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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라미수 Mar 05. 2024

이제야 내 직업에 만족하게 되었다

 글을 쓸 때마다 고민했다.

방사선사라는 직업을 오픈해야 하나. (브런치 프로필에 의료인은 의사와 간호사만 선택할 수 있어 직장인이라고 체크해 왔다)

직업과 관련된 글을 안 쓰면 됐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글을 쓰며 한 번씩 벽에 부딪칠 때가 있었다. 개인적인 글을 쓰면서 직업을 오픈하지 않은 채 글을 쓰다 보니 글이 겉도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직업을 밝혀야 할 이유도 없지만 굳이 밝히지 않으려는 이유도 없었다.


 직업을 오픈하지 않은 이유가 방사선사는 직업 자체의 문제는 아니다. 면허증을 필요한 전문적이며 의료 현장에서 없어서는 안 될  훌륭한 직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방사선사라고 말하는 게 꺼려졌다.

내가 쓴 글로 인해 방사선사라는 직업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게 하거나 잘못된 지식을 전달해서(시대 흐름을 따라가지 못해) 동료들에게 누를 끼칠까 하는 어쩌면 지나친 걱정이 첫 번째였다.

두 번째 이유는 방사선사로서의 내 역량이 부족해서 생긴 자격지심 때문이다. 방사선사 면허를 취득하고 방사선사 면허를 유지하기 위한 보수교육 외에 방사선사로서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은 스스로가 부끄러워 서였다.


 학교를 다닐 때 IMF 사태가 일어났고 취업이 잘 안 되던 시기에 졸업을 했다. 대학 병원은 정규직이 아닌 인턴을 뽑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교수님의 소개로 3개월 동안 대학 병원에서 인턴으로 지낸 적이 있다. 다른 곳에 취업하기 전에 경험이라도 쌓으라고 교수님이 원서접수를 해보라고 하셨다. 3개월 동안 1원 한 푼 받지 못하고 점심 식권만 받으며 일을 배웠다(일을 배우긴 한 건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집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곳이라 차비가 들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필름을 쓰던 시기라 암실에서 3개월을 지냈다. 선생님들 어깨너머로 촬영을 배우긴 했지만 내가 직접 촬영할 수 있는 기회는 손에 꼽았다. 당연했다. 내가 잘못 촬영해 다시 촬영해야 할 경우 환자의 컴플레인을 고스란히 선배 선생님이 받아야 했고 필름 소모로 인한 재정적인 손해를 감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퇴근 후 상사의 호출로 불려 와 상사의 워드 작업을 해야 했다.

잠깐 앉을자리는 고사하고 오픈된 공간에서 선생님들과 환자들의 눈을 피할 틈도 없이 노출되어 있었다. 인턴이고 막내라는 위치 때문이기도 했지만, 내향형인 나에겐 하루 종일 긴장의 연속이었다.


계약기간이 끝나갈 무렵 당분간 정규직 자리가 없을 거라는 소식을 접했다. 1년 뒤에도 자리가 생길지 장담할 수 없는 자리엔 나보다 먼저 들어오신 계약직 선배가 우선시되고 있었다. 최저시급도 못 받으며 버틸 명분이 없었다. 매주 있는 콘퍼런스와 보는 눈이 많아 실수할까 마음 졸여야 하는 압박감이 그곳에서 버티고자 하는 마음을 없게 했다는 게 솔직한 마음이다. 계약했던 3개월을 채우고 소규모 의원에 취업했다. 그 이후론 현재까지 로컬 의원에서 일했다.


 임신과 육아로 경력 단절이 있었지만 임신 전에 함께 일했던 성품 좋은 원장님 덕분에 아르바이트 기회가 생겨 경력 단절을 끊어낼 수 있었다. 오전 파트 일을 하며 아이들도 케어할 수 있었다. 누군가의 엄마로 불리며 나의 이름을 잃어갈 때 선생님 호칭으로 불리는 것도 좋았다.

이런 장점이 있었는데도 마음을 잡지 못하고 전직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내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다른 자격증에 도전하기도 하고 취업박람회에 참여해보기도 했다.


 마음을 잡지 못하는 이유가 직업에 대한 만족도나 적성의 문제는 아니었다. 10년 넘는 시간 동안 로컬 의원에서만 일하다 보니 한 달에 한 번씩 자존감이 낮아졌다. 연차가 반영되지 않는 로컬 의원의 체계 때문이다(로컬 의원에 있는 방사선사를 폄하하는 건 아니다). 만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다른 직종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급여와 복지가 차이 나듯 의료인도 마찬가지로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방사선사와 의원에서 근무하는 방사선사의 급여와 복지는 천지차이다. 다른 직종에서도 대기업에 들어가기 어렵듯 의료 직종도 대학병원이나 공공기관에 들어가는 것이 쉽지 않다. 입사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일하는 강도를 생각하면 당연한 대우다. 내가 대학병원이나 공공기관에 입사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건 생각하지 않고 그들과 받는 차이만을 생각하며 자존감이 낮아져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며 오히려 현재의 위치가 내 성향에 맞는 곳이라고 느끼게 됐다. 그래서 이젠 전직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는다. 지금은 내가 할 수 있을 때까지 방사선사를 하고 싶다. 많지 않은 월급이지만 중년에 나이에 일할 수 있고, 혼자만의 작업 공간이 허용되는 방사선사가 내향형인 나에게 적합한 직업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늦었지만 이제야 방사선사라는 직업을 만족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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