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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라미수 Mar 12. 2024

내게 허용된 3.3제곱미터

 직장에서 내게 허용된 공간은 1평인 3.3제곱미터다(이 공간은 병원의 크기와 진료과에 따라 크기와 모양이 달라질 수 있다).

방사선 촬영을 하는 촬영실 옆의 컨트롤실이 바로 그곳이다. 사람들이 꺼려하는 엑스레이 촬영을 할 때 방사선사가 촬영을 하기 위해 슛을 하는 공간이다. 하루에 수십에서 수백 장의 엑스레이 촬영을 해야 하는 방사선사의 안전을 위한 공간이며 내 마음의 안정을 책임져주는 곳이기도 하다.


 병원은 의사, 간호사, 방사선사, 임상병리사 등 다양한 직업들이 모여서 일하는 곳이다. 병원의 규모나 진료과 특성에 따라 약사, 물리치료사, 치위생사 등 더 많은 직업들이 모이기도 한다.

간호사는 접수대나 주사실, 임상병리사는 채혈실 등 대부분 오픈된 공간에서 일한(병원 상황에 따라 다양한 공간으로 연출되기도 한다). 이런 공간적인 특성 때문에 환자나 보호자와 어색한 눈 맞춤을 하기도 하고 질문 공세를 받기도 한다. 원하든 원치 안 든 환자나 직원들과 공간을 공유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방사선사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밀폐된 공간에서 일해야 한다. X-ray 촬영을 하는 촬영실은 방사선 차폐가 필수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나처럼 독립된 공간을 필요로 하는 내향인은 이보다 좋은 곳이 없지만,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외향인에게는 답답하기 그지없는 공간이기도 하다.


 졸업 후 인턴으로 대학병원에서 근무했던 이후로는 방사선사 여러 명이 함께 근무하는 병원에서 근무한 적이 없다. 함께 일하는 방사선사가 보통 2~3인이었고 대부분은 1인 체제의 로컬 의원에서 근무를 했다. 1인 체제 로컬의원의 방사선사는 보통 촬영실을 혼자 사용하다 보니 작지만 독립공간이 주어진다. 환자들이 촬영하는 촬영실 옆의 컨트롤 실이 보통 방사선사의 공간이다. 촬영에 필요한 장비와 영상을 보정, 저장하는 컴퓨터가 놓인 테이블, 의자 한 개가 겨우 들어갈 만큼 협소하다. 내가 두 팔을 벌릴 만큼의 자그마한 공간이지만, 촬영이 있을 경우를 제외하곤 소중한 나만의 독립된 공간이다.

 

 소통을 중시한다며 개방형 오피스가 유행하기도 했다. 직원 간의 원활한 소통과 활기찬 분위기로 업무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으로 시작되었다. 개방형 회사들의 인테리어를 사진으로 보며 내가 저런 곳에서 근무하면 어떨까 하고 상상해 본 적이 있다. 누군가 내 뒤를 지나갈 때마다 뒤를 돌아보고 신경이 쓰여 근무 시간 내내 업무에 집중하지 못할 거 같았다.

잠깐 머무르는 식당이나 카페를 갈 때조차 한쪽이라도 막힌 구석 공간을 선호하는 나에게 사 방향이 오픈된 업무 공간이 주어진다면 가장 안쪽 자리를 사수하기 위해 첫차를 타고 출근하지 않았을까.


 나 같은 사람이 많았나? 개방형 오피스의 소음과 집중력 저하라는 부정적인 요소들이 드러나며 오피스 공간에 다시 칸막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내향형, 외향형을 구분 짓지 않더라도 사생활이 보호되는 최소한의 업무 공간이 필요하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회사의 모든 구역을 칸막이가 있게 하거나 모든 구역을 개방형으로 하는 것보다 폐쇄형과 개방형을 적재적소에 배치해서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전문가의 의견이 담긴 기사를 보았다. 이번 기사를 보며 나만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한 폐쇄적인 내향인이 아닌 거 같아 안심이 됐다.


'방사선구역, 허가되지 아니한 출입을 금합니다'라는 문구의 표지판이 촬영실 문에 붙어 있다. 주목성이 강한 빨강과 노란색의 선명한 방사선 마크가 표지판의 위세를 드러낸다. 방사선으로부터 환자들을 보호함은 물론 내향인인 나를 외부로부터 보호해 주는 안심 메시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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