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차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 기준이 있다. 무지막지하게 큰 사이즈와 거침없이 내달리는 대배기량 엔진, 섬세함과는 거리가 먼 마초적인 이미지도 풍긴다. 반면 미국산 '럭셔리'는 잘 떠오르는 바가 없다. 길쭉한 차체와 푹신한 소파가 있을 것 같은 올드한 실내 정도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런 편견을 없애기 위해 캐딜락은 꾸준히 노력했다. 에스칼라 컨셉트를 바탕으로 날렵하고 세련된 디자인을 양산차에 그려 넣었고 실내는 고급 소재와 섬세한 마감 기술에 집중했다. 그리고 이런 기술을 대세 세그먼트로 자리 잡은 SUV에 대거 탑재했다.
지난 2016년에 첫 출시한 XT5는 젊은 캐딜락이라는 변화에 맞춰서 사람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심어줬다. 이후 대형 SUV XT6와 입문형 제품인 XT4까지 스펙트럼을 넓히는 중이다. 그 사이 캐딜락 변신 선봉장에 섰던 XT5는 탄탄한 상품성을 갖추고 부분변경으로 돌아왔다. 캐딜락이 말하는 아메리칸 럭셔리와 함께 어디가 얼마만큼 달라졌는지 직접 확인해봤다.
부분변경이지만 눈에 띄는 변화는 없다. 범퍼를 늘리거나 헤드램프 디자인을 바꾸지도 않았다. 다만 세심한 터치를 통해 세련미를 극대화했다. 가로 줄무늬 대신 블랙 매시 타입으로 마감한 그릴이 대표적이다. 위에는 굵은 크롬도금을 넣어 고급차 이미지를 강조했다. 보닛에서 시작해 범퍼까지 길게 이어지는 LED 주간주행등은 존재감을 높인다.
공기흡입구를 감싸는 부분은 온통 유광 블랙으로 처리했고 플라스틱 몰딩을 최소화해 험로주행 성격과는 거리를 뒀다. 옆은 지상고를 비롯해 전체적인 차고가 높아 듬직한 인상을 심어준다. 그 결과 커다란 20인치 휠도 과하거나 부담스럽지 않다. 캐딜락은 곡선보다는 반듯한 직선을 디자인에 잘 녹여내는 회사다. 커다란 유리창과 각진 C필러, 사이드미러 형태만 봐도 알 수 있다.
각을 살린 디자인은 뒤태에서 방점을 찍는다. 한껏 부풀리거나 유연한 선의 흐름은 찾아볼 수 없다. 조각낸 리어램프는 클리어 타입으로 바뀌었고 아래쪽에 살짝 철판을 접은 트렁크 모양과 배기구도 전부 각이 돋보인다. 한쪽에는 '400'이라는 낯선 숫자가 붙어 있다. 캐딜락의 새로운 제품분류법으로, 토크(400Nm)를 뜻하는데 일반인이 단번에 알기는 쉽지 않다. 전체적인 XT5의 외관은 캐딜락만의 특징을 표현하면서 모던한 도심형 SUV 이미지를 나타내는 데에 손색없는 모습이다.
실내는 기존과 동일하다. 수평형 센터페시아 형상부터 스티어링 휠 모양, 각종 버튼류도 마찬가지다. 변속레버 밑에 위치한 조그셔틀이 유일한 차이점이다. 새로운 조그 기능의 로터리 컨트롤러는 버튼식과 터치스크린의 불필요한 중복을 보완했다. 이와 함께 기기 조작에 익숙한 젊은 층을 위해 향상된 커넥티비티와 최적화된 캐딜락 CUE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했다. 또 모바일 기기 연동 시 원터치로 연결할 수 있도록 새로운 NFC 페어링 기술을 적용했다.
캐딜락은 부분변경 XT5를 공개하면서 기능성과 직관성을 높이는데 초점을 맞춘 기술을 대거 탑재했다고 말했다. 먼저 실내에 적용된 디스플레이는 모두 HD 급으로 높였다. 직관성을 키우고 난반사 시에도 선명한 그래픽을 제공한다. 후방 시야를 300% 이상 높여주는 HD 리어 카메라 미러는 확대 및 축소가 가능하며 각도와 밝기 조절 기능을 추가했다. 사각지대가 거의 없어 주행은 물론 골목길에서도 제법 유용하다.
이 외에도 주의가 필요한 상황에서 차의 360도 모든 곳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HD 서라운드 비전이 들어갔다. 계기판 화면 맨 끝에는 나이트 비전 기능을 활성화할 수 있다. 열화상 적외선 카메라로 전방을 보여주며 먼 거리에 있는 사람의 움직임도 미리 식별할 수 있다. 야간 주행은 물론 전방 시야가 좋지 못한 상황에서도 위험을 줄여준다. 파노라마 선루프가 전 트림 기본이며 1열 통풍 시트와 열선 스티어링 휠, 헤드업 디스플레이, 휴대폰 무선 충전 기능을 전부 편의성을 높였다.
소재는 빼놓을 수 없는 자랑거리 중 하나다. 장인 정신을 상징하는 컷 앤 소운 공법을 통해 정교한 실내를 완성했다. 시트는 최고급 소재 중 하나인 세미 아닐린 가죽을 적용했고 팔걸이와 대시보드 및 도어 패널 등 손이 닿는 곳에는 전부 스티치 마감 처리를 했다. 또 V자형 센터페시아는 가죽과 고급 원목, 알루미늄, 스웨이드를 적절히 조화를 이뤄 가로로 길게 뻗어나간다. 여러 소재를 겹쳐 넣었지만 조잡하거나 지저분하지 않다. 오히려 단정한 느낌과 시각적 공간감을 극대화했고 고급스러운 감각은 절정을 향한다.
캐딜락 XT5는 여유로운 가속성능을 바탕으로 부드러운 승차감에 초점을 맞춘 SUV다. 다재다능한 성격보다는 평소 자신 있는 분야만 집중 있게 파고든 결과다. 운전 재미나 역동적인 성격과는 거리가 멀지만 차가 가진 컨셉트를 생각하면 단점으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캐딜락이 보여줄 수 있는 아메리칸 럭셔리를 소화하기에는 지금과 같은 세팅이 더 만족스럽다.