나라고 하지 않아도 엉덩이에 용수철이 달린 듯 벌떡 일어나 환호한다. 5회가 지나가면 에너지가 소진되어 점점 일어나는 횟수가 줄어들지만 그 어느 곳에서 보다 활발한 나를 발견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야구장이다.


[콰이어트]에서 설명한 자유특성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특정한 성격 특성(이를테면 내향인)을 타고나거나 문화적으로 함양되지만, '개인에게 핵심이 되는 프로젝트'를 위해 거기에서 벗어난 행동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달리 말하면, 내향적인 사람들도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 자기가 아끼는 사람, 혹은 다른 귀중한 것을 위해 외향적인 사람처럼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평소엔 말수가 적다가도 관심 분야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갑자기 활기를 띠고, 친한 친구를 만나면 나도 모르게 수다쟁이가 된다. 행동, 이런 행동도 할 수 있었나 싶은 정도의 행동까지 보이는 장소가 야구장이다. 내가 내향인이 맞나 의심하게끔 하는 장소다. 나도 모르는 사이 이론에 충실하게 생활하고 있었나 보다.


"OOO 파이팅"

2만 5천 명이 수용되는 야구장에서 손나팔을 불며 파이팅을 외쳤다.

동지애를 발휘하며 더울 때나 추울 때나 비가 와도 꿋꿋하게 응원가를 부르는 그들 속에서 나도 목청껏 응원가를 부르고 유치원생처럼 율동을 한다. 환호와 탄식, 기쁨과 절망 등 인간의 다양한 감정들을 느낄 수 있는 이 장소가 좋다.

야구장의 초록의 잔디가 좋다. 가장 편하고 베스트 좌석인 테이블석뿐만 아니라 가장 저렴한 좌석인 외야석도 야구를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잔디가 가장 넓게 펼쳐진 외야의 여유로움이 내 마음을 뻥 뚫리게 한다.

108개의 빨간 실밥이 있는 142~145g의  이 작은 공 하나의 위력은 대단하다. 수천, 수만 명을 한 곳에 모이게 하고 그들을 울고 웃게 한다. 그 안에 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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